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가까운 전철역 주차장에 차를 주차 시키고 전철을 탔다.
미 서부는 대중교통이 거의 죽은 지역이다. 실핏줄처럼 희미하게
존재할 뿐이다. 그것의 연결망에만 의탁하여 일상생활을 하기는
실제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운행횟수도 많지 않다.
그래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일은 작심을 하고 계획을 해야 하는
특별한 일이 된다. 1회 이용에 2.5불이나 5불짜리 티켓이면 하루종일
버스와 전철을 탈 수 있으니 늘 데이패스를 끊게 된다.
전철은 지하철이 아닌 지상철이다. 뉴욕의 침침한 지하철에 비하면
환경이 월등하다. 손이 운전대를 잡지 않으면 세상이 여유로워 보인다.
스쳐가는 창밖의 풍경이 한결 한가로워 보인다.
샌디에고 시내의 까페 클로이 CHLOE (721 9TH AVE.)는
아내와 내가 좋아하는 브런치 장소이다. 팬케익이나 에그베네딕트에 같은
브런치 하면 떠오르는 통상적인 음식 이외에 클로이만이 만들어내는
퓨젼 음식들이 입을 즐겁게 하는 곳이다.
까페 클로이에서 바다쪽으로 몇 블록을 걸으면 씨포트빌리지 SEAPORT VILLAGE
가 나온다. 씨포트빌리지는 옛날에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어촌과는
상관없는 바다를 끼고 있는 상업지구다. 기념품이나 그림, 공예품을 파는
상점과 식당들이 모여 있는 공원과 같은 곳이다.
3월 하순 씨포트 빌리지 에서 버스커 BUSKER 들의 축제가 있었다.
버스커는 거리에서 음악을 연주하거나 다른 공연을 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버스커 축제는 공연을 하는 사람들에게 놀이판을 마련하고 휴일의 한 낮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에게는 볼거리를 제공하면서 상점들의 판매고도 올려보려는
의도로 기획된 이벤트겠다. 상업적인 의도가 있다는 것이 불순함과 동일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상업성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아프리카나 동남아
정글 깊숙한 곳에서 석기시대의 모습으로 사는 사람들도 그것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문제는 어떤 내용의 상업성인가 하는 것일 게다.
길거리 공연은 공연자와 관중이 밀착되어 함께 호흡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규격화된 좌석과 전면에 배치된 무대로 공연자와 관중이 격리된 상설극장에선
느낄 수 없는 분위기가 있다. 경계가 없고 입장료라는 ‘의무감’이 없다보니 놀이판을
벌인 사람도 보는 사람도 편안하고 자유로웠다.
기이한 악기로 연주하는 사람, 공중돌기를 비롯하여 도구를 이용하여 곡예를 부리는
젊은이, 춤을 추거나 동상처럼 움직이지 않는 여인 등 길거리 곳곳에 다양한 공연들이
발걸음을 잡았다. 라스베가스의 쇼처럼 화려하고 거창하진 않았지만 저마다 아기자기
하고 어릴 적 추억처럼 소박한 공연들이었다.
아내와 다리가 아플 때까지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길거리에는 자생적인 문화 잠재력이 숨어 있다. 거기에서는 우연한 만남과
즉흥적인 해프닝을 통해서도 창조적인 마음의 상승효과가 일어날 수 있다.
2002년 월드컵 길거리 응원의 신화는 바로 그 폭발적 에너지를 만끽한 경험
이었다. (......) 직장이나 학교에서 일과를 끝내고 길거리를 통과하는 동안,
우리는 잠시 단출한 해방감에 젖어든다. 길거리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사이에
있는 제3의 공간, 업무와 일상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완충지대이다. 윗 사람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고 공부의 압박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그 공간은 일종의
안식처이다. 또 길거리는 언제나 표현과 소통의 공간이 될 수 있다.
황량한 빈민가에서 힙합이 태동하였듯이.
- 김찬호, “문화의 발견”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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