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과 단상

함박눈 온 날

by 장돌뱅이. 2024. 11. 28.

어제 아침에 일어나니 창밖으로 밤 사이에 온 눈이 보였다.
곳곳에 쌓여 있긴 했지만 곧 사라질 것 같고 더 이상은 올 것 같지 않았다.
손자들과 같이 눈사람을 만들 수 있도록 화살기도를 올렸다.
"손자들과 즐겁게 눈장난을 할 수 있게 눈을 조금만 더 부탁합니다."

근데 하느님께서 원래 성품이 화끈하신 건지 아니면 무슨 심술이 났는지 기도를 올린 지 얼마 안 되서부터 마구 함박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칠듯하다가 퍼붓고 하늘이 잠깐 보이다가는 다시 퍼붓기를 반복했다.
11월의 눈으로는 117년 만이라니 내가 태어나고 처음인 것이다. 이렇게 응답이 즉각적이고 풍성하다면(?) 평소 로또에 당첨되게 해달라는 기도도 들어주실 일이지 말이다.

🎵Music provided by 브금대통령 🎵Track : 크리스마스 타운 -

곳곳에서 눈 때문에 일어난 교통사고 소식이 전해왔다. 손자저하를 만나러 가는 길에 눈길에 미끄러진 듯 전봇대에 코를 박은 채로 서있는 비싼 외제차를 보기도 했다.
어린이집 버스는 얕은 경사를 오르지 못해 찻길까지 둘째 저하 마중을 나가야 했다.
첫째 저하는 축구연습이 취소된 것만 아쉬웠을 뿐 신이 나서 차가운 음료를 마시며 일부러 눈이 많이 쌓인 곳만 밟으며 걸었다. 맨 손으로 눈덩이를 굴리기도 했다.

아내와 나는 저하들을 위해 저녁으로 따뜻한 삼계탕을 준비했다.
첫째와 음식 알아맞추기 스무고개를 했다.
"식물이에요? 동물이에요?"
"동물."
"다리가 두 개예요? 네 개예요?" 
"두 개."
"닭! 삼계탕!"
싱겁게 끝났다. 

밖에는
눈 퍼붓는데
눈 퍼붓는데

주막집 난로엔
생목이 타는 것이다
난로 뚜껑 위엔
술국이 끓는 것이다

밖에는
눈 퍼붓는데
눈 퍼붓는데

괜히 서럽고
괜히 그리워
뜨건 소주 한 잔
날래 꺾는 것이다
또 한잔 꺾는 것이다

세상잡사 하루쯤
저만큼 밀어두고

나는 시방
눈 맞고 싶은 것이다
너 보고 싶은 것이다

- 고재종,「대설」-

'일상과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째서 사람이 이 모양인가!(퍼옴)  (1) 2024.11.29
단풍이건 눈이건  (2) 2024.11.29
첫눈 내린 아침  (0) 2024.11.27
2차 시민행진  (1) 2024.11.24
또 한 해가 간다  (0) 2024.11.23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