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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6

첫눈 둘째 저하와 매일 하는 놀이를 또다시 반복하고 있는데 창밖이 환해졌다. 무심코 고개를 돌려보다 탄성을 질렀다. 첫눈이었다. 저하는 처음 보는(처음이라고 기억하는) 눈에 관심을 보였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무언가를 연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신기해 했다. 눈을 바라보느라 하던 놀이를 잠시 멈출 정도였다. 점점 자욱해지는 눈을 바라보며 괜히 신이 난 우리는 노래를 부르며 뛰어 다녔다. 저하는 가사를 모르면서도 흥이 나서 따라 불렀다. 펄펄 눈이 옵니다 / 바람 타고 눈이 옵니다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 송이송이 하얀 솜을 자꾸자꾸 뿌려줍니다 / 자꾸자꾸 뿌려줍니다 펄펄 눈이 옵니다 / 하늘에서 눈이 옵니다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 하얀 가루 떡가루를 자꾸자꾸 뿌려줍니다 / 자꾸자꾸 뿌려줍니다 어릴 적엔 첫눈이 내리.. 2023. 11. 18.
눈이 온다 아침부터 대설주의보 문자가 반복해서 뜨더니 오후부터 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우성치듯 날리는 눈으로 삽시간에 창문이 자욱해졌다. "와 눈이다!" 아내와 소리쳤다. 첫눈엔, 특히 오늘처럼 함박눈일 땐 더욱 아이들처럼 되곤 한다. 어린 시절 초겨울에 접어들면 일삼아 첫눈을 기다렸다. 어느 날 저녁에 무심코 방문을 열었다가 마당에 하얗게 깔린 달빛을 첫눈으로 착각하여 소리를 지르는 통에 놀란 어른들의 지청구를 들은 적도 있었다. 특별한 이유 없이 첫눈을 기다렸던 기억이 오래 남은 이유는 그 일이 내게 아름다움의 시원(始原) 같은 의미여서가 아닐까? "창 넓은 카페에 앉아서 따뜻한 커피나 마시면 좋겠네." "바다가 보이면 더 좋겠지." "산이나 벌판을 건너다 보이는 카페도 괜찮을 것 같은데." 눈을 바라보며 .. 2021. 12. 18.
첫눈 내린 날의 생일 아침 일어나니 하얗게 눈이 내려 있었다. 아무도 밟지 않은 운동장은 적막하고 신비로웠다. 그 위로 또 가만가만 눈이 내렸다. 뒤이어 일어난 아내는 거실로 나오며 소녀처럼 작은 탄성을 질렀다. 일기예보가 있었어도 첫눈은 항상 의외로이 다가오는 법이다. 곱단씨 생일 축하해! 크리스마스 캐럴을 켜놓고 아내의 생일 음식을 만들었다. 생일이니 미역국부터 끓였다. 소고기 대신에 명태와 들깨를 넣었다. 그리고 채끝살 스테이크, 해물잡채, 버섯장아찌 그리고 청경채볶음. 오래간만에 와인도 곁들였다. 아내와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음악을 들으며 눈 내리는 풍경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반주로 마신 와인 낮술에 흥이 올라 옛노래도 흥얼거려 보았다. 영화 한 편을 보자 저녁이 되어 또 밥을 먹었다. 내일부터 강추위가 온다고 한.. 2020. 12. 14.
내가 읽은 쉬운 시 153 - 정끝별의 「첫눈」 올해 첫눈이 내렸다. 눈이 내렸다고 했지만 허공에 반짝이는 흰 비늘 몇 조각만 보았을 뿐이다. 그나마도 땅에 닿자마자, 아니 땅에 닿기도 전에 녹아버린 듯 흔적도 없어졌다. 오후에 아내와 양재시민의 숲을 걸었다. 단풍은 거의 지고 눈은 쌓이지 않은 초겨울의 숲은 적요로웠다. 우리들이 나누는 목소리 사이로 우리가 내딛는 발자국 소리를 선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최근에 텔레비젼에서 아프리카에 사는 치타에 관한 다큐멘타리를 본 적이 있다. 동물 중에서 가장 빠르게 달린다는 치타의 사냥 성공율은 겨우(?) 20%라고 한다. 다섯 번에 네 번은 심장이 터질 듯한 전속력으로 달려도 실패를 하는 것이다. 실패와 거기에 따르는 허탈은 일상의 대부분일 터이다. 하지만 그의 생존은 20%의 성공에 달려 있다. 거기에 새끼.. 2019. 12. 4.
내가 읽은 쉬운 시 36 - 민영의「첫 눈」 흰눈이 하늘 가득히 퍼붓던 지난 목요일. 점심을 잠시 미룬 채 서둘러 사무실에서 가까운 덕수궁엘 갔다. 불과 10일 전의 늦가을 단풍과는 또 다른 세상이 거기 있었다. 오게, 누이여…… 시방 하늘은 水墨빛 그 어두운 바람결에 흰 눈송이도 싸여 내리네. 그렇네, 사랑이란 결국은 그런 것, 아무 말 말고 아무 말도 말고, 몇 九萬里ㄴ지 저 어지러운 하늘길을 더듬어 이제야 땅으로 내리는 흰 눈송이와도 같이 오게, 어서 오게! 2015. 12. 7.
오대산 첫눈 산행 *위 사진 : 가장 완벽한 단풍은 가을의 논이라고 했던가요? 둔내성우리조트로 가는 도중의 논은 이미 진한 가을의 빛을 띠고 있었습니다. 돈을 버는 일도 아니면서 가을이 오면 유난히 바빠집니다. 은빛 억새에 현란한 단풍에... 그러지 않아도 장돌뱅이 체질의 내가 요동치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해 주말마다 어디론가 떠나야 할 계획에 마음부터 부산해지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지난 주말 둔내 성우리조트의 예약 소식을 친구녀석이 전해 왔을 때 나는 월정사계곡의 타오르는 단풍을 머리 속에 그리며 며칠을 오대산 등산지도를 보며 지냈습니다. 토요일 오전, 영동고속도로는 시간이 흐를수록 주차장이 되어갔습니다. 고속도로와 국도를 번갈아가며 바꿔 탄 끝에서야 점심 무렵 성우리조트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짐을 풀자마자 곧바로 인.. 2012. 4.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