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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베트남

2005하노이1 - ‘묵사발’의 하노이로 가며

by 장돌뱅이. 2012. 4. 17.

묵사발이란 말이 있다. 일상생활에서 이 말은 “묵을 담는 그릇”의 의미로 쓰는 경우보다는 “심한 타격을 받고 사물이 몹시 일그러지거나 망가진 상태”를 일컫는 의미로 더 자주 쓴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그 말을 여러 번, 그것도 의도적으로 쓴 적이 있다.
월남전 관련한 글짓기나 파월국군장병에게 위문편지를 쓸 때였다.

나는 나의 편지가 국군아저씨들에게 놀라운 사기를 북돋아 줄 것이란 확고한 믿음과 사명감을 가지고 침을 발라가며 또박또박 편지를 썼다. 어린 나는 나름 ‘묵사발’이 유머러스하면서도 월남 장병 아저씨에게 가장 적절하게 써먹을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붉은 이리’와 ‘붉은 늑대’ 중 어느 표현이 더 좋을까 진지하게 고민도 해가며, 그리고 주먹으로 치면 수많은 파편으로 쉽게 부서져버릴 메밀묵 한 사발을 상상하면서.

“국군아저씨! 짐승같은 붉은 이리 떼를 묵사발 내고 자유월남을 지켜주세요.”

이리가 이미 짐승인데 너무 흥분한 탓이었나 보다. 옆에서 보시던 선생님이 웃으며 고쳐주신 기억이 있다. ‘초개와 같이 몸을 던져 산화한’ 이나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 ‘맨 주먹 붉은 피’등의 살벌한 표현이 일상의 용어처럼 흔해, 초개(草芥)의 뜻도 화랑담배의 맛도 모르면서 나와 친구들은 전장의 사진과 영화에 무조건 가슴이 벅차오르곤 했다.

그 시절을 사내아이로 지나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금도 백마, 맹호, 청룡부대의 노래 한 구절은 쉽게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학교에서 음악시간에 자주 불렀고 걸핏하면 라디오에서도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세운 공도 찬란한 무적의 사나이......백마부대용사 ......♬
♬자유 통일 위해서 조국을 지키시다 조국의 이름으로 님들은 뽑혔으니 가시는 곳 월나아암 땅!......♬
♬월남의 하늘 아래 메아리치는 귀신 잡던 그 기백 총칼에 담고 붉은 무리 무찔러 자유 지키러......♬

십자성부대도 있었던 것 같은데 노래가 있었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우리들 사이에서 십자성부대는 인기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 부대는 후방에서 다친 병사들에게 ‘아까징끼’나 발라주고 붕대나 감아주는 계집애 같은 짓이나 하는 부대라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십자성부대라고 하면 하얗고 파리한 얼굴에 안경을 콧등에 걸친 - 전투영화 속의 희극배우 구봉서나 서영춘처럼 겁 많은 병사를 연상하곤 했다. 모름지기 군인은 가수 김추자 노래 속의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상사’여야 했다. 그것도 ‘의젓하게 훈장 달고 돌아온’.

고등학생이던 75년 봄 사이공은 함락되었고 월남은 패망했다.
우리 정부는 월남 패망의 이유를 대학생들의 몰지각한 시위와 사회의 혼란상을 이유로 들었다. 보트를 타고 사이공을 탈출한 난민들의 눈물 어린 이야기가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란 속담의 근거처럼 연일 계속되었다. 당시의 독재 권력층에게 월남사태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짓누르던 유신체재의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는 실증 자료였다. ‘북괴의 남침야욕’은 강조되었고, ‘총력안보’를 위해 일사분란한 군대식 ‘국민총화’가 미덕으로 더 한층 강요되었다. 급기야 프로권투 시합의 TV 중계 시 우리나라 선수가 이기자 흥분한 해설자가 뜬금없이 “이건 국민총홥니다!” 라고 격앙된 목소리로 부르짖으며 ‘한국적 해설의 토착화’를 단숨에 실현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월남전이 "인류의 양심을 시험하는 전쟁"이라는 의미를 깨우쳐 준 것은 대학에 들어와 읽은 베트남전쟁에 관한 글, 특히 이영희교수의 글이었다. 친구가 권해준 『전환시대의 논리』라는 책을 밤을 세워 읽으며 나는 충격 속에 내가 살아온 시대를 돌아볼 수 밖에 없었다. 요즈음 이라크전쟁이 그렇듯이 월남전 역시 미국이란 강대국이 어떠한 명분도 없이 힘만을 앞세워 약소국가를 침략한 야만적인 전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전쟁의 과정에 모든 인류가 양심의 편에 서지는 않았지만 역사는 양심의 편에서 진전된다는 것을 인류에게 경고한 전쟁이기도 했다.

한때 내팽개쳐진 ‘묵사발’처럼 형편없이 망가지기를 바랐던 사람들의 나라,
베트남의 하노이를 아내와 함께 다녀오기로 했다.

저녁 비행기를 탄 탓에 한밤중이 되어서야 하노이의 노이바이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도로는 어두웠다. 사람들도 별로 보이지 않는 적막한 도로를 한참 달려 거리의 불빛이 조금 밝아지는가 싶더니 숙소인 소피텔 메트로폴에 도착했다. 소피텔은 프랑스 식민지시대부터 있던 호텔이라고 한다.

늦은 시각이었지만 짐을 풀자마자 곧바로 호텔바로 내려가 아내와 맥주 한잔을 하는 것으로 하노이 입성을 자축했다. 다시 객실로 돌아가는 길, 복도 벽에 붙은 그림 속에 흰 아오자이를 입은 베트남처녀가 있었다. 오래 전에 읽은 구엔 반 봉의 소설 『사이공의 흰 옷』이 생각났다. 한 평범한 소녀가 60년대 조국 베트남의 현실과 온몸으로 만나면서 겪게 되는 고난과 역경을 불굴의 정신으로 이겨내면서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었다.

날이 새면 우리는 무엇인가를 보고 누군가를 만날 것이다. 즐거워 할 수도 있고 흥분할 수도 있으며 실망할 수도 있지만 어떠한 경우든 그것이 내 젊은 스무 살의 어느 날 저녁 책 속에서 만났던 베트남에 대한 격정의 감동을 깎아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이후의 삼십년 가까운 시간은 새로운 영광도 부끄러움도 만들기에 충분한 시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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