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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5

내가 읽은 쉬운 시 133 - 심호택의「방학숙제」 동무들과 망둥어 낚으러 오가는 길 어느 날 벼포기 알 배고 논두렁콩 매달리면서 들판 건너 하늘 훤하게 떠오르면 여름도 그만이다 개학 날짜 다가오는 것 웬수 같아라 밀려 나자빠진 방학숙제 학교 가기 하루 전날 그날도 저녁먹고 나서야 주섬주섬 챙기는데 일기 쓰기 제일로 골치아퍼라 한달 것 한나절에 지어내기도 막막하거니와 그증에서도 고약한 일은 찌푸렸다 갰다 그날 그날 날씨 모르겠는 것 가물거리는 등잔불 아래 모기 뜯기며 고민하는 모양 안되었던지 동네 마실꾼까지 거들고 나서는데 한달 전 그때 비왔느니라― 무슨 소리냐 땡볕에 까치란 놈 대가리 깨지겠더라― 아니여 아니여 비가 오락가락했느니라 ― 밤은 깊어가고 졸음은 쏟아지고 제기랄 것 누구 말을 들어야 하나 노노스쿨의 개학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방학이라서 좋.. 2019. 8. 16.
하루 앞당긴 말복 딸아이 가족을 집으로 초대하여 식사를 나누었다. 일요일이 말복이었지만 하루 앞당겨 복달임을 한 것이다. 메뉴는 노노스쿨 일학기 마지막 수업에 했던 삼계탕과 오징어채소전, 부추들깨무침이었다. 일학기 동안 논스쿨에서 배운 음식 중에 고르라 했더니 사위가 삼계탕을 찍었다. 아내는 오징어채소전과 부추들깨무침도 삼계탕과 같이 배웠으니 당연히 같이 만들어내야 한다고 했다. 아내의 주장은 내겐 '지상명령', 판이 생각보다 커져도 따라야 했다.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고 상차림을 하는 내내 느껴지는 흥겨움. 역시 음식은 사랑이고 맛은 나눔에서 나온다. 어릴 적 어머니를 따라간 모내기나 벼베기 철의 들밥의 맛이 각별했던 건 그 왁자지껄한 축제 분위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거기에 손자친구와 놀 수 있는 건 덤이다. 아니 그게.. 2019. 8. 12.
내가 읽은 쉬운 시 132 - 안도현의「물외냉국」 어릴 적 오이를 잘라 가운데 부드러운 부분을 손가락으로 파내고 잔처럼 만들었다. 그리고 물을 담아 어른들이 술을 마실 때 내는 "카아!" 소리를 흉내내며 친구와 여러번 대작을(?) 하다가 아버지한테 야단을 맞았다. 애초 술을 상상하기보다 물에서 나는 향긋한 오이 냄새가 좋아서 한 짓이었다. 그 무렵 어머니가 만들어주시던 오이냉국. 펌프 물인데도 그릇에 이슬이 맺힐 정도로 시원했다. 막걸리 식초를 넣어 새콤해진 맛도 잠시 더운 여름을 쫓는데 도움이 되었다. 무엇보다 오이가 아삭하게 씹힐 때마다 입과 코에 퍼지는 은은한 향기가 좋았다. 그런데 이상하다. 딸아이는 바로 그 향기 때문에 오이를 싫어한다. 좋아하는 이유와 싫어하는 이유가 같다는 말은 이럴 때 정확히 들어맞는다. 아쉽지만 그래서 오이냉국은 딸아이와.. 2019. 8. 8.
내가 읽은 쉬운 시 131 - 서정홍의「밥 한 숟가락에 기대어」 몸이 아프면 보통 식욕도 떨어진다. 마음이 아플 때도 밥을 삼키기 힘들어진다. 땀을 흘리며 거뜬히 비워버린 밥 한 그릇은 건강 회복의 증표가 된다. 따뜻한 밥 한 그릇이 위로와 위안이 될 때도 있다. 먼 길을 떠나는 겨레붙이나 친구에게 지어 내놓는 따뜻한 밥 한 그릇엔 말로 다 할 수 없는 살가움과 애틋함이 스며 있는 법이다. 아무튼 누구나 먹어야 산다. 살기 위해 먹거나 먹기 위해 살거나 먹는 건 마찬가지다. 존재의 확실한 증명은 밥 먹고 똥 싸는 일이다. 아내와 나누는 밥 속에 그 모든 의미를 희망해 본다. 곱단씨, 우리 즐겁게 먹고 아름답게 삽시다. 밥 한 숟가락 목으로 넘기지 못하고 사흘 밤낮을 꼼짝 못하고 끙끙 앓고는 그제야 알았습니다 밥 한 숟가락에 기대어 여태 살아왔다는 것을 *위 사진 : .. 2019. 8. 7.
내가 읽은 쉬운 시 130 - 전봉준의「격문(檄文)」 최근 일본은 우리나라에 대한 수출품목 규제에 이어 이른바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우리를 제외시키는 2차 경제보복 조치를 감행했다. 자국의 이익을 얻고자 하는 두 나라간의 교역엔 더러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 교역 조건을 변화시켜 자국의 산업이나 이익을 보호하고 그 부담을 상대방에게 전가시키려는 것이 치열한 국제교역에서 발생되는 통상적인 분규의 시작이라면 이번 사태는 그와는 전혀 다르다. 자국 기업들의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남의 목줄을 죄겠다는, 일본의 피해보다 한국의 피해가 더 클 것이라는 계산된 전제하에 자행된 '가미카제식' 파괴 행위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도 생산적 이익은 돌아가지 않는다. 크고 작고 간에 양쪽 국민 모두에게 고통을 가중시키고 감정을 이간질 시키면서 아베와 그 권력의 무리들이 .. 2019. 8. 5.
내가 읽은 쉬운 시 129 - 안도현의「건진국수」 *위 사진 : "봉화묵집"의 건진국수 *위 사진 : "안동국시"의 건진국수 이십여 년 전 아내와 어린 딸과 함께 안동 여행을 갔다가 건진국수를 처음 먹었다. 건진국시는 이름대로 칼국수처럼 얇은 국수가락을 만들어서 삶은 다음, 찬물에 헹궈 건져내고 미리 만들어 식힌 육수에 말아내는 안동 지방의 전통 음식이다. 아내는 그다지 특별하게 기억에 남을 만큼의 맛은 아니었다고 했지만 나는 더운 여름에 시원한 육수에 잠긴 칼국수처럼 썬 수제 국수발의 맛이 인상적이었다. 입안에서 툭툭 끊어지는 특이한 식감은 국수 반죽에 콩가루를 넣어서라고 했다. 그런데 그 여행 이후로 건진국수를 먹을 기회가 없었다. 안동여행도 여러번 갔지만 더 이상 건진국수를 파는 곳을 만나기 힘들었다. 일반 칼국수에 비해 손이 많이 가기 때문일 것.. 2019. 8.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