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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3

생일 저하 집에 오면 나는 1호 방에서 잔다. 저하의 침대 옆 매트리스가 나의 잠자리다. 가끔씩은 저하 침대에서 자기도 한다. 1인용이라 비좁지만 저하는 한 번도 싫어하는 기색을 보인 적이 없다. 가만히 누워 함께 BTS나 뉴진스의 노래를 듣다가 보면 저하의 숨소리가 차츰 고르게 잦아든다. 거기에 전해지는 달달한 체취, 뒤척임, 잠꼬대까지 전해지면 나는 아늑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손자'저하'1호의 생일. 해마다 쌓이는 한 살 한 살이 대견스럽고 신기하다. 경외스럽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고개를 숙이고 누군가에게 감사 기도를 올리기도 한다. 부디 이 대견과 신기와 경외와 감사의 즐거움을 오래 지켜볼 수 있기를! *이전글 : 2024. 3. 2.
또 생일 어려선 빨리 나이 먹어 어른이 되고 싶었다. 중년엔 가끔씩 나이 먹는 게 두렵기도 했다가, 이제 '또 생일'은 시간이 참 빨리 간다는 느낌일 뿐이다. 어느덧 '어떤 말이든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는 이순(耳純)을 지나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좇아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종심(從心)이 멀지 않은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귀는 아직 순해지지 않았고 마음은 걸핏하면 도리와는 동떨어진 곳으로 달려가곤 한다. 아주 가끔씩 먼 하늘을 바라보며 너그러워지기도 하고 '살아온 날들을 지우려' 할 뿐이다. 빨간색 축하카드는 첫째 친구가 쓴 것이고, 초록색은 둘째가 쓴(?) 것이다. 둘째의 카드를 들고 내가 축하의 말을 지어내며 읽으니 첫째가 놀라서 와본다. "아니잖아요. 아무것도 없잖아요!" 실소를 하는 첫.. 2023. 5. 3.
겨우 65살! 아내와 함께 늘 해오는 오후 산책을 평소보다 조금 일찍 마쳤다. 저녁 준비를 위해 장을 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아내의 65번째 생일. 채끝 등심 스테이크와 주꾸미 샐러드, 해물잡채를 만들었다. 그리고 모짜르트를 들으며 아내와 와인 잔을 부딪쳤다. "이제 겨우 65살이잖아! Long Long Time to Go!" 모짜르트를 들을 수 없는 것이 죽음이라면, 살아 있어 모차르트를 들을 수 있는 축복의 날엔 즐거움으로 평소에 없던 호기를 부리거나 낯간지러울 수도 있는 시 한 편을 소리내어 읽어도 좋으리라. 우리는 누구입니까 빈 언덕에 자운영꽃 혼자 일어설 수 없는 반짝이는 조약돌 이름을 얻지 못한 구석진 마을에 투명한 시냇물 일제히 흰 띠를 두르고 스스로 다가오는 첫눈입니다 우리는 무엇입니까 늘 앞질러 사랑케.. 2021. 12.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