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손님 받지 말아!”
주인은 여직원에게 단호하고 필요 이상의 큰 목소리로 지시를 내렸다.
무슨 일로 화가 나있었는지 아니면 원래 그런 식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입구 쪽에 재판을 받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 직원은 미안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와 이미 나도 알고 있는(저절로 알게 된) ‘재판 결과’를 알렸다.
“죄송합니다만 손님을 받을 수 없습니다. 고기도 떨어져서.....”
고기가 떨어졌다는 것은 여직원이 즉흥적으로 만들어낸 변명이었을 것이다.
내가 식당으로 들어가 식사를 하겠다고 하자 그녀는 주인에게 물어본다고
등을 돌려 주인에게 다가갔고 그 이후의 상황은 나도 보았기 때문이다.
오기 전에 나는 전화로 10시까지 영업을 한다고 확인을 한 바 있었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9시가 좀 넘은 시간이었다. 나는 화가 났다.
고기를 못먹게 되어서가 아니라 카운터에 앉아 있는 사장인 듯한 여인에게 화가 났다.
손님을 받고 안 받고는 주인의 권한 일 것이다. 내가 전화로 확인을 하지 않고
왔더라도 손님에게 직접 “이제 손님을 받을 수 없다”고 직접 말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시야 안에 가깝게 서있는 내게는 눈길을 주지도 않은 채 자신의
직원에게 다분히 나를 겨냥한 듯한 큰 소리로 말을 하는 것은 이유는 모르지만
의도적으로 나를 무시하는 행동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사태의 과정을 내 곁에서 지켜본 딸아이는 불쾌해했다. 예전의 나 같으면 역시
욱하는 성질로 한마디쯤은 건넸을 것이다. 나는 A형이니까.
그러나 나는 그냥 조용히 돌아서 나왔다. 돼지고기 몇 점에 모처럼의 가족여행의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아직도 여전한 구석이 많지만, 나이가 들어서야
감정 표현의 수위 조절이 조금이나마 가능해진 것도 같다.
“지들이 뭔 대단한 보물단지라도 파는 줄 아나보다.
제주도에 돼지고기 파는 곳이 또 없겠냐?”
우리는 불쾌한 생각을 털어버리고 서귀포 시내 쪽으로 차를 몰며 식당을 찾았다.
이틀 뒤 이번에는 전화를 하지 않고 시간도 좀 일찍 다시 그곳을 찾았다.
첫날 만났던 여직원이 우리를 알아보았다. 다시 그곳을 간 이유는 인터넷에
소문난 그곳 고기가 못내 아쉬워서가 아니라 이번 제주여행 중에 있었던
유일하게 불쾌한 기억을 해소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카운터를 경유하지 않고 직접 고기를 굽는 곳으로 안내되어 이번에는 주인 여자와
대면하지 못했다. 목포고을엔 고기를 직원들이 구워주는 중년의 사내와 좀 더 다른
젊은 사내가 있었다. 둘 다 농담을 잘 했고 싹싹했다. 두꺼운 돼지고기는 매우 부드러웠고
김치국밥은 고기의 느끼해진 입맛을 개운하게 씻어주었다. 여직원은 지난번에 일에 대한
사과의 뜻으로 주문한 김치국밥의 양을 많이 담아왔다고 했다.
화장실을 다녀오면서 눈이 마주친 주인여자는 나를 기억하지 못했다.
그녀의 큰 소리가 나를 향한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떻건 상관없는 일이었다.
나는 그 장소와 기억에 화해를 했으니까. 길을 지나다가 우는 아이를 달래놓고 가지
않으면 그때 그곳의 그 아이는 영원이 우는 모습으로 남아 있게 될 것이라고 말한 사람이
쌩떽쥐베리였던가? 나쁜 기억을 오래 담고 살 일은 아니다.
삶은 유한한 것이고 진짜 분노해야 할 일만도 세상엔 넘쳐나고 있으니까.
(전화:064-738-555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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