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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2루 위에서

by 장돌뱅이. 2016. 6. 1.

아침 여섯시 반.
눈이 떠졌다.
만33년의 시간이 만든 관성이다.
잠시 누워서 오늘의 할 일을 생각했다.

오늘부터 나는 흔히 말하는 '백수'가 된 것이다.
매일 같이 할 일이 이미 거기 있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커진 시간의 상자 속에 의식적인 '일'을 채워 넣어야 하는.
33년만이라 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50여년 만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래 눈을 뜨면 늘 할 일은 이미 마련되어 있었으니.

방문을 열고 나가 마주치게 된 벽 위의 '그분을' 바라 보며 오래간만에 화살기도를 했다. 
"덕분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승리 타점의 쾌거가 있었던 것도, 만루홈런의 기세등등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저 상대방의 '야수선택'으로 운좋게 1루에 나가 사랑하는 이들의 희생번트로 가까스로 2루에 안착한 것일 뿐인데,
어제 저녁 아내는 환한 꽃다발로 딸아이 부부는 신형 핸드폰과 멋진 저녁으로 나의 '귀가'를 축하해 주었다.
딸아이가 건네 준 편지를 읽으며 나는 오래도록 철부지처럼 울기도 했다.
고마움에 앞선 미안함 때문이었다.
꽃다발은 내가 그들에게 주어야 마땅한 것이었다.




아내와 딸아이가 내게 되돌려 준, 내가 했던 말,
'아기 걸음마(BABY STEP)'의 의미를 생각하며 백수의 첫 아침을 시작한다.
아직 내겐 그들과 함께 가야할 '홈베이스'까지의 2루가 더 남아있음을 자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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