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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내가 읽은 쉬운 시 127 - 안도현의「서울로 가는 전봉준(全琫準)」

by 장돌뱅이. 2019. 7. 14.


*사진 출처 : SBS 「녹두꽃」 홈페이지


텔레비젼 연속극 「녹두꽃」이 끝났다.
살아있는 캐릭터와 짜임새 있는 스토리가 지난 몇 달 동안의 주말 저녁을 즐겁게 했다.

고부 왈패였다가 동학군의 별동대장으로 변신한 가공 인물 백이강을 연기한 조정석의 매력이 단연 압권이었다.
거기에 전봉준이라는 묵직한 역사적 실재 인물을 맡은 최무성과 고부 군아의 이방이며 백이강의 아버지 백가(박혁권),
전주 여각의 행수 최덕기(김상호), 황진사 황석주(최원영) 등도 모두 현실감 있게 창조된 인물이었고 연기였다.

무엇보다 가슴을 뜨겁게 했던 건 '녹두꽃'으로 상징되는 그 시대의 전사들이었다.
구한말이라는 격변의
시대, 외세의 침탈과 무능한 권력의 폭정으로부터 백성을 구하고
동학으로 인즉천(人卽天)이라는 세상을 구현하기 위해 역사의 전면에 나선 그.
총알 앞에서도 영생불사를 믿으며 궁궁을을(弓弓乙乙)의 부적을 붙이고 거침없이 우금치로 달려가던 그들.
압송되어 가는 교자 위에서 형형한 눈빛을 쏘던 전봉준처럼 이름 석 자조차 남기지 못하고 스러진 그들.
 
 
그들의 고난스런 삶 쪽으로 역사의 무게는 기울어 왔다고 젊은 시절 배우지 않았던가. 





이제 또 다른 전봉준으로 부를 수밖에 없는 그 '이름없는 들꽃'들과
'그늘 깊은 땅속으로 젖은 발 내리고 싶어하던 잔뿌리'들을
나지막이 불러본다.
"봉준이 이 사람아!


눈 내리는 만경 들 건너가네
해진 짚신에 상투 하나 떠 가네
가는 길 그리운 이 아무도 없네
녹두꽃 자지러지게 피면 돌아올거나
울며 울지 않으며 가는
우리 봉준이
풀잎들이 북향하여 일제히 성긴 머리를 푸네

그 누구 알기나 하리
처음에는 우리 모두 이름 없는 들꽃이었더니
들꽃 중에서도 저 하 늘 보기 두려워
그늘 깊은 땅속으로 젖은 발 내리고 싶어하던
잔뿌리였더니

그대 떠나기 전에 우리는
목쉰 그대의 칼집도 찾아주지 못하고
조선 호랑이처럼 모여 울어주지도 못하였네
그보다도 더운 국밥 한 그릇 말아주지 못하였네
못다 한 그 사랑 원망이라도 하듯
속절없이 눈발은 그치지 않고
한 자 세 치 눈 쌓이는 소리까지 들려오나니

그 누가 알기나 하리
겨울이라 꽁꽁 숨어 우는 우리나라 풀뿌리들이
입춘 경칩 지나 수군거리며 봄바람 찾아오면
수천 개의 푸른 기상나팔을 불어제낄 것을
지금은 손발 묶인 저 얼음장 강줄기가
옥빛 대님을 홀연 풀어헤치고
서해로 출렁거리며 쳐들어갈 것을

우리 성상(聖上) 계옵신 곳 가까이 가서
녹두알 같은 눈물 흘리며 한 목숨 타오르겠네
봉준이 이사람아
그대 갈 때 누군가 찍은 한 장 사진 속에서
기억하라고 타는 눈빛으로 건네던 말
오늘 나는 알겠네

들꽃들아
그날이 오면 닭 울 때
흰 무명띠 머리에 두르고 동진강 어귀에 모여
척왜척화 척왜척화 물결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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