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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7

여긴 내 나라니까 월드컵 축구 예선. 약체 오만과 졸전 끝에 비겼다. 축구광인 나로서는 예전 같으면 흥분을 했을 것이다. 남은 경기의 경우의 수를 따져보며 육두문자를 쓰다가 아내의 눈총을 받기도 했을 것이다.그런데 경기가 끝난 후 내 스스로가  놀랄 정도로 무덤덤했다. 그게 뭐 대수랴, 하는 생각이 들었다.지금의 내란 상황이 지속되면 월드컵 본선에 나가지 못한다 하더라도 아마 그럴 거 같다.축구경기를 보는 동안에도 경기에 온전히 집중이 되지 않았다. 마치 어릴 적 숙제 안 한 채로 등교할 때나 공부 안 하고 기말고사 보러 가는 것처럼 뭔가 중요한 일을 빼먹거나 미루고 있다는 찌뿌둥한 감정이 앙금처럼 깔려 있었다.이제까지 여행, 손자, 책, 영화, 음식, 산책 등의 일상을 허접한 솜씨로 채워온 이 블로그도 그렇다.지난 10.. 2025. 3. 21.
결코 그럴 수 없다 그가 다시 돌아오면계엄의 밤이 도래하겠지번득이는 총구가 우리를 겨누고의인들과 시위대가 '수거'되겠지광장과 거리엔 피의 강이 흐르고사라진 가족과 친구를 찾는 언 비명이 하늘을 뒤덮겠지그가 다시 돌아오면살림은 얼어붙고 경제는 파탄 나겠지우린 갈수록 후진국으로 추락하겠지오가는 사람도 드문 스산한 밤거리엔총소리 군홧발 소리 사이렌 소리가 울리고계엄군이 내 가방을 뒤지고 신상을 털겠지그가 다시 돌아오면남북이 충돌하고 전쟁이 돌아오겠지자위대가 상륙하고 미군이 연합하고긴 내전과 숙청의 날들이 이어지겠지숨어있던 친일파들이 나라를 팔아먹고광복 80년 만에 이 땅은 다시 빛을 잃겠지그가 다시 돌아오면모든 방송과 언론과 유튜브에선검열된 이슈와 재미와 조작으로눈과 귀를 가리며 관심을 돌리겠지김건희의 국빈 행사와 일상을 띄워대.. 2025. 2. 2.
소중한 것들은 다 공짜다 세상에 공짜가 어딨냐고 힘주어 말하는 자들은 똑똑한 바보들이다 인생에서 정말로 좋은 것은 다 공짜다 아침 햇살도 푸른 하늘도 맑은 공기도 숲길을 걷는 것도 아장아장 아이들 뛰노는 소리도 책방에서 뒤적이는 지혜와 시들도 거리를 걷는 청춘들의 시원한 자태도 아무 바람 없는 친절과 미소도 푸른 나무 그늘도 밤하늘 별빛도 계절따라 흐르는 꽃향기도 그저 이 지구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눈물 나는 숨은 빛의 사람들도 내 인생의 빛나는 것들은 다 공짜다 돈으로 살 수 없고 숫자로 헤아릴 수 없고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들은 삶에서 진실로 소중한 것들은 다 공짜다- 박노해, 「다 공짜다」-날씨가 정말 좋다.손자저하들을 보러 오면서 '소중한 것들은 다 공짜'라는 사실에 공감했다.가을 햇빛과 .. 2024. 10. 16.
그런 날에도 무싯날에도 바람이 제법 거세게 부는 모양이다.화려할 정도로 노란 밀밭은 물결치며 뒤척이고 있다.짙푸름을 넘어 검푸른 하늘도 요동을 치는 것 같다.붉은빛이 강렬한 황톳길은 세 갈래고 그중 가운데  길은 밀밭을 지나 하늘과 맞닿아 있다. 허공엔 검은 까마귀 떼가 점점이 날개를 펄럭이며 길게 밀려온다.고흐가 죽음이 멀지 않은 시기에 그렸다는 선입감이 있어서 일까?개개의 형상과 색은 발랄하거나 열정적인 것 같은데 전체적으론  뭔가 두렵고 공포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당장은 화창하지만 잠시 후엔 거대한 태풍 같은 재난이 불어올 수도 있을 것 같은······대체적으로 좋은 일은 예정되어 있지만 나쁜 일은 정면에서 느닷없이 앞통수를 후려치며 온다.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며 베토벤의 을 듣고 유튜브로 김어준의 >를  보는 것도 .. 2024. 5. 9.
오늘이 바로 그날! 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그래서 혼자 있기를 좋아한다 나는 말하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깊은 침묵을 좋아한다 나는 빛나는 승리를 좋아한다 그래서 의미 있는 실패를 좋아한다 나는 새로운 유행을 좋아한다 그래서 고전과 빈티지를 좋아한다 나는 소소한 일상을 좋아한다 그래서 거대한 악과 싸워나간다 나는 밝은 햇살을 좋아한다 그래서 어둠에 잠긴 사유를 좋아한다 나는 혁명, 혁명을 좋아한다 그래서 성찰과 성실을 좋아한다 나는 용기 있게 나서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떨림과 삼가함을 좋아한다 나는 나 자신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를 바쳐 너를 사랑하기를 좋아한다 - 박노해,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야 이외에도 많다. 아내와 마주 보고 커피 마시기, 음악 듣기, 분위기 좋은 카페에 앉아 있기, 동남아 호텔 수.. 2024. 4. 10.
평화의 땅에서 영광의 하늘로 *명동성당 성탄절 미사 (TV 화면 촬영) 내 생의 기도는 단 하나, (THERE IS ONLY ONE PLAYER IN MY LIFE) , 땅에서와같이 하늘에서도 (AS ON EARTH, SO TOO IN HEAVEN.) 삶에서와같이 영혼에서도 (AS IN LIFE, SO TOO IN THE SOUL.) 나에서와같이 세상에서도 (AS IN ME, SO TOO IN THE WORLD) -박노해의 책, 『푸른 빛의 소녀가』 중에서- 저희도 이런 기도를 올릴 수 있게 하소서! 2020. 12. 28.
발밤발밤 9 - 서울 자문밖 부암동 자문밖은 구기동, 부암동, 신영동, 평창동, 홍지동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지명으로 과거에 자하문(창의문) 근처에서 거주하건 사람들이 자하문 밖을 가리킬 때 '자문밖'이라는 줄임말을 사용했던데서 기인한다. 지금은 인왕산과 북악산, 그리고 북한산으로 둘러싸인 곳에 크고 작은 미술관과 박물관, 분위기 있는 카페와 음식점 등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 되었다. 윤동주문학관은 정확히 자문밖이 아닌 청운동에서 부암동으로 넘어가는 자하문 (紫霞門 혹은 창의문 彰義門)고개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는 수도물의 압력을 높여주는 가압장이었다가 사용이 중단되어 방치된 건물로 2012년 종로구가 개조하여 문학관으로 재탄생시킨 것이라고 한다. 문학관은 아담한 흰색 건물로 출입구 계단 위에 윤동주문학관이라는 글씨도 작고 색도 도드라져 .. 2015. 10.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