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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내가 읽은 쉬운 시 102 - 이문재의 「도보순례」

by 장돌뱅이. 2019. 4. 25.



미국 근무를 할 때 귀국 명령이 나면 언제든 미련없이 사표를 던지고 일이 년쯤 북남미 대륙을 여행하다가
귀국하여 그 이후엔 '
정신 차리고'(?) 살자고 아내와 의기투합 한 적이 있다. 결국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딸아이의 결혼이 갑작스레 정해졌고 아내와 나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절체절명의 생활 논리를
계로
계획보다 앞서 '정신을 차리고' 말았다.

귀국한 지 몇년이 지나 회사를 퇴직하였다.  계획이 있었다.
몇몇 지방 도시에서 계절마다 바꿔가며 살아 본다. 그 후에는 좋아하는 동남아에서 몇 개월씩 살아본다 등등. 
그러나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손자 친구가 태어났다. 새 친구와 어울리는 시간은 간혹 힘이 들어도
무엇보다 바꿀 수 없는 경험이어서 행복하기 그지없었다. 

그런 큰 문제만이 아니라 사소한, 일테면 퇴직을 하면 머리를 박박 밀거나 혹은 반대로 장발로 길러보려는 생각도
가족들의 
'별로'라는 표정에 막혔다. 머리 염색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은 일단 실행에 옮기긴 했으나 이런저런
사회활동을
위한 면접응하다보니 '잘 보이려고' 다시 하게 되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
동남아 어느 바닷가 리조트의 모토이기도 했던 이 말은 내겐 한동안 은퇴 이후의  삶을 상상하는 말이었다.
어디에서 살건 은퇴 이후 나는 나무 그늘에 누워 하늘을 보거나 아내와 동네 길을 '쓰레빠'를 끌며 천천히 어슬렁거리려고 했다.
게을러지고 싶었다.  숫자와 실적과 달성률에서 벗어나 '한없이 작아지고' 싶었다. 백수도 연식이 쌓이니 또 다시
'정신을 차리려'는 무의식이 뿔끈거리기도 하지만 생산적인 무엇인가를 해야만 삶이 충실해진다는 투의 등식은 어색하다.
하릴없이 멍때리는 무위도식은 그저 나태이며 삶을 낭비하는 것일까? 

백살까지 살 수도 있으니 여가나 휴식도 공부하고 훈련하자는 부추김이 어떨 땐 겁박처럼 들린다. 

일을 한다면 '
살기 위해 일하고 싶다'. 아니 '살기 위한' 일만 하고 싶다.
'어두워지면 어두워지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일본 영화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인생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난다"고 했지만.


나 돌아갈 것이다

도처의 전원을 끊고

덜컹거리는 마음의 안달을

마음껏 등질 것이다

 

나에게로 혹은 나로부터

발사되던 직선들을

짐짓 무시할 것이다

 

나 돌아갈 것이다

무심했던 몸의 외곽으로 가

두 손 두 발에게

머리 조아릴 것이다

한없이 작아질 것이다

 

어둠을 어둡게 할 것이다

소리에 민감하고

냄새에 즉각 반응할 것이다

하나하나 맛을 구별하고

피부를 활짝 열어놓을 것이다

무엇보다 두 눈을 쉬게 할 것이다

 

이제 일하기 위해 살지 않고

살기 위해 일할 것이다

생활하기 위해 생존할 것이다

어두워지면 어두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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