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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내가 읽은 쉬운 시 130 - 전봉준의「격문(檄文)」

by 장돌뱅이. 2019. 8. 5.

최근 일본은 우리나라에 대한 수출품목 규제에 이어 이른바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우리를 제외시키는 2차 경제보복 조치를 감행했다.



자국의 이익을 얻고자 하는 두 나라간의 교역엔 더러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
교역 조건을 변화시켜 자국의 산업이나 이익을 보호하고 그 부담을 상대방에게 전가시키려는 것이
치열한 국제교역에서 발생되는 통상적인 분규의 시작이라면 이번 사태는 그와는 전혀 다르다.
자국 기업들의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남의 목줄을 죄겠다는, 일본의 피해보다 한국의 피해가
더 클 것이라는 계산된 전제하에 자행된 '가미카제식' 파괴 행위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도 생산적 이익은 돌아가지 않는다. 
크고 작고 간에 양쪽 국민 모두에게 고통을 가중시키고 감정을 이간질 시키면서
아베와 그 권력의 무리들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번 사태의 발단은 지난해 10월 대법원이 일제의 강제징용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준 데서 비롯되었다. "강제 징용은 야만적 행위이므로 1965년 한일간
청구권협정이 있었더라도 개별적인 요구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일제 강점기 동안 자신들이 저지른 야만적인 행위에 대해 사과는커녕 기만과 은폐로 일관하며
일본 우익을 대변해 온 아베는 이 판결이 '국제법 상식에 어긋난다'면서 '피고인 미쓰비시
중공업이 배상할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번 두 차례의 수출품목 규제 조치가 그런 배경에서 나온 치졸한 그러나 계획적인 보복 행위임을
누구나 알고 있다. 아베정권만 '순수한'(?) 경제적 조치일 뿐임을 연일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속셈을 뭔가 다른 것으로 포장하려는 억지가 오히려 자신들이 논리적 정담함을 갖고 있지
못함을
 스스로 자인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해방과 민주화의 과정에서 일제 잔재와 독재 잔재를 온전히 청산하지 못 했다면 일본 사회는 
국민들에게
고통을 강요하고 전쟁과 핵폭탄의 죽음으로 내몬 전범 잔재들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 했다.
그러기에 아베의 같은 무리들이 여전히 군국주의의 재건을 공공연히 획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일부 정치세력과 언론이 일본의 이런 논리에 동조·편승하는 수준을 넘어 오히려
부추기는 듯한 행위는 개탄을 넘어 놀랍기까지 하다. 조선일보 일본판엔 북미 정치쇼에는 들뜨고,
일본의 보복에는 침묵하는 청와대등의 제목의 기사가 실리고 중앙일보 일본판에는 반일은 북한만 좋고
한국엔 좋지 않다
’, ‘문재인정권 발 한일관계 파탄의 공포등의 제목을 걸었다고 한다.

나아가 조선일보가 (일본의 주장인) 한국이 전략물자를 불법 수출했다는 허위 보도를 하고 이를 일본의 언론과
정치인이 인용하면 이를 다시 조선일보가 받아서 보도를 하는 식의 유기적인(?) 순환 고리를 보이기도 했다.
불법 수출된 생화학무기 원료가 말레이시아에서 김정남 살해시 사용된 것과 같은 신경작용제의 제조 물질이라는
주장으로 공포감까지 조성하면서 말이다. 

때로는 “
숨가쁜 국제정세보다 더 구한말 같은 것이 이 순간 한국과 일본의 통치 리더십이다.
지금 일본엔 화려했던 과거를 꿈꾸는 지도자가 등장해 있다”며 아베를  치켜 세우는가 하면(6월28일자 칼럼)
 
"우리가 흥분하면 일본의 의도에 말려들 수 있다"며, '냉정하고 차분하게 대처해야 하는데',
"우리 사회 일부에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일으키려는 것도 득이 되지 못한다"며 '이성적인' 충고를 던지기도 한다.
조선일보의 '화려하고' 유구한 친일의 역사. 우리 사회는 언제까지 이를 용인해야하는 걸까?
"감상적 민족주의, 닫힌 민족주의에만 젖어 감정 외교, 갈등외교로 한일 관계를 파탄냈다"고 사태의 책임을
우리 정부에게 돌리는 야당의 주장도 비슷한 맥락이다. 파탄은 일본에서 시작된 것이지 않는가.
이럴 때일수록 무조건 한 목소리를 내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힘은 다양한 지혜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중할 때나 평화로울 때나 사실만을 말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원칙이고 진리일 것이다.

이것은 분명 침략이다. 경제 침략이자 인간과 역사와 국가의 존엄에 대한 좌시할 수 없는 침략이다.
이웃의 숨통을 죄여 강제로 굴복시키려는 의도가 명백하기 때문이다.
감성이건 이성이건 다 모아 작더라도 각자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실천해야 한다.
아내가 말했다.
"다시 촛불을 들어야겠네."
"안으로는 탐학한 무리들의 머리를 베고 밖으로는 횡포한 강적의 무리를 구축"하기에 촛불은 약해보이지만
무엇보다 강했던 감동스런 기억이 가까운 시간 속에 있지 않은가. 

시인 김수영은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온몸으로 밀고나가는 것'은 모두 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1894년 전봉준은 농민들과 함께 타락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그가 쓴 격문을, 그와 그와 함께 한 농민들이 온몸으로 시대를 밀고 나간 공동체의 의지로 믿어
나는 그것을 시로 읽는다.

우리가 의를 들어 여기에 이름은 그 본의가 단연코 다른데 있지 아니하고 창생(蒼生)을 도탄에서 건지고
국가를 반석 위에다 두고자 함이라. 안으로는 탐학한 관리의 머리를 베고 밖으로는 횡포한 강적의
무리를 구축(驅逐)코자 함이라. 양반과 부호 앞에 고통받는 민중들과 방백(方伯)과 수령 밑에 굴욕을 받는
작은 관리(小吏))들도 우리와 같이 원한이 깊은 자라. 조금도 주저치 말고 이 시각으로 일어서라.
만일 기회를 잃으면 후회해도 미치지 못하리라.
     - 갑오(甲午) 3월27일 호남 창의대장소(倡義大將所) 백산에서 전봉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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