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카운티 미술관 LA COUNTY MUSEUM OF ART (LACMA, http://www.lacma.org/ )은
미국에서도 서부 최대의 도시 LA의 미술관답게 거대하다.
소장품이 11만점에 달한다고 하니 짧은 시간에 모든 소장품을 돌아본다는 것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중남미와 라틴아메리카 미술품과 만남은 우연이었지만 신선했다.
이제까지 학교에서도 배워본 적이 없고 어느 다른 곳에서도 쉽게 만나기 어려운 새로운 감각이었다.
서양 편중의 교육과 제도가 만들어낸 결과일 것이다.
한국관은 내부 수리 관계로 휴관이어서 더 많은 시간을 라틴아메리카 전시관에서 보낼 수 있었다.
박물관의 설명에 따르면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미국에서 가장 폭 넓게 중남미와 라틴아메리카의 예술품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라틴 예술품에 대한 아주 기본적인 상식도 없으니 우선 오래 바라보는 것이 공부였다.
그래도 매우 재미있었다. 피카소나 마티즈 전시관에 비해 관람객이 거의 없어 마치 아내와 나만을 위한 전용관과 같았다.
공상과학 영화 속 외계인의 모습 같은 기묘한 인물상을 통해 옛 원주민들은 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디에고 리베라 DIEGO RIVERA 는 멕시코의 유명 화가이다.
그림을 좋아하건 안하건 회사내 멕시칸 직원들을 포함하여 내가 아는 대부분의
멕시칸들이 그의 이름과 역시 화가였던 그의 아내 프리다 칼로를 알고 있었다.
멕시코시티를 여행하기 위해 공부를 할 때 가장 많이 나온 단어도 디에고 리베라였고 벽화였다.
그는 멕시코의 국민화가이자 현대 미술의 상징인 것 같다.
20세기 초 멕시코는 10 년여에 걸친 혁명(반란, 혹은 내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여러 세력들이 합종연횡을 이루며 격렬하게 싸운 끝에 독재를 무너뜨리고 입헌공화정을 세웠다.
백만 명이 넘는 사람이 혁명의 과정에서 숨졌다고 한다.
혁명 세력들은 자신들의 역사적 정통성과 혁명의 의미를 두루 알리고 싶었다.
그러나 인구의 80퍼센트가 문맹인 나라에서 그것은 쉽지 않았다.
그림이 한 대안이 되었다. 이에 유럽에서 그림 공부를 하고 급변기의 조국에 돌아와
미술계의 변화를 주도하던 디에고 리베라가 적임자로 떠올랐다.
그는 멕시코의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역사를 침략 외세와 민족의 저항으로
단순화 하고 저항세력과 인디오 문명의 위대함을 예찬하는 벽화를 제작하였다.
멕시코시티 대통령궁의 대형 벽화는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로 꼽힌다.
출발의 의미와 진행의 과정이 같지는 않지만 그의 벽화는 새로운 세상을 위한
‘거대 담론’의 시기였던 우리나라 80년 대 판화 제작의 열기를 떠올리게 한다.
그의 그림의 형태와 색채는 멕시코의 전통에서 나온 것이라 한다.
엘에이 카운티의 미술관에서 디에고 리베라의 그림을 여럿 볼 수 있었다.
혁명은 갔지만(혹은 아직 오지 않은 것이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그림은 남은 것이다.
*위 그림 : 디에고 리베라의 그림 "HUICHOLES" (우이촐레스는 멕시코 중서부
할리스코 JALISCO와 오이촐 HOICHOL 지역에 거주하는 원주민을 말한다.)
*위 사진 : 디에고 리베라의 "RETRATO DE LA SRA. CARR(PORTRAIT OF MRS. CARR)"
*위 그림 : 디에고 리베라의 "RETRATO DE JOHN DUNBAR(PORTRAIT OF JOHN DUNB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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