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종3 함박눈 온 날 어제 아침에 일어나니 창밖으로 밤 사이에 온 눈이 보였다.곳곳에 쌓여 있긴 했지만 곧 사라질 것 같고 더 이상은 올 것 같지 않았다.손자들과 같이 눈사람을 만들 수 있도록 화살기도를 올렸다."손자들과 즐겁게 눈장난을 할 수 있게 눈을 조금만 더 부탁합니다."근데 하느님께서 원래 성품이 화끈하신 건지 아니면 무슨 심술이 났는지 기도를 올린 지 얼마 안 되서부터 마구 함박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칠듯하다가 퍼붓고 하늘이 잠깐 보이다가는 다시 퍼붓기를 반복했다. 11월의 눈으로는 117년 만이라니 내가 태어나고 처음인 것이다. 이렇게 응답이 즉각적이고 풍성하다면(?) 평소 로또에 당첨되게 해달라는 기도도 들어주실 일이지 말이다.🎵Music provided by 브금대통령 🎵Track : 크리스마스 타운 .. 2024. 11. 28. 대설 밖에는 눈 퍼붓는데 눈 퍼붓는데 주막집 난로엔 생목이 타는 것이다 난로 뚜껑 위엔 술국이 끓는 것이다 밖에는 눈 퍼붓는데 눈 퍼붓는데 괜히 서럽고 괜히 그리워 뜨건 소주 한 잔 날래 꺾는 것이다 또 한 잔 꺾는 것이다 세상잡사 하루쯤 저만큼 밀어두고 나는 시방 눈 맞고 싶은 것이다 너 보고 싶은 것이다 - 고재종, 「대설」 - 대설은 소설과 동지 사이에 있는 스물한 번째 절기다. 눈이 많이 와서 대설이라지만 반드시 그렇게 되지 않는 날도 많다. 대설에 눈이 많이 오면 보리농사에 풍년이 든다고 한다. 어제는 비가 왔는데 오늘은 하늘이 맑다. 날씨도 푸근해서 눈이 왔더라도 또 비가 되어 내렸을 것이다. 기대할 풍년의 보리농사나 하루쯤 밀어둘 세상잡사가 있을 리 없는, 손자를 빼곤 눈 맞으며 특별히 보고 싶은.. 2023. 12. 8. 밤꽃 피는 유월에 "언제부터 여름이야?"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던 손자친구가 갑자기 생각난 듯이 물었다."여름? 여름은 유월부터라고 해야겠지?. 그치만 갑자기 내일부터 확 더워진다는 뜻은 아니야."끊임없이 흐르는 시간을 두부 자르듯 나눌 수 없으니, 5월 31일까지가 봄이고 6월 1일부터 여름이라는 건 너무 기계적인 설명이었지만 달리 어린 친구를 이해시킬 수 없었다.말을 하고나니 하루 뒤로 다가온 여름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 것 같은 예감이('기대'겠지만) 들기도 했다. 오직 한 가지 '코로나'로만 기억될 2020년의 봄은 지루했고 잔인했다. 수많은 생명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그놈 때문에 스러졌고 남은 우리는 '만지지도 만나지도 않으며' 살고 있다.신난간난, 모내기 끝낸 마을에밤꽃 향기 자욱합니다.엉덩이 여문 처녀애라곤 없는데.. 2020. 6. 2.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