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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훈4

성북동을 걷다 서울에 걷기에 좋은 곳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동대문에서 낙산을 거쳐 성북동에 이르는 길이나 복개된 성북천 일대의 성북동은 아내와 내가 특히 좋아하는 곳이다. 아내와 나는 마치 우리만 아는 비밀의 장소인양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가족과 지인, 친구들에게 권하고 함께 걸었다. 이용의 노래 덕에 뭔가 좋은 일이 생길 듯한 10월의 마지막 날. 코로나 와중에 비대면 온라인강좌를 들으며 알게된 영상 독서토론 모임인 "동네북" 회원 여덟 분과 마침 그 길을 걷게 되었다. 지난봄 서촌에 이어 "동네북"의 두 번째 당일기행이다. 좋아하는 곳이다보니 블로그에 지난 글이 꽤 여러 개 있다. 새삼 덧붙일 것이 더 없어 "동네북"이 걸은 순서를 따라 지난 글을 링크한다. (이번 기행에 가보지 않은 곳도 있지만 이 기회에 정리해 본.. 2023. 11. 3.
올망졸망 우련우련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 조지훈, 「낙화」- 꽃이 진다. 밤새 불던 바람 탓이 아니다. 꽃이 핀다. 어제 내린 비 덕만도 아니다. 세월따라 그냥 피고 지는 것이다. 꽃 좀 지기로서니 무에 대수랴. 꽃 지는 그림자와 꽃 피는 소리에 눈과 귀를 모으며 우련 우련 살 일이다. '우련'은 '형태가 약간 나타나 보일 정도로 희미'하거나 '빛깔이 엷고 희미하다'는 뜻이란다. 올망졸망 재잘재잘 토끼풀꽃 같은 손자친구들을 보러 가는 아침이다. 이런저런 이유.. 2023. 4. 30.
부처님 오신 어버이날 목어(木魚)를 두드리다 졸음에 겨워 고오운 상좌아이도 잠이 들었다. 부처님은 말이 없이 웃으시는데 서역 만리(西域萬里) 길 눈부신 노을 아래 모란이 진다. - 조지훈, 「고사(古寺) 1」 - 어제는 부처님 오신 날과 어버이날. 편안한 글을 읽고 싶었다. 오래전 즐거웠던 날들의 태국 여행 같은. 그리고 결혼해 지방으로 내려가 살며 어버이날에는 전화만 드리다가 막상 서울로 이사를 오니 쓰러지셔서 끝내 먼길을 떠나신 어머니를 떠올렸다. '눈부신 노을 아래 지는 모란 같은' 세상의 많은 것들을 생각해 보면서. 2022. 5. 9.
지난 국토여행기 49 - 경북 영양 조지훈의 ‘지조’ 그리고 영양 고추 봉화를 지나 31번 국도를 타고 일월산을 넘어 영양으로 가기로 했다. 산은 걸어야 제 맛이 나는 법이어서 일월산도 발로 올라보아야 할 곳 이지만 이번에는 차창 밖으로 흐르는 풍경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하였다. 시인 조지훈의 생가가 있는 주곡리의 주실마을 때문에 지방도로를 이용하여 일월산을 우회 하는 방법도 생각해보았지만 시간 관계상 이번 여행에서는 지나치기로 했다.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여행이란 어차피 존재 하지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가지 않은 길은 아내와 내게 아직 꿈이 남아 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로 다가온다. 시 한 편을 읽어보는 것으로 짧은 여정 때문에 비껴가야 하는 조지훈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 본다. 꽃이 지기로소니 / 바람을 탓하랴 // 주렴 밖에 성.. 2013. 5.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