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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잘 먹고 잘 살자 29 - 제주도 모슬포 "항구식당"

by 장돌뱅이. 2013. 8. 15.

뭔가 자꾸 꼬이는 날이 있다. 바로 이 날이 그랬다.
원래는 한라산을 오르기로 한 날이었다. 그런데 아침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제주도에 오기 전의 날씨예보에 따르면 맑아야 하는 날이었다. 비오는 날의 장거리
산행은 망설여졌다, 괜찮다고 말은 하지만 아내의 몸 상태도 고려해야 했다.
결국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대신에 한두 곳의 볼거리와 맛 좋은 식당, 분위기 좋은 카페 등을 다니며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세 가지를 고려하여 동선을 짰다. 아침은 숙소 가까운 곳에서 먹고
점심은 안나식당이라는 곳을 잡았다. 돼지고기 육수에 불린 모자반을 넣어 만든,
제주토종음식인 몸국을 먹어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네비게이션의 따라 대정읍의 안나식당을 찾아갔더니 식당의 주인장이
재료가 떨어져 할 수가 없다고 했다. 늦은 저녁도 아니고 점심시간이 막 지난
오후 2시경이었다. 한 끼 먹자고 다른 곳으로 가는 것도 뭐해서 기왕에 왔으니
다른 거라도 좋다고 했더니, 밥도 떨어지고 아무 것도 되는 게 없다고 했다.
점심시간에 손님이 특별히 많았던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정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발을 돌려 육고기를 좋아하는 딸아이를 위해 역시 인터넷에서 알아두었던 
정낭갈비를 가기로 했다. 배가 그리 고프지 않아 서둘 것은 없었다. 다시
네비를 찍고 정낭갈비로 향했다. 전화번호만 찍어도 안내가 되었다. 그런데 이런!
20여 분 달려간 정낭갈비의 모습이 먼발치서도 뭔가 불길한 기운을 흘리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문은 닫혀있고 정기휴무라는 팻말이 걸려 있었다. 아내와 딸아이가
차안에서 웃어댔다. “아 이거 뭐야!” 나는 씩씩거리며 근처 적당한 식당에서 점심
해결을 생각하다가 간밤에 아내가 물회가 괜찮다고 말한 것을 생각하고 물회에
적당한 식당을 찾았다.

항구식당. 네비에 다시 전화번호를(064-764-2254) 입력하고 차를 몰았다.
그런데 목표 지점이 다가오자  뭐가 이상했다. 창밖의 풍경이 눈에 익었다.
그랬다. 처음의 안나식당 근처로 되돌아온 것이다. 도깨비에 홀려 밤새 제자리를
맴돌았다는 옛사람처럼. 모슬포는 대정읍에 속한 항구였다. 기계적으로 네비에
전화번호만 찍고 다니다보니 생겨난 일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안나식당 후에 바로 이곳으로 올 것을.
누가 속인 것도 아니니 괜히 좀 더 억울했다. 
다행히 이곳 식당은 배신을(?) 하지 않았다. 문이 열려 있었다.
때마침 빗방울도 거세지고 배도 고팠다.

항구식당에서는 물회 대신에 주인이 권하는 방어회를 먹었다. 자리물회는 여름철이
제철이기도 했다. 좀 더 찬바람이 불어야 나오는 줄 알았던 방어를 뜻밖에 장소에서
천신만고(?) 끝에 맛보게 된 것이다. 회만으로는 좀 허전해 고등어구이도 한 접시 시켰다.
비오는 날의 회는 좋지 않다고 하지만 창밖으로 내리는 비 때문에 실내 분위기가
더 아늑하게 느껴져 좋았다.

식사를 마치고 점 찍어둔 카페를 찾아갔더니 꼬이는 날답게 이사를 갔다고 했다.
정말 ‘대박’의 하루였다. 이쯤 되니 꼬이는 것도 즐거움이 되었다.
인간만사세옹지마!
꼭 반전의 좋은 일이 없어도 가끔씩 꼬이기도 하는 게 인생이리라.
우리는 삶의 묵직한 지혜를 깨우친 사람들처럼 낄낄거리며 빗속을 달렸다.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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