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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처용'의 음식점

by 장돌뱅이. 2013. 7. 10.

 


*위 사진 : 안산시 원곡동의 '국경 없는 거리' 입구와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교회 안내

몇해 전 한 코미디언이 외국인 노동자를 상징하는 '블랑카'로
우리 앞에 나와 "뭡니까 이게?" 하는 어눌한 한국말로
외국인에게 너그럽지 못한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일면을 꼬집은 적이있다.

외국인 노동자.
우리가 오천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먹고 살만하게 되었다’는
80년대 말 90년대 초부터 그들은 한국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불과 얼마 전에 우리의 부모 형제들이 청운의 꿈을 품고
시골에서 서울로 무작정 상경을 하였듯이, 광부로 간호원으로
우리보다 더 잘 사는 나라로 떠나갔듯이, 그들은 ‘코리안드림’ 을
꿈꾸며 먼 길을 떠나 우리 땅으로 온 것이다.

가깝게는 중국에 사는 조선족 동포와 중국인을부터 시작하여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등의
아시아권이나 멀리서는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더 멀리는 아프리카에서까지
우리나라를 찾아왔다.

공식 통계상으로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수는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를 차지하지만
인구조사에서 빠진 불법체류자를 감안한다면 2%에 육박한다고 한다. 


*위 사진 : 국경 없는 거리

설사 그들이 단 한 명뿐일지라도 우리 사회에서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아서는 안되겠지만 통계에 나타난 수치는 그들이 이제는
우리 사회의 어떤 실체로서 그에 합당한 사회적인 권리를 인정 받아야 할
당위를 보여주고 있다.

더군다나 그들은 우리의 대부분이 일하기를 꺼려하고 기피하는,
소위 ‘3D’라고 불리는 ‘더럽고 위험하고 힘든’ 업종에 종사하며
우리 사회의 한 축을 떳떳하게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위 사진 : 국경 없는 거리

신라 헌강왕은 바닷가에 놀러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구름과 안개가 자욱해지는 바람에 길을 잃게 되었다.
동해 용의 장난이라고 여긴 왕은 근방에 절을 세우라고 명하자
구름이 걷히고 안개가 흩어졌다.

이때 동해 용이 기뻐하여 곧 일곱 아들을 데리고 임금 앞에 나타나
왕의 덕행을 찬미하면서 춤을 추고 음악을 연주하였다.
그의 아들 하나가 임금을 따라 신라의 서울인 경주로 들어와서
왕의 정치를 보좌하게 되었는데 그가 유명한 처용(處容)이다.
임금은 처용에게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맞게 하고
급간(級干)이라는 벼슬을 내렸다.

이 처용이 자신의 아내와 동침하는 역신(疫神)에게 불렀던 노래가 처용가이고
그때 춘 춤이 처용무이다. 이후로 사람들은 처용의 형상을 그려서 문에다 붙여
나쁜 귀신을 쫓았다.

이 처용설화가 실제로는 풍랑을 만나 표류하던 남방계나
무역을 위해 방문한 이슬람 상인에서 유래되었다는 말이 있다.
처용탈의 이국적인 모습이 이 주장을 뒷받침한다.

실제로 신라는 이슬람지역 상인들과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여러 자료에서 확인되고 있다. 처용 이전에 이미 신라인은 아라비아인 형상의
석상을 왕 무덤의 수호자로 세우기도 했다.
중세 아라비아 서적에 “신라에 들어간 사람들은 그곳의 공기가 맑고
부가 많으며 주민들의 성격 또한 양순하기 때문에
그곳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한다.

처용이 표류해온 외국인이라면 요즈음 말로 불법 체류자인데
우리의 선조는 왕이 나서서 아내와 벼슬까지 주며 받아들인 것이다.
이질적인 외국문화에 대한 우리 조상들의 자신감 넘치는 개방과 수용의
자세에 비해 21세기의 우리들은 모습은 종종
각박하고 천박하기 그지 없어 보인다.

처용은 춤으로 악귀를 물리쳐 신라 사회를 위해 공헌을 했고
백성들은 그의 덕분에 그의 화상을 대문에 붙여 악귀를 내쫓을 수
았었다.

낯선 이방인을 따뜻한 포용력으로 감싸안을때 그들의 창조력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위 사진 : 성수동의 조선족 음식거리

우리 사회 곳곳에서 외국인들이 정착하면서
만들어낸 풍경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경기도 안산 지하철 4호선 안산역 부근 원곡동 일대의
세칭  ‘국경 없는 거리’나 가리봉 시장 조선족 골목,
성수동 조선족 음식 거리  등이 그것이다.
낯선 곳에서 힘든 생활을 영위하면서 그들이 만들어낸 거리에는
그들만의 정서와 분위기가 서려있어 종종 우리가 '이방인'이 되는
재미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몇년 전 아내와 그 가리봉동과 '국경없는 마을'을 돌아본 적이 있다.
이번 한국을 다녀오면서 성수동의 한 조선족 음식점을 들러 보았다.
그 중에서도 유난히 손맛이 있는 음식점은 벌써 인터넷을 타고
소문이 퍼져 앉을 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먼 외국을 가지 않아도 그들의 '본토 원조' 음식을 가까운 곳에서
맛볼 수 있다는 것은 또한 그들이 가져온  선물이다.

(2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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