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일로 가끔씩 LA에 갈 일이 생긴다.
사실 미술관을 가거나 류현진의 야구를 보러 가는 일이 아니라면 LA라는 도시는
별로 가고 싶지 않은 곳이다. 가장 큰 이유는 혼잡한 교통 때문이다.
미국 생활 수년 동안 샌디에고의 (출퇴근 시간만 제외한다면) 한적한 교통 흐름에
익숙해진 터라 시도 때도 없이 막히는 엘에이의 교통엔 운전석에서 자꾸 몸을 뒤틀게 된다.
아내는 그럴 때마다 "이러다 서울에 가면 어떻게 운전을 하겠냐?"고 혀를 차곤 한다.
(꼭 교통체증 때문만은 아니지만 한국에 돌아가면 아예 자동차를 갖지 말까 생각 중이다.)
좀더 빨리 달릴 수 있는 카풀 CARPOOL 레인을 타기 위해 엘에이행은 대부분의 경우
아내와 동행을 한다. 카풀선은 탑승자가 2인 이상인 차량만 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리웨이를 벗어나 시내에 들어서도 사정은 별로 나아지지 않는다.
특히 사거리에서 익숙치 않은 비보호 좌회전은 내겐 매번 큰 고역이다.
맞은 편에서 오는 직진 차량이 우선이다보니 샌디에고에서처럼 정지선 뒤쪽에서 얌전히
차례를 기다리다간 신호가 한바퀴 돌아도 제자리에서 꼼짝 못하기 일수다.
이럴 때마다 뒷차는 연신 크락숀을 눌러대며 불만을 드러낸다.
어쩌란 말인간 직진 차량이 끊임없이 줄 지어오는데......
그럴 때마다 한국에서 운전을 처음 배울 때처럼 '차대가리부터 들이밀고 볼까' 하는
고민도 여러 번 해보았다. 미리 사거리 중앙까지 나가서 대기를 하다가 작은 빈틈이 보이면
급히 좌회전을 하라는 LA 거주 30년 고참 교민의 충고를 듣기까지는.
어쩔 수 없이 가야하는 LA행이지만 오고가는 길에 들릴 수 있는 아름다운 해안은
큰 위안이자 매력이 된다. 물론 헌팅턴비치, 뉴포트비치, 라구나비치 등의 이름난 해변을
보기 위해서는 지름길인 프리웨이를 벗어나 해안도로로 조금 우회하는 수고를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해안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거나
싱싱한 바닷바람에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잠시 해변을 걷다가 보면
그런 수고가 전혀 낭비가 아닌 가치 있는 투자임을 인정하게 된다.
얼마 전 엘에이에 갈 일이 생겼다.
차가 막혀 혹 약속 시간에 늦을까 새벽같이 올라가야 했다. 일을 보는 동안
호텔 커피숖에서 기다리던 아내와 다시 만나 간단히 식사를 하고 롱비치로 향했다.
샌타카탈리나 섬으로 향하는 배를 타기 위해서였다.
마침 금요일이라 섬의 숙소에 하루 저녁 예약까지 해 놓았다.
이번에는 매번 들리던 해안에서 벗어나 좀 다른 일정을 만들어 본 것이다.
샌타카탈리나 섬은 롱비치에서 서남쪽으로 약36km 해상에 떠있는 섬이다.
길이 34km, 폭 13km로 우리나라 거제도의 반만한 면적을 지녔다.
샌타카탈리나 섬의 존재는 오래 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아담하고 깨끗하다고 했다.
하지만 가까이 있어 언제든 다녀올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미루다가
미국 거주 6년 만에 이번에 처음 가게 되었다.
배를 타고 한 시간 쯤 달리자 수평선으로 기운 저녁 햇살에 섬의 형태가
검은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했다. 작은 섬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배 갑판에서 마주한 섬은 상대적으로 더욱 커 보였다.
마치 바다 위에 웅크린 거대한 공룡과 같은 모습이었다.
배가 닿는 곳은 섬의 중심지인 아발론 AVALON .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천천히 걸으면 30분 정도 걸리는 작은 포구이다.
집들이 해안 급경사를 따라 층층이 조밀하게 들어서 있었다.
미국의 도시가 아니라 마치 사진 속에서 보던 유럽의 어느 항구 도시 같았다.
숙소에 짐을 풀고 아내와 천천히 아발론의 시내를 걸어다녔다.
여름철의 극성수기를 지난 섬은 조용했다. 한 가게 주인은 여름철이 지나도
주말에는 늘 사람들로 넘치나 이번 주만 예외적이라고 했다.
요트들이 떠있는 바다 위로 달이 떴다. 만월에 가까웠다.
내일이 보름이라고 아내가 알려주었다.
달이 구름도 없이 텅 빈 허공으로 높이 솟아오르고 수평선이 어둠으로 지워지는 동안
우리는 천천히 바닷가를 오르내렸다.
바쁜 중의 한가로움. 거기엔 감미로움이 더해진다.
탁자 위에 오렌지 한 개
양탄자 위에 너의 옷
그리고 내 침대 속의 너
지금의 달콤한 현재
밤의 신선함
내 삶의 따사로움.
-자크 프레베르 JACQUES PREVERT 의 시, "알리칸테 ALICANTE" -
(알리칸테는 스페인의 항구도시라고 한다.)
사진 몇 장을 짧은 설명과 함께 첨부해 본다.
*위 사진 : 멀리 보이는 곳이 롱비치의 모습이다.
*위 사진 : 아발론에는 카지노 CASINO 란 곳이 있다. 그러나 도박과는 상관없는
박물관이고 영화관이다. 우리는 시간이 늦어 안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숙소의 직원은 카지노가 이탈리아어로 "GATHERING PLACE"를 뜻한다고 말해 주었다.
*위 사진 : 아발론의 풍경
*위 사진 : 아침 산책 길에 무심코 뒤를 돌아보는데 난데없는 사슴이 우뚝 서있었다.
녀석은 동네에 내려오는 것이 익숙한 일과인지 나의 행동에 무관심했다.
가까이 다가가 손이 닿을 거리 쯤이 되자 비로소 천천히 옆쪽 언덕으로 올라갔다.
숙소의 직원은 흔한 일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는 또 섬에는 많은 들소가 있다고 알려주었다.
오래 전 영화 촬영을 위해 들여왔다고 하는데 지금은 이곳에 적응하여 살고 있다고 한다.
개체수가 너무 불어나 몇 해 전에는 수백 마리를 육지로 다시 옮기기도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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