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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태국

지난 여행기 - 1999 방콕&푸켓4

by 장돌뱅이. 2017. 8. 21.

9. 태국왕에 대하여
박물관으로 향하는 길가 곳곳에 왕과 왕비의 초상화가 보인다. 작년 12월이 왕의 72번째인가 생일이었다고
하여 예전보다 그 수가 더 많아 진 것 같다. 태국사람들의 왕에대한 사랑과 존경의 마음이 내겐 참으로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보인다. 역사에는 만약이 없다고 하지만 일제가 우리를 강점하지 않았다면 우리에게도 왕이나
황제가 어떤 모습으로건 남아 있었으리라. 태국 국민과 왕의 현명한 외교정책때문이었든 아니면 제국주의
열강들의 이권 분할 정책의 부산물이었든 나라를 송두리째 빼앗기지는 않아 우리보다는 덜 상처받은
그들의 역사가 부러웠다.


*위 사진 : 태국왕의 여름궁전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읽은 글 중에 태국왕에 관한 몇구절을 옮겨 본다. 

   1851년 불교승려로써 26년을 보낸 후에 왕위에 오른 몽쿠트l왕, 즉 라마 4세(가).....통치할 때까지 왕의 신체는
   하도 신성해서 보통 사람들은 그를 바라보거나 만질 수도 없었다. 이론상으로는 왕과 그 배우자의 몸은 신성
   불가침이서 왕의 유람선이 가라 앉아서 죽음의 고통이 온다 할지라도 보통 사람은 익사로부터 그를 구출하기
   위해서 도움의 손을 내밀 수가 없게 되어있다. 유람선은 구명대로써 신호투창과 한 묶음의 야자 열매를 갖고
   다닌다. 야자 열매 구명대가 왕을 구조한다면 그것을 던진 사람은 은화 50량과 금 한 덩어리를 보상으로 받지만,
   만일 뱃사공이 손으로 왕을 끌어 올렸다면 그들은 처형당한다. 그러한 극단적인 신성은 더 이상 강요되지 않는다.
   그러나 부미볼왕과 시리키트 왕비는 아직도 모든 사람이 왕의 출현에 부복하도록 요구하는 역사적 전통에 입각한
   존경과 외경적인 존재로 취급받고 있다. 그는 입헌 군주이지만 국민의 눈으로 볼 때 부미볼왕은 타이의 신왕(神王)
   적 전통의 영기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1951년 대관식에서 그는 184년간 이어 내려온 CHAKKRI왕조의 혈통을 이어 받고 제9대 왕이 되었다. 그 의식은
   브라만적인 의례와 불교적 의식이 결합된 것이었고 그에게 자비와 보시와 정의의 힘을 부여하였다. 그는 최고
   신성한 폐하, 최고의 권위자, 전능자, 라마경(卿), 왕국의 소유자, 신민(臣民)의 주인, 샴의 통치자, 최고 후견인
   이며 군주등의 칭호를 받고 있다. 
                                                                 - 불타의 새얼굴중에서(JERROLD SCHECTER지음) -


10. 국립박물관
맨처음 이번 여행을 계획할 때 우리는 태국 북부의 치앙마이와 치앙라이등을 겨냥했었다.
여러 가지를 고려한 끝에 방콕과 푸켓으로 일정을 바꿨지만 북부 지방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떨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우린 태국 국립박물관을 둘러 보기로 했다. 우리 가족이 유적이나 유물에 대하여 무슨 전문적인 식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평소 우리나라에서도 옛 건물이나 불상 불탑등에도 약간의 관심이 있어 찾아보는
터라 태국 북부의 유물도 둘러 보고 그곳에 못 가보는 아쉬움도 달래기로 해본 것이다. 많은 사전 지식이 있다면
박물관 관람이 더욱 유익한 일정이 되겠지만 그렇지 못하다 하더라도 선입관 없이 유물을 대하는 것도 또한
내 방식대로 감상을 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해볼 만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박물관 전체를 다 둘러본다는 것은 우리 가족의 감상 능력으로는 벅찬 일이라 우리는 SUKHOTHAI ART실과
박물관 입구에 있는 부속예배당인 BUDDHAISAWAN만을 둘러 보았다. 세세한 평가는 역시 내 능력 밖의 일이다.
다만 박물관 분위기가 동남아 최대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좀 어수선해 보였다. 내게 인상적이었던 곳은
박물관에 들어서면 오른쪽에 있는 불당 내부의 벽화였다. 부처님의 행적에 관한 여러 내용의 벽화였다.
방콕의 다른 이름난 사원처럼 번잡하지 않아서인지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감상할 수 있었다.


11. VIMANMEK PALACE
대리석 사원에서 관광 가이드인듯한 젊은 태국인에게 '비만멕'가는 길을 물으니 '위만멕'이라고 바로 잡아주며
가는 길을 친절히 일러준다. 가르쳐 준대로 사원의 옆문으로 나와 택시를 잡았다. 10분쯤 달리니 출라롱콘왕의
동상이 나오고 위만멕 궁전은 그 뒤쪽에 있었다. 궁전 동쪽의 입구로 들어서자 잘 다듬어진 푸른 잔디밭 너머로
분홍색 지붕과 처마 아래 부분의 화려한 장식이 돋보이는 아름다운 건물이 나온다. 옛날에는 방문객들이 왕을
만날 수 있는 알현실(THRONE HALL)로 쓰였으나 지금은 작은 전시관으로 사용되는 듯 했다.



이 건물을 오른쪽으로 돌아 작은 다리를 건너면 출라롱콘왕의 주거용 건물로 사용되었던 옅은 갈색의 3층짜리
L자형 건물이 나온다. 방이 무려 81개나 된다는데 가이드를 따라 내부를 돌아보는 것도 나쁘진 않았지만 그냥
밖에서 건물 외관을 보며 거니는 것이 더 좋았다. 2층과 3층의 사각형 창문 배열이 인상적이었다. VIMANMEK을
포함한 태국의 왕궁은 그 모양새가 우리의 전통 감각과는 다소 다르지만 전체적으로 그리 위압적이지 않아
천천히 산책하듯 돌아보기에 편안했다. VIMANMEK은 JIM THOMSOM HOUSE와 묘한 대조를 보이는 곳이도 하다.
VIMANMEK이 태국인이 서구 취향으로 건물을 세운 곳이라면
JIM THOMSON HOUSE 는 서구인이 '태국적인 것'에 반해 지은 태국 전통 건물이므로


12. 태국인 친구와 BANG POO의 이름모를 식당
어제 저녁 늦게 A가 호텔로 전화를 했다. 우리 가족과 오늘 점심 식사를 하자는 것이다.
A는 우리 가족의 태국인 여자 친구이다. 처음엔 내가 업무상 알게 되었는데< 비즈니스가 끝난 후에도
지금까지 만남을 지속하고 있다. 친구라고 했지만 내가 10년 이상이나 연상이다.
그런데도 피차간에 호칭을 '미스터'나 '미스'로 하니 친구같은 생각이 든다.

그녀는 태국에서 제일 좋다는 출라롱콘 유니버시티를 나와 지금은 일본 회사에 근무를 하고 있다.
근무지는 방콕에서 자동차로 3시간 정도 떨어진 라용시이다. A는 그녀의 약혼남과 함께
우리를 만나러 오겠다는 것이다. 먼 길을 마다않는 그녀가 고마웠다.
그녀의 약혼남인 T 역시 나와 잘 아는 사이이다. 태국 남부 SURAT THANI출신으로
낙천적이고 활동적인 성격에 담백한 마음씨를 지닌 동안의 청년이다.
지금은 기계부품을 만드는 일본 합자회사에 다니고 있다.

A와 T는 우리를 바닷가의 아름다운 식당으로 안내하였다. 그 식당은 방콕외곽 ANCIENT CITY부근의
주 도로에서 벗어나 비포장 길을 잠깐 달리니 나타났는데 유감스럽게도 내 능력으로 그 이상은 가는
방법을 설명할 수 없어 안타깝다.





바다와 접한 언덕 위에 풀잎으로 우리의 초가집처럼 지붕을 엮은 사방이 툭 트인 식당이었다.
거무튀튀하게 쇠락한 색깔의 지붕이 운치를 더해 주었다. 나무로 된 바닥은 걸을 때마다 삐걱거리고
건물 옆으로 드러난 지저분한 모습의 뻘에선 언뜻언뜻 좋지않은 냄새도 풍겨 왔지만 바다를 향해
툭 트인 전망하며 끊임없이 불어오는 알맞게 시원한 바람이 그런 단점들을 쓸며 지나갔다.
무엇보다 우리를 즐겁게 한 것은 음식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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