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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미국

워싱턴 DC 단상2 - 마틴 루터 킹목사

by 장돌뱅이. 2013. 12. 5.

*위 사진;워싱턴DC 티달 베이슨 둘레길의 벚나무

벚꽃축제는 봄철 워싱턴 DC의 가장 유명한 행사이다. 티달 베이슨 TIDAL BASIN 둘레길을 따라선  오래된 벚꽃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벚꽃이 진 후였지만 잎이 무성한 나무와 호수의 물이 어우러진 풍경만으로 충분히 아름다웠다. 1912년 미국과 일본의 우호증진을 위해 동경시장이 당시 미국 27대 대통령 윌리엄 태프트(WILLIAM TAFT)에게 보낸 것이라고 한다.  DC에서는 벚꽃도 정치의 소산임을 보여주는 듯했다. 

태프트가 누구인가? 우리가 역사 시간에 배웠던 이른바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당사자이다. 1905년 7월 일본 수상이었던 가쓰라 타로와 루스벨트 미 대통령의 특사였던 태프트 국방장관은 미국의 필리핀 지배와 일본의 한반도 강점을 서로 인정하고 동의했다. 식민지 나눠먹기의 밀약이었다. 그로부터 넉 달 후인 1905년 11월에 있었던 을사늑약의 서곡이자 발판을 만든 것이다. 지난 식민지 강점의 역사를 기억하는 한국인으로서 벚꽃은 벚꽃일 따름이고 아름다운 풍경은 아름다움일 뿐이라고 '쿨'해지거나 '순수'해지기는 힘들었다.

 그러나 아내와 나의 감정과는 상관없이 DC의 벚꽃은 이젠 DC에 안착한 ‘토종’ 명물이 되어 많은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일본 문화를 전파하는 상징으로 막강한 위력을 과시하고 있는 중인 것 같았다. DC를 여행하는 한 계절과 상관없이 벚꽃은 피할 수 없었다. 념품점이나 박물관에서 벚꽃은 그림이나 엽서, 글이나 책, 크고 작은 장식품 등의 다양한 모습으로 너무도 쉽게 다가왔다.

*위 사진 ; 마틴 루터 킹목사의 기념공간.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기념물은 티달 베이슨과 벚나무 숲과 접해 있다. 1963년 8월 28일 노예해방 100주년을 맞아 워싱턴에서 열린 평화행진에 참가했던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유명한 - 흔히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이라고 알려진 - 연설을 하게 된다. 나는 고교 시절 '정통(성문)종합영어'에서 이 연설문의 일부를 처음으로 읽었다. 짧은 인용문이었지만 연설문이 아니라 마치 시처럼 느껴졌다. 공부와는 담을 쌓고 지냈으면서도 대학에 들어온 후에 원문을 구해서 읽어볼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이 나라가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것을 자명한 진실로 받아들이고, 그 진정한 의미를 신조로 살아가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조지아의 붉은 언덕 위에 예전에 노예였던 부모의 자식과 그 노예의 주인이었던 부모의 자식들이 형제애의 식탁에 함께 둘러앉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의 네 자녀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따라 평가받는 그런 나라에 살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오늘 저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흑인 소년 소녀들이 백인 소년 소녀들과 손을 잡고 형제 자매처럼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상황이 되는 꿈입니다. 오늘 저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어느 날 모든 계곡이 높이 솟아오르고, 모든 언덕과 산은 낮아지고, 거친 곳은 평평해지고, 굽은 곳은 곧게 펴지고, 하느님의 영광이 나타나 모든 사람들이 함께 그 광경을 지켜 보는 꿈입니다.

그러나 흑인 차별 철폐를 위한 운동과 집회, 행진과 연설, 1964년 그가 받은 노벨평화상으로도 세상의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그가 옛 노예와 상전의 자식들이 다정히 식탁에 앉기를 바랐던 조지아에서는 1966년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애틀랜타에서 음식점을 경영하고 있던 매독스라는 사내는 어느 날 흑인 성직자가 식사를 하러 자신의 식당에 들어오자 내쫓았다. 그냥 내쫓은 게 아니라 도끼를 들고 죽일 듯이 달려들었다. 이 순간은 신문기자의 사진에 찍혀 기사화되었고 그와 그의 도끼는 하루아침에 유명해졌다. 그를 바라보는 시각은 둘로 나뉘었다. 상식적인 사람들에게 그와 그의 도끼는 인종 차별의 화신이며 잔인하고 끔찍한 폭력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쪽인 극단적 보수주의자들에게 그와 그의 도끼는 ‘모세이고 성스러운 지팡이’로 부추김을 받았다. 이 일로 유명해진 그는 나중에 주지사에 출마까지 했다고 한다. 그리고 잘 알려져 있다시피 1968년 킹 목사는 끝내 암살되고 말았다.

여행지에 스민 어떤 사연을 대할 때 우리는 종종 두 가지를 질문을 하게 된다. 하나는 “그래서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이고 또 다른 하나는 “우리는 어떤가?”이다.
이 경우 지금 아메리카 흑인들은 모습과 상황은 어떨까? 그리고 우리 사회에는 흑인 차별과 같은 일은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질문이 되겠다. 두 질문의 답에 킹 목사의 연설은 여전히 유효한 참고가 된다고 생각한다.

*위 사진:W호텔과 꼭대기의 BAR POV에서 본 백악관쪽 풍경

 DC에서 가장 인기 있는 BAR(식당) 중의 하나는 P.O.V.(POINT OF VIEW) 일 것이다. HOTEL WASHINGTON의 11층 옥상에 있다. 이곳에서는 (좀 멀긴 하지만) 백악관의 옆면을 볼 수 있다. 그리고 툭 터진 시야로 워싱턴 기념비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휴식과 식사를 겸할 목적으로 갔다. 예약이 필수라고 해서 사전에 하고 갔는데 한낮이라 그런지 기다릴 정도는 아니었다. 백악관은 가깝게 있기는 했지만 재무부 건물에 가려 시원스럽게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도 보안을 생각해서인지 바 내부에 (청원?)경찰로 보이는 두어 명이 근무 중이었다. 대단히  인상적인 곳은 아니었다. 다만 맑은 날씨에 열린 공간의 시원한 분위기가 좋아 아내와 오래 해찰을 부리다 나올 정도는 되었다.

그러나 여행을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이 호텔은 한동안 한국 뉴스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이 되었다. 바로 청와대 대변인으로 대통령의 공무를 수행 중이던 한 인사가 나이 어린 인턴 여직원에게 저지른 추접한 행위 때문이다. 그는 이곳 옥상 BAR에 먼저 왔다가 트인 공간이 자신의 일을(?) - 본인은 ‘그냥 허리께를 툭 쳤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 하기에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는지 지하에 있는 BAR로 내려갔다고 한다.

그보다 앞서 우리가 이곳을 다녀온 것은 그나마 행운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예 가보지
않거나, 그곳에 머무는 내내 찝찝한 기분을 떨쳐낼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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