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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택6

갈치와 고등어 제주살이 중인 아내의 친구를 통해 제주산 갈치를 구입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제주 함덕에서 지낼 때 오일장과 포구에서 사서 구이와 조림으로 먹은 갈치 맛을 다시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포실포실하고 은은한 단맛이 배인 갈치의 살은 입안에서 아이스크림처럼 녹았다. 갈치는 겨울철에 대비해 살과 기름으로 몸을 잔뜩 불린 구시월 갈치가 으뜸이라고 한다. 오래전 울산에 살 적에 바다낚시를 따라 간 적이 있다. 도시 ‘촌놈’인 내가 배를 타고 바다에서 낚시를 해보았을 리 없다. 남들이 미끼까지 끼워준 릴 낚싯대를 들고 뱃전에서 하염없이 세월을 낚고 있는데, ‘뽀인트’가 좋지 않다고 자리를 옮기자는 소리가 나왔다. 아무 생각 없이 릴을 돌려 낚싯줄을 감아올리는 순간, 무엇인가 햇살에 번뜩이는 것이 따라올라 왔다... 2022. 12. 2.
온몸이 다리가 되어 휴일이면 한강공원에는 봄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화장실 앞에는 매일 같은 풍경이 반복된다. 여자화장실 앞에는 줄이 길게 늘어서고 남자 화장실에는 기다리는 사람이 없거나 있어도 한두 명뿐이다. 같은 면적에 같은 수의 화장실이라는 형식적인 '평등(Equality)'은 적용되었지만 개별적인 차이를 고려한 실질적 '형평(Equity)'은 만들지 못해서 초래된, 익숙하고 오래된 풍경이다. 여성들의 불편함은 남자와 신체적 차이에서 생길 수밖에 없는 자연적인 이유가 아니라, 바로 그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화장실을 만들었다는 인위적인 이유에서 오는 것이다. 널리 알려진 미국 사회운동단체의 아래 그림은 그 개념을 쉽게 보여준다. 지난 대선 토론에서 이 그림이 제시되었을 때 한 후보는 형평의 노력과 함께 아예 .. 2022. 4. 20.
내가 읽은 쉬운 시 156 - 김기택의「두 눈 부릅뜨고 주먹을 불끈 쥐고」 *그림 출처 : 이투데이 KKONDAE : AN OLDER PERSON WHO BELIEVES THEY ARE ALWAYS RIGHT(AND YOU ARE ALWAYS WRONG). 작년 가을 영국 BBC 방송국이 '오늘의 단어(WORD OF THE DAY)' 로 한국말 "꼰대"를 꼽았다. 꼰대가 우리나라에만 있는 '존재'는 아닐 것 같은데 왜 하필 우리 단어를 그대로 꼽았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BBC는 꼰대를 “자신이 항상 옳다고 믿는 나이 많은 사람(다른 사람은 늘 잘못됐다고 여김)”이라고 설명했다. 최근에 들은 꼰대와 관련된 말 : '라떼 이즈 호스 (LATTE IS HORSE)'. 걸핏하면 "나 때는 말이야"라고 시작하는 꼰대들의 말투를 빗댄 신조어라고 한다. 실제로 그런 투의 말을 자주 사용하.. 2020. 1. 2.
내가 읽은 쉬운 시 147 - 김기택의「자전거 타는 사람 」 타요버스를 비롯한 자동차와 티라노사우르스 같은 공룡, 그리고 여름철 물놀이를 거쳐 요즈음 나의 절친 손자가 제일 좋아하는 놀이는 단연 자전거 타기이다. 여전히 그네나 미끄럼틀, 흔들그물도 좋아하지만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주변 아파트나 공원까지 활동범위를 넓혀 일종의 '놀이터 호핑 HOPPING'에 더 큰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조금씩 다른 구조의 놀이터나 공원을 찾아 제법 먼 길을 가는 것도 개의치 않는다. 그런 날이면 평소와는 달리 대개 초저녁에 곯아떨어지곤 한다. 친구가 자전거를 타면 나는 마치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때 김정은을 호위하던 북측 경호원처럼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친구의 옆을 긴장해서 쫓아다녀야 한다. 느닷없이 방향을 바꾸어 차도로 향하는 위험한 장난을 즐기기 때문이다. 친구의 자.. 2019. 10. 16.
내가 읽은 쉬운 시 112 - "로드킬"에 관한 두 편의 시 갑자기 앞차가 급정거했다. 박을 뻔했다. 뒷좌석에서 자던 아이가 밖으로 굴러 떨어졌다. 습관화된 적개심이 욕이 되어 튀어나왔다. 앞차 바로 앞에서 한 할머니가 길을 건너고 있었다. 횡단보도가 아닌 도로 복판이었다. 멈춰 선 차도 행인도 놀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좁고 구불구불하고 한적한 시골길이었다. 걷다 보니 갑자기 도로와 차들이 생긴 걸음이었다. 아무리 급해도 도저히 빨라지지 않는 걸음이었다. 죽음이 여러 번 과속으로 비껴간 걸음이었다. 그보다 더한 죽음도 숱하게 비껴간 걸음이었다. 속으로는 이미 오래전에 죽어본 걸음이었다. 이제는 죽음도 어쩌지 못하는 걸음이었다. 느린 걸음이 인도에 닿기도 전에 앞차가 튀어나갔다. 동시에 뒤에 늘어선 차들이 사납게 빵빵 거렸다. - 김기택의 시, 「무단 횡단」-.. 2019. 5. 30.
내가 읽은 쉬운 시 81 - 김기택의「책 읽으며 졸기」 손자 '친구'는 늘 졸음을 참는다. 낮에도 밤에도.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이라는 졸릴 때의 눈꺼풀을 끝까지 버팅기며 들고(?) 있는다. 사투를 벌인 끝에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고 나서야 스르륵 투항하듯 잠이 든다. 딸아이가 손자의 그런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보내왔다. 아내는 잘 저장해 두었다가 나중에 친구가 자라 시험 공부할 때 보여주라고 해서 웃었다. 친구야 이제 졸음과 싸우지 말고 가만히 눈을 감아보렴. 편안함 속의 그 모습도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거든. 세상의 평화가 깃든. 그리고 또 네가 일찍 자야 엄마·아빠가 간만에 치맥을 할 수 있거든^^. 잠이 깨는 순간마다 얼핏 책상 앞에서 졸고 있는 내가 보였다 고개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코고는 소리를 얼른 멈추고 있었다 소매로 입가의 침자국을 닦고 .. 2018. 8.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