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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인도네시아

지난 여행기 - 2000발리1

by 장돌뱅이. 2017. 8. 3.

여행 시기 : 2000년 11월
여행 지역 : 발리

출장 끝에 주말을 이용하여 혼자서 2박 3일의 짧은 여행의 기록.
앞선 (2000년 7월) 자카르타 · 발리 여행과 이어지는 여행이라고 
생각해서 일련 번호를 붙여 나갔기에 그대로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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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그래도 우붓은 아름답다

발리의 응우라라이 공항에 도착했다.
급작스레 결정하여 철저히 무계획으로 온 터라 기다리는 사람도 예약되어 있는 곳도 없다.
어느 쪽 방향으로 가건 내 마음이다. 우붓으로 가리라 마음먹고 있지만 상황에 따라선 바꿀 수도 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고 무엇이건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마음을 깃털처럼 가볍게 했다.
일상의 경계를 벗어나 나는 또 잠시 자유로움 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언제나 여행을 한다는 것은 축제며 축복이다.

자카르타 출장 마지막 날인 오늘 아침, 일을 마치고 귀국짐을 싸다가 갑자기 
발리가 떠올랐고 떨치기 힘든 유혹이 되었다.
일단 결심을 하고 나자 모든 일을 서둘러야했다.
월요일 아침 출근을 위해 귀국 비행기의 일정을 일요일 저녁으로 늦추고 
인도네시아 가루다 항공의
전화 번호를 찾아 새롭게 발리행 좌석을 문의하였다.
벼락치기로 바꾼 2박3일의 일정이었지만 다행히 순조로웠다.

발리의 웅우라라이 공항에 도착하는 일 이후론 어떠한 일도 계획하지 않았다.

공항 청사 내에 있는 렌트카회사의 직원이 눈인사를 했다.
우붓까지의 가격을 물어보니 15만 루피아(17불정도)란다.

나는 그를 지나쳐 청사 밖으로 나오자마자 오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발리택시를 타기 위해서이다.
식구들과 함께 여행을 할 때는 가능한 빠르고 편리하며
안전한 것을 우선으로 해야하지만 이번엔 혼자이므로
서두를 까닭이 없었다.
어떤 제한 규정이 있는지 발리에서 가장 서비스가 좋은 발리택시는 공항 청사 내로 들어오지 못했다.

그러나 공항구역을 조금만 벗어나면 바로 발리택시가 있을 것이므로 걸었다.
햇빛이 따가웠지만 살풋이 불어오는 바람이 섞여 있어 기분이 상쾌했다.
예상했던 대로 쉽게 발리 택시를 만났다. 운전사의 이름은 아궁 AGUNG 이었다.
콧수염을 기른 중년의 아저씨인 아궁은 특별한 가격 흥정없이 미터를 꺽었다.

나는 운전사 아궁에게 바다가 보이는 길을 따라 우붓으로 가자고 했다.
급할 것이 없으므로 일부러 길을 에둘러 가기로 한 것이다.

내게 바다는 아직 보는 바다이다. 파도를 가르며 서핑을 하거나 물 속 깊이 들어가면
또 다른 세계가 있겠지만
내게 바다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인간만이 직선을 만들 줄 아는 동물이라고 한다. 그 때문에 우리는 많은 것을 얻고 또 많은 것을 잃고 산다.
그래서 모든 직선은 죄악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자연이 만드는 직선은 전혀 다르다.

바다가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은 모든 것을 포용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무얼 의미하는가를 보여주는 신의 가르침 같다.


많은 사람들이 예전의 우붓과 현재의 우붓을 비교한다. 그리고 대부분 실망을 나타낸다. 
인터넷의 어떤 여행기도 그랬다.


   2년전(94년) UBUD에 갔을 때 난 그곳이 좋았다. 꾸따(해변)의 번잡함에 시달린 내게 우붓을 둘러싼 고무나무의 정적이
   마치 고향처럼 느껴졌다. 놀라울 정도로 싼 가격의 깨끗한 민박집 2층 테라스에서 낮에는 바람과 햇빛을 쐬고 밤에는
   많은 별들을 보았다. 사실 어떤 사람이 내가 가본 적이 있는 어떤 곳을 갈 것이 확실하다면, 그리고 그것이 아주 멋진
   곳이라고 내가 믿고 있다면 그 사람을 위해서 그 곳에 대한 지나친 칭찬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더구나 내가 감명
   받은지 2년이란 시간이 지났다면.
우붓과 같은 순수한 곳의 2년은 이미 개발이 될대로 된 암스테르담이나 로마의 2년과는
   전혀 다른 길이의 시간이다. 아마 같은 감동을 맛보기에 2년은 너무 길었던 것 같다. 언니/동생의 우붓에 대한 환상은 순
   전히 나 때문이었기 때문에 난 내 실망과 더불어 그들의 실망까지 곱으로 느껴야했다.

   첫째로 교통량이 너무 늘어났다. 2년전 오롯한 흙길이던 곳마다 아스팔트 도로가 넓고 갚게 뚫려 매연이 느껴질 정도였다.
   둘째로 숙소와 삐끼들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물론 관광객이 급증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젠 숲쪽으로 깊이 들어가기 전에는
   어디나 번잡스러웠다.
셋째로, 물가가 많이 올랐다. 꾸따/러기안(해변)과 별 차이가 없을 정도였다. 
                                                                                                   - 박정석의 여행기, "두번 째의 발리여행" 중 -


맞는 말이다. 우붓의 중심을 관통하여 동서로 가로지르는 큰 길을 지나가다 보면 혼잡함이 해변가와 같다.
옛 우붓은 지금 그 자리에 없다. 확실히 우리 주위에서 정겨운 옛모습이 점차 사라져가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변한다. 우붓만이 언제나 옛모습으로 남아있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순진하거나 이방인의
이기주의적 발상일 뿐이다. 우붓이 변했다면, 그것도 실망스럽게 변했다면 그것은 우붓만의 책임도 아니다.
어쩌면 다녀가는 자의 책임이 더 큰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현재의 우붓에 대해 너무 크게 실망할 필요는 없다.
더군다나 옛 우붓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므로 지금이 가장 '옛 모습'이다.

무엇보다 아직도 우붓은 충분히 아름다운 곳이다. 내가 우붓으로 다시 오고 싶어한 것은 지난 여행 중
우붓의 들머리에서
보고 느꼈던 모습 때문이었다.
가파른 산줄기를 개간하여 논으로 만든 인간의 노동은 감동적이었다. 
눈길이 마주치면 언제나 미소를 보내는 사람들은 따뜻한 정감도 그랬다. 
사원에서 신을 섬기는 사람들의 흰색 터번은
눈부셨고 제물을 이고 줄지어 걸어가는 여인네들의 황금빛 의상은 신선했다.


 



이제 우리가 기대하는 우붓은 그렇게 우붓으로 가는 길목에, 혹은 우붓을 지나서 있다.
우리가 제주도를 여행할 때에 제주도의 참모습을 대로변에 늘어선 빌딩 뒤로 가야 발견하듯이
우붓도 대로변을 번잡스러움에 내어주고 자신의 참모습은 한발짝 물러난 뒷길로 옮겨가 있는 것이다.


우붓에 도착하고서도 나는 차에서 내리지 않고 이곳저곳 우붓 주위를 돌아다녔다. 우붓에 대한 대강의 윤곽을
파악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이것은 불필요한 일이었다. 우붓을 알기 위해서는 역시 걸어야했다.
차창으로 흘러가는 바깥 모습은 절실하게 다가오는 느낌과 생동감이 없는 무심한 풍경이었을 뿐이었다.
해안길을 돌아오고 우붓 주변을 돌아보았음에도 차비는 9만 루피아(10불) 정도였다.
나는 팁을 합쳐 10만 루피아를 운전수에게 건네 주었다.


13.새소리와 물소리와
HOTEL TJAMPUHAN(짬뿌안)은 CERIK강과 WOS강이 만나는 지점에 있다. 발리에서 강은 우리나라 산의 계곡물
정도의 수준이다. 폭이 좁고 경사가 급하다. 강이 합쳐지는 곳을 발리인들은 신성한 장소로 여겨 사원을 세운다.
TJAMPUHAN호텔 맞은 편, 계곡 건너에도 PURA GUNUNG LEBAH('산자락에 있는 사원' 이란 뜻)이 있었다.
체크인을 한 후 천천히 걸어 건너가 보았다. 축축한 이끼가 낀 건축물들 사이로 투명한 햇빛이 사선으로 비쳐들며
고즈넉함이 고여 있는 곳이었다. 늙은 서양인 부부가 카메라에 사원의 모습을 담고 있다가 고개를 까닥이며
"BEAUTIFUL!, ISN'T IT?"하며 나의 동의를 구했다. 노부부의 평온한 모습이 사원만큼이나 아름다웠다.


TJAMPUHAN은 경사가 급한 계곡을 따라 숲속에 방갈로 형태로 지어져 있다. 우붓의 중심부에선 1KM정도 떨어져있다.

1930년대에 서양 사람인 WALTER SPIES의 집이 있던 자리에 지었다고 한다. 원래는 몇 군데의 숙박업소를 다녀보고
가능한 작은 숙소에 묵을 작정이었다. 그런데 첫 번째로 들른 이곳에서 아름다움과 조용함에 끌려 그만 들고 말았다.


우붓은 시원한 지역이므로 에어컨이 없는 방을 택했다. 천정에 대형팬이 설치되어있었는데 잘 때는 그것마져 꺼야 할 정도였다.
방문을 활짝 열고 베란다로 나가보았다. 숲이 빽빽하다. 초록이 하나 가득 안겨왔다.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와 새소리가 들렸다.
의자에 길게 드러누우니 몸도 마음도 편안해졌다. 눈을 감았다. 물소리가 더욱 가깝게 들렸다. 새소리도 한가지가 아니었다.
수다쟁이처럼 재잘거리는 놈도 있고 구슬 굴리는 맑은 소리를 내는 놈이 있는가하면 나이든 노인처럼 혹은 게으름뱅이처럼
굵은 저음을 길게 빼는 놈도 있다. 어느 것도 귀에 거슬리지 않았다.
마음이 차분히 가라 앉았다. 내 몸이 물을 따라 흘러가거나
공중을 나는 새처럼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문득 우리는 정말 중요한 것을 잊은 채 허깨비같은 것만 바쁘게 챙겨가며 사는 것은
혹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땅의 구석구석은 우리 백성들에게는 신성합니다.
   저 빛나는 솔잎들이며 해변의 모래톱이며 어두침침한 숲 속의 안개며 노래하는 온갖 벌레들은
   우리 백성들의 추억과 경험 속에서 성스러운 것들입니다.
만일 사람이 쏙독새의 아름다운 울음소리나
   밤의 연 못가에서 개구리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인생에 남는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우리 인디언들은 한낮의 비로 씻겨지고 소나무의 향기가 나는 부드러운 바람소리를 더 좋아합니다.
   공기는 인디언들에게 아주 소중한 것입니다.

   짐승과 나무와 인간들이 똑같이 숨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인디언의 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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