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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8

초복 노노스쿨에서 만들어 온 "오징어 채소전"과 "부추들깨 무침", 그리고 "흑미삼계탕"에 막걸리를 곁들여 아내와 복달임을 했다. 옛날에 비해 섭생 과잉의 현대인에게 복달임은 이제 여름의 무더위를 이기기 위한 영양 보충의 의미보다는 안 하면 뭔가 좀 서운한 전통의 행사쯤이 되겠다. 노노스쿨이 방학에 들어갔다. 즐거운 배움터였기에 아쉬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방학이 가져올 여유와 휴식이 싫지 않았다. TV연속극 "녹두꽃"을 보고 아내와 열두 시가 가까운 늦은 밤 큰길을 따라 산책을 했다. 함께 하는 산책은 오붓한 나눔과 성찰이 있는 시간이다. 생각과 대화를 나누고 나눔을 통해 때로 삶의 고갱이에서 이탈한 일상의 궤적을 돌아보게 된다. "눈에 보이는 것, 발에 밟히는 것, 귀에 들리는 모든 것들이 본질로 와닿는다".. 2019. 7. 13.
내가 읽은 쉬운 시 126 - 김용택의「비오는 날」 눈이 떠진 아직 캄캄한 새벽. 옆자리 잠든 아내의 고른 숨소리가 편안했다. 거실로 나가 창문을 조금 열고 소파에 누워 빗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파트에서는 좀처럼 듣기 힘든 빗소리가 고요한 새벽어둠을 건너 방으로 들어왔다. 토닥토닥. 정원에 심어진 나무 잎에 떨어지는 소리이리라. 마른 장마 끝에 모처럼 내리는 빗물을 맹렬히 빨아들이는 나무들의 숨소리도 더해졌을 것이다. 그 나무에 둥지를 튼 새들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몸을 웅크려 날개 죽지에 부리를 묻고 비를 견디고 있을까? 왜 새들은 둥지에 지붕을 만들지 않는 것일까? 『숫타니타파』의 게송(偈頌)을 떠올려보기도 했다.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평안하라. 안락하라." 그러다 스르르 다시 잠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비가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2019. 7. 11.
잘 먹고 잘 살자 57 - 다시 이태원, 2016 이후 조리 수업을 받으러 일주일에 세 번 이태원 근처에 가게 되면서 이태원이 생활 반경 안에 들어 왔다. 가까운 곳에서 즐거움 찾기. 아내와 자주 이태원을 걸어보기로 했다. 이태원을 향해 어디서부터 걷거나 이태원으로부터 시작해서 다른 어느 곳을 향해 가는 것도 포함한다. 싱그러운 숲길의 적요나 시원스런 강변길의 통쾌함이야 더 없이 좋지만 도시에 살면서 매일 마주하게 되는 도시의 길을 너무 외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차들이 줄지어 달리고 사람들이 어깨를 부딪힐 정도로 북적여 어느 한 가지에 정신을 집중하기 힘들다 해도 그것이 숲길이나 강변보다 더 가까운 일상 속의 풍경이니 어쩌겠는가. 더군다나 이태원엔 거리거리 골목골목 다양한 나라와 민족의 'MOUTHWATERING CUISINE'이 포진하고 있지 않은가.. 2019. 7. 9.
차(茶)에 대한 주절주절2 노노스쿨에서 커피에 이어 듣는 차에 관한 강의가 마무리를 앞두고 있다. 앞선 글 "차에 대한 주절주절 ( https://jangdolbange.tistory.com/1823 )" 에 덧붙여 본다. 차에 대하여 차는 차나무 잎만이 아니라 온갖 식물의 뿌리나 줄기, 열매를 달이거나 우려내는 음료 모두를 통틀어 이르므로 커피에 비해 우선 원천 재료가 훨씬 많아 보인다. 거기에 다른 재료와 혼합하는, 이른바 '브렌딩(BLENDING)'이라는 경우의 수가 무궁무진해지므로 이를 통하여 만들어내는 새로운 맛 또한 그러할 것이다. 음식이나 음료나 '퓨젼'이 대세인 것 같다. 커피와 차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식음료뿐만이 아니라 모든 문화의 본질이 '퓨전'이긴 하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2019. 7. 7.
내가 읽은 쉬운 시 125 - 이성부의「벼」 도시농부 수업 시간에 벼를 심어 봤다. 2리터 팻트병을 잘라 흙을 넣고 벼 몇 포기를 심는 간단한 실습이었다. 논에 가득한 벼만 보다가 물병 속에 담긴 벼를 보니 옹색하기 그지 없었다. 몇 사람이 교실 한 쪽에 줄을 세워 모아놓으니 그나마 벼다운 벼를 보는 것 같았다. 선생님은 물을 채워 바람이 잘 통하고 해가 잘 드는 곳에 두라고 했다. 물과 바람과 햇빛도 벼 속에 녹아 스며들어 벼를 키우는 환경이자 자양분이라는 뜻이겠다.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오래된 미래(ANCIENT FUTURE)』는 인도 북부 히말라야 접경 라다크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기록한 책이다. 책에 따르면 라다크인들은 나무 한 그루를 고립된 존재로 분리해서 보지 않고 나뭇잎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이나 그것을 흩날리게 하는 바람, 나무.. 2019. 7. 5.
잘 먹고 잘 살자 56 - 한남동 식당 몇 곳 2007년 나는 아내와 몇 달에 걸쳐 이태원 일대를 돌아보며 관련 글을 한 여행 관련 웹진에 올린 적이 있다. - https://jangdolbange.tistory.com/411 - https://jangdolbange.tistory.com/412 시간이 십년이 넘게 흘렀다. 그 사이 나는 퇴직을 하여 백수가 되었다. 당연히 이태원이나 한남동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마침 일년 간 조리 수업을 받는 장소가 이태원쪽이라 수업 후 아내와 주변을 돌아보기로 했다. 이전과 다른 것은 몇몇 음식점을 돌아보고 집에까지 걸어가는 계획을 잡은 것이다. RESTAURANT HOPPING & WALK!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두어야 할 지는 모르겠으나 두 가지 다 좋아하는 일이다. 수업이 끝나는 시간이 오후 세시라.. 2019. 7. 4.
내가 읽은 쉬운 시 124 - 김재룡의「개망초에게」 이른 봄 아파트 화단 양지쪽에 노란 씀바귀 꽃이 한두 송이 듬성듬성 보이기 시작하더니 오래지 않아 화단에 온통 노란빛이 가득할 정도로 피어났다. 하늘하늘 흔들리는 모습이 앙증맞아 지날 때마다 발걸음을 멈추곤 했다. 화단 둘레에는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심은 개량철쭉이 화려했지만 저절로 피어난 씀바귀의 자태가 더 고왔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씀바귀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파트 관리실에서 대대적인 화단 청소를 하면서 잡초들을 다 잘라버렸기 때문이다. 잠시 아쉽고 허망했지만 자신의 일에 충실한 분들의 부지런함을 탓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초여름에 들면서 다시 자라난 씀바귀 사이에서 이번엔 하얀 개망초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개망초는 흔히 군락을 이루어 사는 꽃이니 장마가 끝날 무렵이면 아파트 화단은 흰색으로.. 2019. 7. 3.
발밤발밤48 - 올림픽공원 이런 속담.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 "소매 긴 김에 춤춘다." 서울 간 김에 남산 가고 시장 간 김에 오뎅 사먹듯 어젠 잠실 간 김에 아내와 올림픽공원엘 갔다. 그리고 걸었다. 걷기는 아내와 나의 일상이다. 별일 없어서 걷지만 일단 걷기 시작하면 시공간은 늘 특별하게 변화한다. 말하기, 침묵하기, 공상하기, 구름 쳐다보기. 바람 느껴보기 등등. 우리 스스로에게나 늘 그 자리에 있어온 예사로운 것들을 향해 마음이 열리기 때문이다. 지하철8호선 잠실에서 아내와 만나 한 정거장을 가니 몽촌토성역이다. 출구가 계단 끝에서 하늘을 향해 시원스레 열려 있다. 저 마지막 계단을 오르면 무엇이 있을까? 기대감이 차오른다. 익히 알고 있는 풍경임에도. 누구 못지 않은 스포츠 팬으로 자처하면서도 나는 그 해 올림픽.. 2019. 7. 2.
내가 읽은 쉬운 시 123 - 장철문의 「흰 국숫발」 *바삭불고기 *콩국수 여름엔 콩국수! 내가 좋아하여 어머님께서 생전에 자주 해주시던 음식이라 각별하다. 마루에 앉아 맷돌을 돌려 콩물을 내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지난 주 노노스쿨의 조리 메뉴가 콩국수였다. 그런데 다른 일 때문에 이론 강의만 듣고 실습을 하지 못했다. 마침 귀촌을 한 누나가 보내준 대두콩이 있어 주말을 이용해 만들어 보았다. 밤새 불린 대두콩을 삶고 잣과 함께 갈아서 콩국물을 만들고 국수를 삶았다. 그리고 오이를 채썰어 방울토마토와 함께 고명으로 올리니 수업 시간에 배운 모양이 나왔다. 맛은 식당에서 먹는 맛과 견줄만 했다. 고소한 맛이 나도록 콩을 삶는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이었다. 조리선생님은 10분 이내로 삶는 것이 기준이나 화력이나 삶는 도구 등에 따라 달라지므로 5분이 지.. 2019. 7.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