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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내겐 지루했던 두 가지『파친코』

by 장돌뱅이. 2023. 5. 28.

"역사는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는 당찬 선언 같은 문장으로 시작하며,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이주하게 된 조선인('자이니치, 在日)'  4대의 지난한 삶을 그린 소설(과 드라마)『파친코』.

"조선인들은 이 나라를 위해서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있어요. 일본인들이 하기 싫어하는 힘든 일을 하죠. 세금을 내고, 법을 지키고, 훌륭한 가족을 꾸려나가고,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소설 속 한 일본인 여성의 조선인에 대한 평가는 아주 희귀한 사례였을 뿐이다.
대개의 일본 사회는 조선인들을  '게으르고 추악하고 폭력적'이라는 편견과 차별로 대했다.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조선인들에게 강요한 모진 삶을 '운명'이라는 말로 포장을 했고, 그 '운'명을 '잘못된 선택을 한 사람들의 게으른 변명'이라고 호도했다.

 그러나 소설『파친코』는  내게 느슨하고 산만하게 느껴졌다. 책장을 넘길수록 긴장감은 고조되지 않았고 같은 이야기의 반복처럼 지루했다. 한수와 선자의 갈등,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후대들의 고뇌와 방황, 심지어 극단적 선택이라는 비극마저도 소설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기에는 부족해 보였다. 여주인공 선자의 아들이며 이주 3대, 모자수의 친구인 하루키의 동성애 이야기는 전체적인 맥락과 동떨어져  뜬금없어 보이고 모자수의 첫사랑인 하나의 이야기도 그렇다. 

 재미동포 1.5세대인 작가의 영어투(?)의 문장 때문인지 번역의 문제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게는 매끄럽게 읽어지지 않아 지루함이 더했다. 

최근에 딸아이 덕분에 보게 된 애플 TV 드라마 <<파친코>>도 소설에 대한 느낌과 비슷했다.
오히려 원작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는 듯한 의욕 과잉이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두 가지의 『파친코』로 우리 근현대사의 모순이 만든 아픈 손가락, 자이니치를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징용과 노동이주 등으로 불가피하게 타국에서 살아가게 되었던 조선인들 중 일부는 해방이 되자마자 귀국했지만 수많은 사람들은 이미 삶의 터전이 되어버린 일본땅을 떠나지 못했다. 해방이 되고 분단이 되기 전까지 일본의 조선인 공동체는 한 몸이었다. 그들은 갑자기 해방된 민족의 일원으로서 이제까지 지배자였던 일본인들 속에서 민족적 권익을 지키며 살아가야 했다. 이들 대부분은 식민지 종주국이던 일본에서 사회적으로 하층민이었고 노동자 계급이었다. 해방이 되자 '재일조선인연맹'이 조직되었고, 조국의 분단과 함께 남측인 '재일대한민국거류민단'과 북측인 '재일조선인총연합회'로 분열하게 된다. 그러나 반세기가 넘도록 분단이 지속되는 동안 재일동포들은 비극적이게도 남과 북의 정부에 정치적으로 이용만 당하면서 민족적 권익을 조국으로부터 보장받지 못했다.
 일본에 사는 동포들이 '자이니치 在日'라는 특이한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게 되는 계기는 1959년에 시작된 북한 송환이라는 사건과 1955년부터 실시되어 1993년에야 폐지되는 외국인등록법에 의한 지문 날인에 저항하는 운동이었다. 재일동포들은 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그리고 통일이 될 때까지 남북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겠다면서 해방 이전의 식민지 반도의 명칭을 고집하는 '조선' 세 가지 국적으로 분류된다. 남한 국적의 재일동포들 외에 일본과 외교관계가 없는 북한 국적과 조선적 동포들은 사실상 임시체류자로 규정되어 온갖 차별과 불이익을 받는 것은 물론 여행조차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이들이 일본 밖으로 여행을 하려면 출국 전에 한시적으로 재입국비자를 받아야만 했다. 육십여만 명의 재일동포들은 남북으로 나뉘어 있었고, 삼십여만 명 이상이 일본 사회의 차별과 억압으로 일본인으로 귀화했다.

- 황석영,『수인』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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