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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인도네시아

지난 여행기 - 2001발리(끝)

by 장돌뱅이. 2017. 8. 6.

25.다시 꾸따의 밤거리에서
낮동안 그러했던 것처럼 저녁을 먹고 또 걸어 다녔다. 아무런 계획이 없다는 것이 자유롭다.
밤바디 소리를 들으려 해변에 앉아도 보고 사지도 않을 상점에 들어가 이물건 저물건을 만져 보기도 하고
끈덕지게 달라붙는 장사꾼들과 실없는 농담도 주고 받으면서.



계획 - 진척도 점검 - 마감 - 실적분석...... 월급쟁이로서 내가 한달을 사는 내용이다.
정작 자신의 삶에 대해선 한번도 타임 스케쥴을 그려가며 계획을 짜 본 일도 없고 해가 바뀔 때마다
삶의 목표에 대해 진척도를 점검한 적도 없이 허위적허위적 살고 있으면서 말이다.
정말 그냥 그렇게 40대의 중반을 넘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결코 서두르고 싶지 않다. 서두른다고 될 일도 아니지만. 아직은 장거리 달리기 선수처럼 긴 호흡을 쉬고 싶다.
한번은 딸아이가 시험을 망쳤다고 속상해 할 때 "앞으로 네가 살아가야 할 긴긴 삶에서 그까짓 시험 한두번이야
큰 강물에 떠내려가는 지푸라기보다도 작은 일이다" 라고 위로한 적이 있다.
딸아이는 현실적으로 별 위로는 되지 않지만
'왠지 폼 나는' 말이라며 싫지 않은 표정을 지었었다.

그러나 그 말은 정작 내가 먼저 귀담아 들어야 할 말인지도 모른다.
언젠가 대학 동창 녀석이 집을 찾아와 내 책장을 둘러보다 이제는 고동색으로 빛바랜 학창 시절의 막걸리 묻은 시집을
꺼내 들며 "너 아직도 이런 책 보냐?" 하고 물었을 때 내게도 역시 잊혀진 시집이면서 아직은 거부하고 싶었던
그 '아직도'라는 의미.

그리고 다시 하드락 카페에 들렸다.
자정이 넘으면서 하드락은 카페로 통하는 2층 문을 닫고 일층의 나이트 클럽을 열어 본격적인 '하드락'의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실내로 들어섰을 땐 이미 사람들이 가득 차 서있을 장소마저 마땅치 않았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귀를 찢는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드는 사람들과 부딪힐까 조심을 해야 할 정도였다. 나는 기둥에 기대어 서서 맥주를
마시며 이제까지의 카페 하드락과는
또 다른 모습의 하드락을 잠시 지켜보았다.
역시 음악은 내게 듣는다는 의미뿐이다. 그 때문인지 하드락의 음율에 몸짓으로
응답하는 세계 각국에서 온
젊은이들의 요란스런 모습이 나는 은근히 부럽기도 했다.


흔히들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무엇을 하겠다라는 말을 한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면 나는 키타나 드럼을 연주하는
'딴따라'나 연극을 하는 광대가 되겠다고 대답하곤 한다.
농담처럼 말하지만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빛 바랜 시집처럼 이제는 퇴색해 버린 꿈이지만 난 아직도 홍역을 앓듯,
친구들과 함께 나눈, 내 젊은 날의 고민을 후회하지 않는다.

후회는 커녕 부끄럽지만 '아직도'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다만 다시 태어난다면 그때와는 다른 고민을 할 수 있는 세상에서 살고 싶을 뿐이다.


26.꾸따의 마지막 날
이번 발리 여행의 마지막 날. 아침은 동일하게 시작하였다.
어제보다는 일찍 일어나 해변을 달렸다. 그리고 서핑 보드를 빌리는 곳에서 뜰개를 빌려 파도 속으로 뛰어 들었다.
어제처럼 맨몸으로 파도에 같이 뒹굴며 휩쓸려 보기도 했다. 혼자였지만 동심으로 돌아간 듯 즐거웠다.
호텔로 돌아와 책을 읽으며 잠시 휴식을 취한 나는 발리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하기 위해 일어섰다.

바비굴링 BABI GULING.
BABI GULING은 인도네시아어로 통돼지구이를 뜻한다.

내게 이 음식을 권한 사람은 한 택시 운전사였다.
무심코 '당신이 소개하고 싶은 발리 최고의 음식이나 식당이 있으면
알려 달라' 했더니 그는 주저하지 않고 '바비굴링'이란
음식을 소개했다. 어느 식당이 그 음식을 가장 잘하느냐고
또 물었더니 발리의 어느 식당이라도 바비굴링은 다 잘하므로
아무 곳이나 가도 된단다.

그 뒤에 가는 식당마다 바비굴링을 물었다. 그러나 그런 음식은 급이 낮은 음식이라 호텔이나 유명 식당에서는
파는 음식이 아니라고 했다. 나는 아무 택시나 잡아타고 운전수에게 바비굴링을 잘하는 집으로 가자고 했다.
그는 운전석의 무선전화기를 들고 자기 회사에 음식점의 위치를 물어 주었다. 택시로 발리를 여행하기 좋다는
나의 평소 생각은 발리 운전사들의 이런 친절 때문에 생긴 것이기도 하다. 그들은 손님의 어떤 질문에도
성실히 답변하며
모르는 것은 무전기로 알아봐 주기까지 한다.

그러나 택시회사의 답변이 오기 전 나는 도로변에 간판에서 바비굴링이란 간판을 단 작고 허름한 식당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비굴링은 여행객을 위한 음식이 아니라 발리인들의 음식이었고 주 고객도 발리인들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콜라 한병과 바비굴링을 시켰다. 음식을 만드는 식탁에는 중돼지 반 마리 정도가 기름에
튀겨진 모습으로
올려져 있었고 사장 겸 주방장인 중년의 사내는 음식을 만드는 사이사이 손님들의 음식값까지
주고 받으며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바비굴링은 흰밥 위에 돼지고기와 돼지 껍데기를 비스켓처럼 튀긴 조각에 각종 내장튀긴 것을 양념과 함께 얹어
주는 것을 말했다.
다 준비되어 있는 것을 모아주는 것이므로 간단해 보였다.
다만 주인장 아저씨가 땀이 번들번들한 손으로 돈을 세기도하고
밥도 퍼주며 각종 돼지고기와 내장을 만지는 것이
좀 불결해 보였다.


통돼지 반마리 위쪽으로 가깝게 붙어 있는 파리잡이용 끈끈이 판에는 온통 까맣게 파리들이 달라붙어 있었다.
음식 맛은 괜찮았다. 일본인 청년 신지 나이토를 그 식당에서 만났다. 그는 바비굴링 한그릇을 씻은 듯 깨끗하게 비웠다.
발리가 좋아서 이곳에서 다이빙 관련한 일을 하며 산다고 했다. 다이빙하기에는 태국이 더 좋지 않냐고 하니까
자기도 태국의
코 타오나 피피 등을 다녀봤는데 다이빙과 상관없이 그냥 발리가 좋아서 혼자 산단다.
그냥 이유없이 뭔가가 좋다는 것, 그것은 사랑의 다른 표현이다.

또 한번의 짧은 발리 여행이 끝났다.
내가 3일간을 보낸 꾸따의 앞바다로 비행기가 솟아오를 때 창밖을 내다보며
하드락 카페의 벽에
붙어 있던 비틀즈의 노래 가사를 생각했다.

AND IN THE END THE LOVE WE TAKE IS EQUAL TO THE LOVE WE MAKE...

나는 이 글 중 LOVE 대신에 BALI란 말을 넣어 다시 생각해 보았다.
AND IN THE END THE BALI WE TAKE IS EQUAL TO THE BALI WE MAKE...
(결국에 우리가 취한 발리는 우리가 만든 발리와 동일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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