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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발밤발밤10 - 서울 자문밖 부암동2

by 장돌뱅이. 2015. 11. 7.

올 가을은 자문밖으로 발걸음이 잦다.
10월 마지막 날 북한산에 오르기 위해 광화문에서 버스를 타고 자하문 고개를 넘었다.
오래간만에 친구 부부들과 동행을 했다. 

절정이리라 기대했던 단풍은 아직 멀어 보였고 어떤 것들은 물들기도 전에 말라가고 있었다.  
먼지가 풀석이는 산길에는 나뭇잎 마르는 냄새가  얼핏얼핏 풍겨왔다.
친구는 가뭄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도 더없이 맑은 하늘에 바람은 잔잔했다. 청신한 느낌의 공기는 산행에는 그만이었다.
올라갈 땐 보현봉을 보며 걷고 내려올 땐 평창동 일대를 보며 걸었다.


옛 친구들과 만남은 세월과 사회생활이 남긴 각질의 외피를 풀어놓게 된다.
무장해제의 시간.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커진다.
거기에 부암동의 식당 "소소한풍경"의 음식은 즐거움을 더해주었다.


산행을 다녀온 며칠 뒤 아내와 둘이서만 백사실계곡을 찾았다.
왠지 백사실을 다녀와야 자문밖 여행이 완결될(?) 것 같았다.

세검정초등학교 정거장에서 가까운 곳에서 백사실 계곡은 시작되었다.
마을에 바투 붙어 있으면서도 숲과 계곡은 소박한 그윽함을 지니고 있었다.
넓은잎나무와 바늘잎나무들 사이로 난 길에는 싱싱한 기운이 흘렀다.
가뭄으로 수량은 작았지만 계곡에 고인 옹달샘만 한 물에는 피라미가 놀고 있었다.
곧 말라버릴 듯 얕은 물이었다. 백사실계곡에는 일급수에만 사는 도롱뇽과 가재도 있다고 한다.
"얘네들을 위해서라도 어서 비가 좀 와야 할 텐데......"
걱정하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단풍은 햇살을 안으면 속을 보여줄 듯 투명해지며 생동감이 더해진다.
그 어울림에 시선을 두다 보니 발걸음은 자꾸 늦어졌다.
별장터 언저리는 백사실의 중심부이자 하이라이트였다.
그곳 벤치에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 고개를 꺾고 하늘을 바라보기도 했다.

백사실 계곡에 대한 설명은 안내판에 나와있는 설명으로 대신한다.

   백석동천은 조선시대 별서가 있던 곳이다. 자연경관이 수려한 곳에 건물터와 연못 등이 남아 있으며, 인근에
   '백석동천(白石洞天)', '월암(月巖)' 등의 각자(刻字)바위가 있다. '백석동천'의 '백석'은 '백악(북한산)'을 뜻하고, 
   '동천'은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을 말한다. 따라서 '백석동천'은 '백악의 아름다운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이라는 뜻이다. 한편 백석동천은 인근 주민들에게 '백사실 계곡'이라고 불리면서 이항복의 별장지
   였다고도 전해지는데, 이는 이항복의 호가 백사(白沙)인 것에서 유래하여 구전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이곳에는
   연목과 육각정의 초석이 그대로 남아 있고, 그 뒤의 높은 곳에는 사랑채의 돌계단과 초석이 잘 남아 있다.


숨 가쁘지 않은 경사의 백사실계곡을 거슬러 오르니 부암동길과 만났다.
길가에 "카페 산모퉁이"가 있었다. TV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의 촬영 장소로 널리 알려진 곳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 유명세를 증명해 보이고 있었다. 일본인들도 많았다.

그곳에서 정면으로 바라보는 인왕산 자락의 풍경은 압권이었다.
왼쪽으로는 북악산과 산을 따라 가파르게 세워진 서울 성벽이 보였다.
절묘한 위치를 찾아낸 안목도 절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를 시켜놓고 아내와 오래 멍때리기를 했다.
때로 말이 필요 없는 시간이 있다.
햇살과 하늘과 단풍과 마을의 풍경만으로 충분한.


카페를 나와 다시 걷다가 만난 감나무.
사람이 사는 집과 가장 잘 어울리는 과일나무는 역시 감나무다.
아련한 향수를 불러오는 우리나라 가을의 전형적인 풍경이기도 하다.

며칠 전 경북 청도가 고향인 친구가 감을 한 상자 보내주었다. 
고향집에 울타리 안에 있는 감나무에서 딴 것이라고 했다.
일주일 정도를 상자를 열지 말고 두면 홍시가 된다고 알려주었다.
정확히 일주일 후 감이 말랑말랑해져 있었다.
주위에 감을 나누었다. 풍년의 농부처럼 가을이 풍성해진 느낌이었다.


자문밖에는 미술관이 많다.
주변에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있으면 하나 정도는 들러보자는 것이 아내와 내가 정한 여행길의 규칙이다.
규모가 큰 곳은 가장 관심이 가는 일부분만 둘러보고 나머지는 다음번 방문을 위해 남겨두는 여유도 규칙의 일부이다. 그곳이 다시 온다는 기약을 하기 힘든 먼 외국이라 하더라도 더 많이 보려는 욕심은 버리기로 한 것이다. 감상 능력(?)의 한계를 넘는 입력은 신경조직과 사고체계의 혼란만을 남기기 쉽다. 과도한 욕심의 절제는 어느 경우에나 미덕이다.

남다르게 미술품에 대한 예민한 소양이 있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런 바탕이 전형 없기 때문에 나온 방식이다.
우리가 미술품을 보는 기준은 단순히 우리집 거실에 걸어두어도 좋겠는가에 있다. 그렇다고 우리의 경제적 능력으로 전시된 비싼 진품을 사서 걸어둔 적은 없다. 다만 (언젠가 표구를 하여 걸어둘 욕심으로) 미술관이나 박물관 기념품점에서 산 프린트물은 몇 점이 된다.

환기미술관은 우리나라 추상화의 대가인 김환기를 기리는 미술관이다. 김환기 하면 그의 대표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가 생각난다. 그림 이전에 김광섭시인의 시에서 익숙해진 작품명이기도 하다. 대중가요로도 불려져서 더욱 그럴 것이다. 수없이 많은 작은 네모로 이루어진 푸른색의 그림. 이번 환기미술관에선 기념품점의 프린트물로만 감상할 수 있었다.

외국에 비해 우리나라 전시관은 사진에 대해 좀 인색하다는 느낌이다. 플래시를 사용하지 않아도 사진 찍는 것이 금지되어 있는 곳이 많다. 환기미술관도 그랬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는 것이지만 조금 너그러워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체적으로 미술관에 김환기 화가의 작품이 기대만큼 많지는 않았다.
그러나 대부분 '집에 걸어두고 싶은' 색감과 구도의 그림들이어서 아내와 나로서는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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