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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책『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by 장돌뱅이. 2023. 6. 7.

영화 <<쿵푸팬더 2>>는 '네가 아닌 내 안에 문제가 있음'을 깨달을 때  '내면의 평화(Inner Peace)'를 얻는다고 했다. 천주교 미사 중에 참석자들은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내 탓이오'를 반복한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마음. 그곳이야 말로 우리의 고통이 움을 티우는 곳이며 생육하고 번성하는 곳입니다. 우리가 말리지 않는 한 그 생각은 마음껏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을 겁니다.

또한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 전부 진실은 아니며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는, 삶과 미래가  우리의 막연한 관념과 의지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그런 사실을 참아낼 수 있게 될  때 우리는 '내안의 고요'와 자유, 그리고 지혜에 다가설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  차분하고 평온한 장소에서 '내 안의 고요'를 만나기를 권했다.
그러다 보면 그보다 혼란스러운 일상에서도 좀 더 안정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군에서 제대하고 복학하기 전 80년대 초 어느 날 친구와 치악산을 등반한 적이 있다. 직장에 다니던 친구가 먼저 하산하고 나는 혼자 남아 계곡 외진 곳에 텐트를 쳤다.(당시에는 국립공원에서 야영이 자유로웠다.) 한 일주일쯤 있을 작정이었다. 처음엔 좋았다. 청량한 바람소리와 물소리 그리고 새소리가 그윽한 한가함와 함께 밀려왔다. 책을 읽다가 일어나 텐트 주변을 걸으면 온갖 세속의 잡생각이 씻겨가는 듯 했다. 이튿날 아침에 깨어났을 때 온몸이 상쾌함으로 가득해진 것 같았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다시 시작하는 한낮은 무료함으로 길었다. 책 속의 글자들은 춤을 추었고 눈을 감으면 온갖 두서없는 생각이 제멋대로 움직이며  이어졌다. 온몸을 안절부절 들뜨게 했고, 주위의 차분함과 고요함, 침묵은  견디기 힘들었다. 한마디로 좀이 쑤셨다. 결국 두 번째 밤이 오기 전 저녁에 텐트를 걷고 하산을 서둘러야 했다. 

나로서는 '내 안의 고요'를 마주하는 일 자체가 쉽지 않았다. 하물며  꽉 쥐었던 주먹을 활짝 펴는 듯 무언가를 내려놓거나 집착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는 고차원의 '득도'야 말할 것도 없겠다. 

다행히『내가 틀릴 수도···』를 읽다보니  조금 만만해 보이는 수련 방법이 나온다. 바로 숨쉬기다.  오래 전 회사 교육에서 잠깐 오락처럼 배웠던 기억도 있다. 하긴 그때도 태어나서부터 수십 년을 해온 숨쉬기가 뭐가 이렇게 어렵냐며 끙끙거렸던 것 같다. 책은
호흡처럼 덜 복잡한 신체 활동으로 관심을 의식적으로 돌린다면, 자신을 괴롭히는 생각이나 고민에서 잠시 벗어나 여유를 찾는 동시에 치유 효과도 누릴 수 있다고 했다. 짬짬이 시도해 볼 생각이다. 자상한설명도 자신감을 북돋운다. 

우리의 상반신은 일종의 물병과 같습니다. 숨을 들이마실 때는 몸 안에 물이 차오른다고 상상해보세요. 숨을 내쉴 때는 수위가 내려가서 병이 비워집니다. 숨을 들이마실 때는 물이 바닥에서부터 다시 차오릅니다. 호흡이 엉덩이에서 또는 더 바닥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상상해봅시다. 그런 다음 물이 배를 지나 가슴과 목까지 차오르는 기운을 느껴보는 겁니다. 밀려왔다가 밀려가는 이 파도에 자신을 잠시 내맡겨봅시다. (···) 이 정도면  됐다고 느껴지는, 몸속 깊이 편안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옵니다. 
당장은 이렇게 호흡만 하면 됩니다. 다른 일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요. 휴가를 떠난 셈입니다. (···) 이 순간, 책임질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잊어서는 안 되는, 꼭 기억해야 하는 사항도 전혀 없어요. 여러분이 신경 쓸 일은 오로지 호흡뿐입니다. 원하는 시간 동안 호흡에만 집중하면 되는 겁니다.

일상에서 자기 자신에게 이처럼 몰입하고 관심을 기울이는 시간이 얼마나 되나요? 기회가 찾아왔다면 어딘가 어색하고 두려운 마음은 뒤로하고 시작해 보길 바랍니다. 호흡으로 뭔가를 얻을 수 있어서가 아닙니다. 삶의 모든 부분을 차분하고 평온하게 바꾼다거나 내면의 희열을 맛볼 수 있어서도 아니에요. 특별히 영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서도 아닙니다. 단지 호흡이란 원래 그만큼 가치 있는 것이기에 거기에 주의를 기울여보자는 겁니다.

처음 호흡에 집중하려고 시도할 때, 우리 마음은 대부분 요요처럼 정신없이 움직이거든요. 몇 차례 호흡을 따라가는가 싶다가도 사소한 일에 주의력이 흐트러지고 맙니다. 그러면 우리는 참을성 있게 관심의 끈을 다시 당겨야 합니다. 당기고 또 당기기를 몇 번이고 반복해야 하지요. 우리 마음은 지칠 줄 모르고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치닫습니다. 하지만 우리 역시 집중력이 흐트러질 때마다 결국 또 길을 잃었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은 꾸짖거나 이번에는 어느 정도를 해냈는지를 평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또다시 흐름을 놓쳤다는 것에 주목한 뒤, 그 생각을 내려놓고 원래 집중하려던 대상으로 차분히 관심을 돌려야 합니다.

혹시 자꾸 따라하다 보면 언젠가 넘보지 못할 아래 글과 같은 경지에도 다다를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삶의 중요한 계명으로라도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말이다. 

자신의 사고 과정을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볼 줄 알게 되고 다른 사람들도 자기와 똑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우리는 갈라놓은 것보다 우리가 공유하는 것을 더 쉽게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든 어디에서 왔든 어떤 이력을 지녔든 간에 우리의 내면이 작용하는 방식은 대체로 닮았습니다. 그 사실을 깊이 받아들이고 잊지 않는다면, 더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파악하는 양 시늉하느라 기진맥진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대신 다른 사람과 서로 돕고, 나누고, 진정으로 만날 수 있게 됩니다. 인공위성처럼 고독하게 홀로 부유하지 않는 대신, 다른 사람과 치열하게 경쟁하는 대신, 서로의 존재가 위안이 되는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서로 배우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남들의 아름답고 뛰어난 점을 발견하고도 자신이 그들만 못하다는 내면의 속삭임에 더는 시달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책『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는 스웨덴 출신의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가 썼다. 
그는 1961년에 태어나 20대에  다국적 기업의 임원이 되는 세속의 성공을 이뤘지만 '누군가로 또는 뭔가로 채워졌으면 하는' 허전함에 고민하다 사직서를 던지고 태국 밀림의 숲속 사원으로 떠났다. 그곳에서  ‘지혜가 자라는 사람’이라는 뜻의 ‘나티코’라는 법명으로 17년간의 수행 생활을 시작했다. 환속한 후에는 사람들에게 '혼란스러운 일상 속에서도 마음의 고요를 지키며 살아가는 방법'을 전하다가 2022년 1월 루게릭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두려움도 망설임도 없이.'
그리고 남은 우리에게 당부의 말을 남겼다.

죽음 뒤에 사라질 그 모든 것을 내려놓거나 적어도 살짝만 쥐고 살아가세요. 영원히 남을 것은 우리의 업이지요. 세상을 살아가기에도, 떠나기에도 좋은 업보만을 남기길 바랍니다.

평범하지 않은 자식의 선택에 '변하지 않는 조용한 지지를' 보내준 저자의 부모에게도 존경을 보낸다.

*개인적인 '내 탓이오'식의 반성이나 '내면의 평화'라는 깨달음을  객관적인 사회 현실의 변화와 어떻게 연관 지을 수 있을까?   분명 '내 탓'이 아닌  것들이 이미 형성되어 있기도 한 세상에······. 개개인이 변화하면 세상도 바뀐다는 말을 한 때 얼마나 비웃거나 분노했던가. 

*독서토론 모임 "동네북(BOOK)" 6월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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