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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미국

어미

by 장돌뱅이. 2013. 6. 26.

사전 정보없이 여행을 떠나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체널아일랜즈 국립공원 아나파카섬의 절벽에 난 수직의 계단을
오르면서야 남편은 여기가 갈매기의 섬이라고 알려주었다.

계단의 끝에 발을 내디딘 순간 눈 앞에 펼쳐진 평원.
거기에 안개꽃을 흩뿌린 듯 점점이 하얀 것들이 모두 갈매기라니...
예상하지 않았던 풍경인지라 더 깊은 탄성이 나왔다.

소롯이 난 길을 따라 걷는 것이 우리의 일정.
그러나 그리 만만치가 않았다.
새끼나 알을 가진 어미들이 우리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통에...

어미!!
아비일지도 모르는 그들을 나는 어미로 단정지어버렸다.

서너발자국앞에서부터 높은 소리로 울어제끼는 녀석들은 모두 어미새들이었다.
그들의 지나쳐 발자국을 옮기면 울음을 뚝 그친다.
아마 서너발자국이 그들의 안정선인가보다.
그러고나며 연이어 다음 녀석들이 또 울어제낀다.
울음 소리는 트레킹을 하는 내내 귀가 먹먹하도록 이어졌다.

어떤 어미들은 새끼를 인도하며 서둘러
우리가 지나는 길에서 멀어지기도 하고.
하늘로부터 저공 비행으로 위협을 새들도 있었다.
머리를 향해서 달려드는 듯한 모습을 취할 때마다
나는 움찔하고 주저앉다시피했다.

가장 골치아픈 새는 길을 내어주지 않는 녀석들이었다.
길 위를 점령(?)하고는 자신들의 새끼가 길에서
벗어날 때까지 꼼짝않고 단호한 자세로 지켜보곤 했다.
"아, 얘들이 왜 길에서 이래?" 하고 불만스레 말을 건네보지만
그 길은 인간이 만들어낸 길이지
그들에게는 그냥 그들의 땅일 뿐이었다.

우리를 땡볕에서 20분넘게 벌을 세운 어미가 있었다.
나무 판대기로 만들 길 밑 공간에 들어간 새끼를 지키는 녀석이었다.
녀석은 남편의 위협적인 자세에도 끄덕도 하지 않았다.
새끼를 위해 자신의 온 몸을 위험에 드러내며 버티고 있었다.

트래킹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면서 세상의 어미된 것들의 삶을 생각해 보았다.
우리의 어미들도 그렇게 온몸으로 우리를 키워냈으려니......
나는 어떤 모습의 어미었을까하는 생각에 부끄러워지기도 하면서.

여행중에 마그네틱을 하나씩 사서 모으는데
이번에는 갈매기모양의 마그네틱을 선택하는데 주저하지않았다.

(2009.7)
*곱단이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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