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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국경에서 생긴 일

by 장돌뱅이. 2013. 6. 27.


*위 사진 :지난  9월22일 총격사건 직후 봉쇄된 국경(LA타임즈 사진)

일 때문에 멕시코와 미국 국경을 매일 넘나들게 된다.
멕시코 초입에는 늘 중무장한 연방군인들이 서성거리고 있어 아침마다 긴장감이 들곤한다.
마약조직과 관련된 강력범죄가 극성이어서 투입된 군이지만 올해만 9월말까지 인구 3백여 만명의 티후아나에서만
2천명 가량이 총격으로 죽었다니 그다지 효력을 거두지는 못하는 것 같다.

8월 초이던가 멕시코에서 미국 쪽으로 국경을 넘으려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반대편 도로,
그러니까 미국에서 멕시코 쪽으로 
오는 도로에서 무슨 폭죽놀이를 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처음엔 무심코 들었는데 서너 번이 반복되면서 총소리! 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무슨 일일까
창을 열고 내다보는데 총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고 사이렌소리가 요란해지면서 뭔가 부산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뒷날 확인해보니 미국에서 멕시코로 넘어오던 차량이 정지 신호(랜덤으로 검사를 한다)를 무시하고 도주했고
거기에 검문 중인 군인이 총격을 가한 사건이었다. 차량탑승자는 국경도시인  티후아나 외곽에 차를 버리고 도주했다고 한다.
(9월 하순 경에는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넘어가던 사람들이 검문하려던 미국 관리들에게 총격을 가하는 사건이 있기도 했다.)

그로부터 일주일쯤 지났을까 미국 쪽에 일이 있어 평소 퇴근시간보다 조금 일찍 (멕시코에서 미국쪽으로)
국경을 넘으려고 기다리며 음악을 듣고 있는데 잠깐 사이에 창밖으로 멕시코 깃발이 수십 개 보이고 북소리와
고함소리가 들렸다.그와 함께  200여 명쯤 되어보이는 시위대가 미국국경으로 접근 중이었다.
미국 관리들이 황급히 시위대 앞쪽으로 뛰어가면서 국경 통과문이 닫히고 있었다.

"이건 또 뭐야?" 하는 생각이 스쳤다.
시위대는 국기를 앞세우고 검문소 입구에 멈춰서서 합창으로 무슨 구호인가를 외치고 있었다.
가끔씩 미국쪽을 향해 손을 펼치면서 외치는 그 구호는 자못 요란하였다.
'무슨 국가간의 감정을 자극할만한 사건이 있었나?' 하는 추측을 해볼 뿐 시위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길이 없었다.

이상한 점은 시위대의 표정에 진지함이나 긴장감이 엿보이지 않고 웃으며 시위를 한다는 점이었다.
차문을 열고 내다보다 나처럼 어리둥절하며 고개를 내미는 앞차의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그 백인은 양 어깨를 귀쪽에 갖다붙이며 손을 벌리는 특유의 몸짓을 지으며 모르겠다고 했다.
그때 뒷줄에 있던 멕시칸 한 명이 만면에 여유로운
웃음을 지으며 말해주었다.
"아직 모르냐? 오늘 멕시코가 미국을 물리쳤다!"
월드컵 축구 예선을 말하는 것이었다.

한때 북중미를 호령했던 멕시코 축구는 요즈음 영 빌빌거리며 성적이 시원찮다.
월드컵 예선전에서도 탈락 위기에 몰려 있는 처지였다.

그 와중에 일글랜드 대표팀 감독을 지냈던 에릭손 감독도 경질 되었고
파리 월드컵으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는 노장 블랑코를 다시 발탁하는 등 홍역을 치루었다.
가까스로 미국을 홈에서 꺽으며 진출 가능성을 높였지만 3위까지 진출하는 최종예선에서 이제 겨우 4위인가가 된 것이다.
나머지 경기가 비교적 쉬운 상대라 70% 정도로 확율을 높인 것일 뿐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축제 분위기였다. 특히 라이벌인 미국(마치 우리나라가 일본을 대하는 듯 하는 것이
멕시칸들의 
대중정서인 것 같다.)을 꺽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는 것 같았다.
앞차의 미국인은 단지 축구에 이겼다고 저러는게 이해가 안간다는 표정이었다.
하긴 뭐 미식축구 대표팀이 진 것도 아니니까.
잠시 긴장했던 나도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한바탕 소동을 부리고 돌아가는 그들 때문에
국경 통과가 턱없이 길어졌지만 나는 예선통과뿐만이 아니라 내년 월드컵에서 아예 멕시코가 우승을 하기를 빌어주었다.
단지 예선통과의 확율이 높아졌다고 저러는데, 우승을 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보고 싶었다.

이번 주 토요일 저녁 예선전이 열린다.
회사 직원들은 멕시코가 크게 이길 것이라고 들떠있다.
나도 텔레비젼으로 보며 멕시코를 응원을 할 참이다.

(2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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