해마다 겨울이면 나를 포함한 대학동기 5명은 한차례씩 모임을 갖는다.
나의 미국행이 다소 변수가 되기도 했으나
이번 귀국으로 전라도 광주에서의 모임이 가능했다..
모임은 대개 토요일 낮의 등산과 식사, 음주
그리고 카드놀이 등을 하고
일요일 아침 해장국을 먹는 순으로 진행된다.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사는 이야기들을 나누는 것이
그 사이에 이루어진다.
토요일 아침 용산역에서 광주행 8시발 KTX를 탔다.
출발은 나와 서울에 사는 친구 둘이서 했다.
익산 역에서 한 친구가 승차를 했고
나머지 둘은 사정이 있어 저녁에 광주에서 합류를 하기로 했다.
무등산행도 3명이서만 할 수 있었다.
무등산(無等山).
전체적인 산세가 가파르지 않고 완만하고 넉넉한 육산인 무등산은 광주의 진산이다.
해서 사람들은 "광주는 무등산 아래 있고 무등산은 광주에 있다"고 말하곤 한다.
'높고낮은 등급이 없다'는 뜻의 '무등'은 불교용어로 '절대평등의 깨달음'을 뜻하는
"무등등"에서 유래된 듯 하다고 전해진다.
그런 '무등' 의 의미는 80년 '오월광주' 를 떠올리면
광주라는 도시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 듯한
어떤 의미심장함이 연상되기도 한다.
당시 광주 시민들이 지켜내고자 했던 것도
(혹은 항쟁의 기간동안 이미 이룩했던 것도)
결국 '절대 평등'에 다름 아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광주로 가기 전 책장 속에서 옛 시집의 먼지를 털어
광주 혹은 무등에 관한 시를 찾아 읽어 보았다.
절망과 희망으로 혼을 놓고 다시 깨어나는
그 후의 몇 봄이 지나면서
단단하여 결코 죽지 않는
세상에 흔한 한 풀씨가 되어
어느 날 무등에 올랐을 때
의롭고 귀한 것을 위하여 눈물겹게 아프게
사는 사람들의 마을이
침묵 속에 아름다왔으므로 오래 생각했다.
무엇이든 없애고 새로이 일으킬 수 있는
용솟음의 불덩이를 갈무리한 채로도
다만 소리없이 숲과 바람, 벌레를 키우며
참고 견디며 끝끝내 기다리던 분화구
그리고 우리들 무등.
깊은 소용돌이 희망의 화염을 다둑이는
넉넉한 사랑과
끝까지 기다림에 드는 아름다움.
-나해철의 시, "무등에 올라" 중에서 -
증심사 아래 식당에서 묵과 동태탕으로 식사를 하고
산행을 시작했다. 전라도에선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도
최소한 맛 때문에 본전 생각은 나지 않는다는 생각은
이곳 식당에서도 예외는아니었다.
도시 주변의 산 초입에 있는 식당들은
대개 산행객들이란 '뜨내기 손님'을 받는 처지라
그 맛과 서비스가 부실하기 십상인데 세련된 서비스는 없을 지라도
기본적인 맛만큼은 무등산이 확실히 전라도에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날은 푸근했다.
눈이 녹아 땅이 질척거리긴 했지만
산행을 하기엔 더 없이 좋은 날씨였다.
*위 사진 : 증심사에서 출발하여 계곡을 타고 중머리재(지도상 현 위치)까지를 일차 목표로 삼았다.
우리는 일차 목표를 중머리재까지로 잡았다.
입석대와 서석대가 욕심이 나기도 했지만
무등산은 모두 초행인 데다가
낮 12시가 지난 늦은 출발 때문에
모두가 모이는 저녁의 일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위 사진 : 중머리재의 풍경. 부부의 휴식이 편안해 보인다.
무등산은 광주시민의 휴식처인 듯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산행 중에 만난 한 사람은
우리가 서울에서 왔다고 하자.
날씨가 바짝 추워서 눈꽃을 보았으면
무등산이 더 아름다웠을 것이라고 아쉬운 듯 말했지만
나로서는 눈길을 밟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위 사진 : 장불재와 그곳에서 본 입석대의 모습
산행은 결국 입석대까지 이어졌다.
완만한 산세가 예상했던 것보다
빨리 중머리재에 오르게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중머리재 - 용추삼거리 -장불재를 거쳐
도착한 입석대는 사람 손으로 다듬은 듯한
각진 바위기둥들이 곧추 서있는 기묘한 형상이었다.
증명사진을 찍고 가던 길을 되돌아 중머리재로 왔다.
*위 사진 : 하산길의 풍경
그곳부터는 올라올 때와는 다른 서인봉 - 새인봉삼거리길을 따라 하산을 했다.
발밑에서 부서지는 눈길에 발걸음이 가벼운 길이었다.
*위 사진 : 중머리재에서 본 서인봉
저녁엔 광주 시내 상무대지구에 숙소를 정하고
드디어 다섯 모두가 모였다.
상무대지구는 이름에서 보듯 예전엔 군부대 지역이었다고 하나
이제는 화려한 네온불빛이 가득한 거리가 되어있었다.
광주 토박이인 친구의 안내로
역시 전라도 음식의 명성에 어울리는 곳에서 맛난 식사를 하고
우리는 술과 지난 이야기를 나누며 '마이티(MIGHTY)' 놀이를 했다.
'기노'와 '오바노'에 '닥다리'와 '엿끌'과 '곱스피'에 이어
'초간'과 '오바간'에 '쫏다운'을 날리고
'노카'와 '피끓는 보조'와 '런' 에 환호를 하며 새벽까지 달렸다.
일상에서는 전혀 쓰지 않는 그 기괴한 단어들은
30여 년 전 학창 시절의 추억 속에서 불러오는 것이기에
무등산처럼 푸근하게 다가왔다.
(이 은어들의 뜻은 우리가 학창시절 수업시간을 빼먹으며
놀이에 열중하여 배운 '타짜용어(?)'이므로 자세한 설명이 불가하나
관심있는 사람은 인터넷 검색창에 마이티를 쳐서 알아보시라.^^
아마 나와있지 않겠지만.)
(20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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