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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5

궁궁을을과 치마 동학농민전쟁 당시 농민군들은 몸에 궁궁을을(弓弓乙乙)이라 적힌 부적을 붙이거나 불살라 먹었다고 한다. 부적의 신통력이 관군과 일본군의 총탄을 무력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혹은 영생불사의 힘을 달라는 기도였는지도 모르겠다. 3월 7일 자 경향신문에 우리로서는 낯선 미얀마 시위 현장의 한 풍경이 보도됐다. 군부 쿠데타에 항의하는 미얀마 시위대들이 군경의 진입을 막기 위해 여성의 치마(터메인)를 빨랫줄에 걸어둔 것이다. 미얀마에서는 여성의 빨랫감 아래로 남성이 지나갈 경우 남성성을 잃는다는 미신이 있다고 한다. 시위 진압대들이 차를 멈추고 지붕 위에 올라가 빨래를 걷어내는 담고 있었다. 그런 걸로 보아 속설이 미얀마 남성들 사이에 실제로 어느 정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얇.. 2021. 3. 10.
내가 태어나 잘한 일 몇 가지 비대면 영상으로 하는 음식 강좌를 들었다. 첫 시간 메뉴는 마파두부였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마파두부(麻婆豆腐)는 옛날 중국 사천 지방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어떤 맛이었을까? 지금 우리가 접하는 마파두부와는 얼마나 다를까? 하지만 호기심 이상으로 시원(始元)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겠다. 문화는 전해지고 섞일 때 살아있는 것이므로 '최초'라는 시점과 모양에 상관없이 세상의 모든 문화는 '오리지널'이다. 우리나라 안에서도 마파두부는 식당마다 레시피마다 재료와 조리방법이 조금씩 다르고 당연히 맛도 다르다. 하긴 같은 레시피를 보고 만들어도 사람에 따라 맛이 다르지 않던가. 세상은 다양해서 즐겁고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각설하고, 마파두부는 두부와 돼지고기를 주재료로 두반장과 춘장 등의 양념을 넣어 볶고.. 2021. 3. 8.
『자기 앞의 생』 넷플릭스를 살펴보다 낯익은 제목의 영화를 보게 되었다. 「자기 앞의 생(LA VIE DEVANT SOI, THE LIFE AHEAD」. 얼마 뒤 동네 도서관에 갔다가 우연히 그 책을 또 보게 되어 빌려왔다.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은 70년 대 후반 인기가 있던 소설이었다. 소설의 내용을 노랫말로 담은 노래 "모모"가 대학 가요제에서 입상할 정도였다. 맑고 순수한 사랑 이야기에 콩쿠르상 수상작이라는 후광이 더해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랑이야기를 상큼하고 따뜻하게 풀어나갔다고 그 무렵 활동하던 동아리 회원들과 감상을 나누었던 기억이 있다. 여기서 사랑은 남녀 간의 그것이 아니라 어린 소년과 노인, 프랑스와 아랍 혹은 아프리카, 백인과 흑인, 기독교와 회교의 간격을 메우는 좀 더 보편적인 사랑을 말.. 2021. 3. 7.
2월의 식탁 2월엔 보통의 달에 비해 설음식과 보름 음식이 더해졌다. 특히 '봄똥'을 즐길 수 있어 좋았다. 노지에서 겨울을 이겨낸 봄동엔 겨울과 봄의 맛이 함께 녹아 있었다. 무엇이든 제철이어야 싸고 맛있다. *이전 글 참조: 내가 읽은 쉬운 시 168 - 안도현의「봄똥」 2월의 제철 식재료는 단연 '봄똥'이다. 마트에 가면 좋은 가격으로 가판대에 가득 놓여있다. 봄똥'은 겨울을 노지에서 보내느라 속이 들지 않고 잎이 옆으로 납작하게 퍼져 있다. 양팔을 벌리 듯 jangdolbange.tistory.com 딸과 사위는 내가 만든 봄동 겉절이에 감동했다. 처음에는 당연히 아내가 담근 걸로 오해를 해서 섭섭함과 뿌듯함을 동시에 주었다. 아내는 봄동으로 만든 전과 겉절이, 된장국 모두를 좋아한다. 그리고 봄동 쌈도. 손.. 2021. 3. 3.
그런 사람들 층층의 바위 절벽이 십리 해안을 돌아나가고 칠산바다 파도쳐 일렁이는 채석강 너럭바위 위에서 칠십 육년 전 이곳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던 해산 전수용을 생각한다 산낙지 한마리에 소주를 비우며 생사로서 있고 없는 것도 아니요 성패로써 더하고 덜하는 것도 아니라던 당신의 자명했던 의리와 여기를 떠난 몇 달 후 꽃잎으로 스러진 당신의 단호했던 목숨을 생각한다 너무도 자명했기에 더욱 단호했던 당신의 싸움은 망해버린 국가에 대한 만가였던가 아니면 미래의 나라에 대한 예언이었던가 예언으로 가는 길은 문득 끊겨 험한 절벽을 이루고 당신의 의리도 결국 바닷속에 깊숙이 잠기고 말았던가 납탄과 천보총 몇 자루에 의지해 이곳 저곳을 끈질긴 게릴라로 떠돌다가 우연히 뱃길로 들른 당신의 의병 부대가 잠시 그 아름다움에 취했던 비단.. 2021. 3. 1.
서울숲 산책 아내와 서울숲을 걸었다. 날씨는 우중충했지만 기온은 벌써 봄이었다. 공원길에는 여느 때보다 사람들이 많았다. 코로나로 멀리 가기 힘들고, 5인 이상 모일 수도 없는 상황이다 보니 너도나도 가까운 공원으로 나온 것 같았다. 서울숲 근처 대부분의 카페는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이름난 빵집과 음식점 앞에는 차례를 기다리는 긴 줄이 늘어서 있기도 했다. 우리도 자주 가는 카페의 야외 좌석에 앉아 커피를 나눌까 생각했지만 막상 가서 보니 사람들이 너무 많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북적임이 비로소 사람 사는 세상 같았다. 코로나의 위험성을 염려하지 않고 저런 풍경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날 때가 있다 앉아 있거나 차를 마시거나 잡담으로 시간에 이스트를 넣거나.. 2021. 3.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