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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미국

한가위 달보다 밝은 달

by 장돌뱅이. 2013. 7. 30.

이곳은 어제가 한가위였습니다.
물론 한국처럼 노는 날이 아니어서 회사에 출근하여 일을 했습니다.
그래도 한가위인데 하는 마음에 그냥 무싯날처럼 보내기가
섭섭해서 퇴근 후 아내와 달맞이를 하러 집을 나섰습니다.

어디가 좋을까 꼽아보다가 몇 달 전 다녀온 라호야 LA JOLLA의
솔레다드공원 SOLEDAD PARK 으로 향했습니다.
해변 가까운 언덕 위에 솟아있어 사방이 거칠 것 없이
탁 틔여 있는 곳이라 달맞이 하기에 더 없이 좋은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해넘이 이후에 바다쪽에서 밀려오는 구름 때문에
솔레다드 공원에서 보려던 보름달은 보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포기를 하고 인근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나오니 구름에 가려져 테두리와 빛이
희미해진 보름달이 떠올라 있었습니다. 맑은 하늘 한가운데에 뜬
제대로된 보름달은 정작 집으로 돌아와 볼 수 있었습니다.
구태여 멀리 갈 필요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며칠 전 샌디에고는 사상 최악의 정전 사태가 있었습니다.
오후부터 시작된 정전은 무려 12시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모든 상점과 식당이 문을 닫았고 거리의 가로등과 신호등은
먹통이 되었습니다. 신호에 밀린 차들이 교차로마다 길게 늘어서
있어 퇴근길은 평소보다 오래 걸렸습니다.

야외용 취사 도구로 저녁밥을 지어먹고 나자 할 일이 없었습니다.
텔레비도 인터넷도 작동이 안되어 야영할 때 쓰는 전등을 켜놓고  
잠시 책을 읽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시들하여 아예 불을 끄고
아내와 함께 서서 창밖을 내다 보았습니다.

어둠에 잠긴 아파트는 조용하기만 했습니다.
사람들의 기척과 목소리, 단지를 들고나는 차들이 내쏘는 불빛들이
간간히 그런 분위기를 휘젓는 듯 했지만,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사위었고
오히려 더 짙고 깊은 어둠과 적막이 뒤를 따르곤 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달빛을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큰 사물의 윤곽이나마 볼 수 있었던 것은 달빛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가위를 며칠 앞두어 아직 차오르지 못한 채 이지러진 달이었지만
인간이 만든 불빛이 사라지고나자  자신의 존재감을  텅 빈 하늘에 한껏 드러낸 채
'어둡되 환한' 자신의 빛으로 땅과 하늘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아내와 나는 베란다에 의자를 펴고 나가 앉아 달바라기를 하였습니다.
달은 밤이 깊을수록 높이 떠올라 아내와 나의 주위를 자신의 빛으로
가득 채워주었습니다. 이번 한가위의 달맞이는 그때가 더 절정이었나 봅니다.
일정한 기간마다 일부러 전기를 끊어 어둠과 달빛과 별빛을 되살려보는 제도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2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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