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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미국

쌘걸100KM 3

by 장돌뱅이. 2014. 5. 9.

이날은 아내와 내가 샌디에고에서 제일 좋아하는 곳,
토레이파인즈 주립공원 TORREY PINES STATE PARK 이 포함된 코스를 걸었다.
토레이 파인즈는 이미 여러 번 사진과 메모를 올린 바 있다.
아내와 내겐 샌디에고를 대표하는 곳으로 기억된다.
 

정확히는 토레이파인즈에서 델마를 왕복하는 코스이다. 라호야 하프마라톤 코스의 북쪽 반에 해당된다.
위 지도에서 보면 6번에서 출발하여 7번을 찍고
(첫날 남쪽 라호야 LA JOLLA에서 출발하여 이곳까지 왔었다.),
토레이 파인즈 공원의 트레일을 따라 해변으로 내려가 다시 6번으로 돌아온 다음,
6-5-4-3-2-1-S를 왕복하는 것이다.

길의 대부분은 한쪽에 바다를 끼고 걷는다.  시각적으로 또 심정적으로 시원시원하다.
특히 길 첫머리에 해당되는 토레이 파인즈 주립공원의 입구,
밝은 태양 아래, 흰 줄의 거품으로 겹겹이 밀려오는 파도는 장관이다.
매번 아! 하는 탄성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다.
이곳에 설 때마다 아내와 나는 종종 아름다움으로 가슴이 그득히 차오른다.
그 포만감에 스며있는, 더 이상 욕심을 내서는 안 된다는 어떤 정언명령(定言命令) 같은 것을 느끼기도 한다. 

   비록 우리가 몇가지 가진 것 없어도
   바람 한점 없이
   지는 나무 잎새의 모습 바라볼 일이다.
   또한 바람 일어나서
   흐득흐득 지는 잎새의 소리 들을 일이다.
   우리가 기역 니은 아는 것 없어도
   물이 왔다가 가는
   저 오랜 고군산(古群山) 썰물 때에 남아 있을 일이다.
   젊은 아내여
   여기서 사는 동안
   우리가 무엇을 다 가지겠는가
   또 무엇을 생이지지(生而知之)로 안다 하겠는가
   잎새 나서 지고 물도 차면 기우므로
   우리도 그것들이 우리 따르듯 따라서
   무정(無情)한 것 아닌 몸으로 살다 갈 일이다.
                          -고은의 시, 「삶」-
 

 

 

위 사진은 반환점(앞선 지도의 7번 지점)이다.

내려가는 길은 바닷가 쪽으로 난 길을 잡았다.
바다가 계속 눈에 들어오는 길이다. 

 

 

 

 

 

토레이 파인즈를 나와서 북쪽으로 향하면 델마 DELMAR 시로 들어서게 된다..
델마는 샌디에고의 '베버리힐즈'나 '청담동' 같은 곳이다.
바다를 바라보는 언덕에 들어선 집들의 화려함이 예사롭지 않다.

샌디에고를 떠날 날짜가 다가오니 사람들이 인사치례로 묻곤 한다.
"미국으로 다시 돌아올 계획은 없나요?"
아내와 나는 웃으며 답한다.
"글쎄요. 뭐 로또복권이나 맞으면 모를까?....."

델마에 들어서서 지친 아내를 위해 농담을 건넸다.
"복권에 당첨될 경우에 대비해서 마음에 드는 집을 고르면서 걸어."
아내는 아래 사진의 중 세번째 집을,  나는 첫번째 집을 골랐다.
"우리가 복권에 당첨은 되었는데 저 집 주인이 팔지 않겠다고 하면 어떻하지?" 
나의 걱정을(?) 아내가 간단하게 해결했다.
"두 배 준다고 해!"
"그렇구나!  근데 우리가 어째 좀 개콘 '놀고있네' 코너의 주인공들 같다. ㅋㅋㅋ" 

 

 



두 시간 반정도 걸으니 배도 고프고 목도 말라왔다.
PREPKITCHEN이라는 전에 몇번 와봤던 식당에서 맥주와 간단한 음식과 함께 휴식을 취했다.
아내는 며칠 계속된 강행군으로 힘든 표정이 역력했다.
아침에 발가락 세 곳에 반창고를 붙이기도 했으니 통증도 있으리라.

솔직히 나 역시 짜릿한 맥주를 거푸 들이키니 온몸이 노근해 왔다.
오늘은 조금 덜 걷고 이곳을 반환점으로 삼자고 제안을 했다.
안 된다고 할 줄 알았던 아내가 쉽게 동의를 했다.
"예쁜 신호등!"
나의 말에 아내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집 근처에서 달리기 연습을 할 때 횡단보도를 건널 때가 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운동은 아니지만 숨이 턱에 차면 신호등을 핑계대고 쉬어가고 싶어진다.
이유 없이 달리기를 멈추는 것은 스스로 '의지 박약'을 증명하는 것 같으니까.
그런데 횡단보도에 다가서는 순간 붉은빛이 초록으로 바뀌면 못내 서운해진다.
나는 투덜거리며 달리기를 계속할 수밖에 없다.
'망할 놈의 신호등 같으니라구!'

델마에서 아내는 그런 나를 위해 빨간 신호등을 켜주었다.^^
 

이날 토레이파인즈에서 텔마를 왕복한 거리는 15킬로미터 정도였다.
집으로 오는 동안 차안에서 약간의 기력을 되찾은 아내는 못 채운 5킬로미터에 대해
투지를 불태우며 자꾸 '초록 신호등'을 다시 켤려고 했다.
"어디서 5킬로미터를 마저 채우고 가자."

나는 아내를 달래 일단 집으로 돌아와 아파트 단지를 걷기로 했다.
아파트 단지를 크게 돌면 한 바퀴에 800미터 정도가 된다.
둘이서 여러번 걸은 길이라 우리에겐 의미가 있는 곳이다.
시간에 구애됨없이 언제든 걸을 수 있기 때문에 퇴근 후에도 걷고 해질 녘에도 걷고
한 밤중에도 걸었다.

의지와는 달리 아내는 3바퀴를 걷는 것으로 이 날의 걷기를 마쳤다.
그러니까 총 17킬로미터를 걸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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