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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4

가슴에서 가슴으로 *레모니안 영상 편집 수추는 사람들의 구름 속에서 앉아 조용히 노래를 흘려보냈다. 그 노래는 사람들의 마음을 찌르고 힘을 솟구치게 해서 살아 있는 환희를 갖도록 했다. 노래하는 그의 얼굴은 사람들에게 무언지 모를 믿음을 전파시켜 주는 것이었다. 그의 노래는 입에서 입으로 가슴에서 가슴으로 그리고 나중에는 몸짓에서 몸짓으로 퍼져나가 모든 사람들이 목청을 합하여 저자가 떠나가도록 노래를 불렀다. 수추의 거문고 소리와 노랫소리는 저자에 모인 군중들의 제창에 먹히어 들리지 않았으나, 그 곡조의 가락과 춤은 그대로 수추의 것에서 모든 사람들의 것으로 합쳐졌던 것이다. - 황석영 단편소설, 「가객(歌客)」중에서 - 사진과 영상, 인용글에 내가 감히 덧붙일 건 없다. 그저 간절함과 절실함을 실어 볼 뿐. 2024. 4. 4.
내겐 지루했던 두 가지『파친코』 "역사는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는 당찬 선언 같은 문장으로 시작하며,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이주하게 된 조선인('자이니치, 在日)' 4대의 지난한 삶을 그린 소설(과 드라마)『파친코』. "조선인들은 이 나라를 위해서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있어요. 일본인들이 하기 싫어하는 힘든 일을 하죠. 세금을 내고, 법을 지키고, 훌륭한 가족을 꾸려나가고,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소설 속 한 일본인 여성의 조선인에 대한 평가는 아주 희귀한 사례였을 뿐이다. 대개의 일본 사회는 조선인들을 '게으르고 추악하고 폭력적'이라는 편견과 차별로 대했다.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조선인들에게 강요한 모진 삶을 '운명'이라는 말로 포장을 했고, 그 '운'명을 '잘못된 선택을 한 사람들의 게으른 변명'이라고 호도했다... 2023. 5. 28.
나의 삼국지 읽기 내가 『삼국지』를 처음 접한 것은 책이 아니라 구술을 통해서였다. 초등학교 졸업을 눈앞에 둔 2월, 담임선생님은 책상을 뒤로 물린 채 걸상만으로 난로가에 동그랗게 우리들을 앉힌 후 며칠에 걸쳐 삼국지를 이야기해 주었다. 그때까지 동화책이나 만화를 통해 유비와 관우, 장비 등의 이름 정도만 알고 있던 내게 선생님의 삼국지는 광활한 벌판에 말 달리는 소리가 우렁찬 박진감 있는 세상이었다. 유비에게 제갈량을 추천한 서서(徐庶)와 서서 어머니, 그리고 관우를 좋아하게 된 것은 선생님 덕분이었다. 선생님이 서서 모자의 사랑과 효성, 관우의 용맹과 충절을 특별히 강조하였기 때문이다. 선생님의 이야기는 적벽대전 이후 관우가 조조를 놓아주는 어름에서 끝났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나는 한동안 유비를 비롯한 삼 형제가 기.. 2021. 9. 16.
『철도원 삼대』 황석영의 새 소설 『철도원 삼대』는 제목 그대로 삼대에 걸쳐 철도원으로 살아온 가족의 이야기이다. 해고 노동자 이진오는 아파트 십육층 높이의 공장 굴뚝에 올라 텐트를 치고 고공농성 중이다. "세상이 변할까? 점점 더 나빠지구 있잖아." "살아있으니까 꿈틀거려보는 거지. 그러다보면 아주 쬐금씩 달라지긴 하겠지." 이진오는 텐트 자락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래두 오늘 살아있으니 할 건 해야지." 이전에는 여러 사람이 전염병에라도 걸린 듯 스스로의 몸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질렀다. 그러나 이제 그들을 무너뜨리는 것은 분노가 아니라 절망이었고, 그것은 일상이라는 무섭고 위대한 적에 의해서 조금씩 갉아먹힌 결과였다. 집회에서 헤어지면 그들은 모두 혼자가 되었다. 가족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돌아가도 그들 각자.. 2020. 6.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