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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미국

샌디에고 걷기 24 - CLEVENGER TRAILS NORTH

by 장돌뱅이. 2013. 7. 12.

 

 

 

  

 

 


자주 주위에 말해왔지만 내가 샌디에고에 와서 살게 된 일은 누군가에 의해 마련된 일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한번도 미국땅에서의 생활을 생각하거나 동경해보지 않았다는 점에서,
동경은커녕 오래 전에 있었던 기회조차도 거부해버린 적도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물론 어느 날 갑자기 내 앞에 찾아온 우연일 수도 있고
앞선 거부의 경험처럼 결국 선택의 문제였을 뿐이라고 간단하게 정리해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 우연과 선택이란 것이 그 이전의 우연과 선택에 달려 있는 것이고
이전의 그것들은 또 그보다 먼저 있었던 어떤 우연과 선택들의 무한고리임을 생각하면
결국 세상일은 결국 필연의 연속으로 여겨지게 된다.

설명되어 질 수 없다고 해서 우연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삶이 신비한 이유는 설명되어질 수 없는 어떤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스쳐지나가는 옷깃에도 억겁의 인연으로 생겨난 것이라 하지 않던가.
드러난 우연스런 현상의 이면에 숨어 있는 필연의 뜻을 언제부터인가 나는 조심스럽게 절대자의 섭리로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일상의 소용돌이 속에서 존재를 뒤흔드는 건 바로 작은 모래알갱이일지도 모른다.
   작은 못 하나가 차도 위를 구르고있다. 당신의 아버지는 기차역으로 가는 길에 그
   차도를 향해 차를 몬다. 못에 찔린 타이어가 펑크가 나는 바람에 갈아끼우느라 그는
   차를 놓친다. 그는 그 다음 기차를 타고 어느 열차칸에 자리잡는다.
    "신사숙녀 여러분, 차표를 검사하겠습니다."
    아뿔사, 그는 급히 서두르느라 개찰하는 걸 깜빡 잊었다. 다행히 검표원은 그날따라
   기분이 아주 좋다. 그래서 그에게 일등석에 자리가 남아 있으니 거기에 앉아 가는 게
   어떻겠냐며 호의를 베푼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그는 당신의 어머니가된 여자를
   만난다. 두 사람은 미소와 친근한 대화 그리고 의미심장한 눈짓을 주고받는다. 아홉달
   후 당신이 태어난다. 당신이 지상에 머무는 동안 겪게되는 그 무수한 일들은 그날 아침
   3센티미터의 녹슨 못이 정확히 그 장소에 놓여 있지 않았더라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들이었다. 우연. 우리의 존재를 쥐고 뒤흔드는 건 바로 그것이다. 녹슨 못하나, 잘못
   조여진 나사 하나, 시간이 맞지 않는 손목시계, 연착된 기차, 검표원의 예기치 않은 친절
   따위. (......) 어쩌면 결국 완전한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마치 예언서에 이미
   기록되어 있듯이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반드시 벌어지고 마는 사건도 있으니까.
   까마득히 먼 과거에 활시위를 당겼지만, 화을 쏜 사람은 화살이 정확히 언제 어느 지점에
   박히게 될지 알고있는 것처럼.
                                             -프랑스 작가 기욤뮈소의 소설 『구해줘』중 -

모든 것이 필연으로 귀결된다고 해도 그 필연은 우리가 일상의 길목마다 만나는 지극히 작고 많은 '우연'들과
얼마만큼 겸허한 자세로 다가서는 가에 따라 다른 형태와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영화 "벤자민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는 "우리의 삶은 나와 상관없는 것들과의 상호작용"이라고 했다.

그렇게 잠시 살게된 샌디에고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의 인연은 즐겁다.
더군다나 함께 산길은 걷는 시간은 즐거움이 배가 된다.
샌디에고에 오지 않았다면 (이런 조건절은 필요가 없다고 앞에서 설명했지만)
결코 만날 수 없었을 두 분과 함께 산길을 걸었다.

일주전 혼자 남쪽 산을 오를 때의 기분이 호젓하고 감미로웠다면 여럿이서 걷는 산행은 떠들석하고 들뜬 축제가 되었다.
짧은 기간에 가슴까지 파묻히도록 키를 키운 풀잎이 바람에 흔들리며 은은한 향기를 내뿜는 산길을 가벼운 걸음으로 올랐다.

남자 셋이서 수다를 피우느라 4시간 정도 걸렸지만 실제 산행에만 집중한다면 3시간 이내에 마칠 수 있는 산행거리였다.
하긴 수다도 따로 구분지을 필요가 없이 산행의 일부이긴하지만.

(2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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