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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베트남

2005하노이8 - 하롱베이를 지나서(끝)

by 장돌뱅이. 2012. 4. 18.

잘 알려져 있다시피 ‘하롱’은 용이 내려왔다는 뜻의 하룡(下龍)을 의미한다.
통킹만의 푸른 바다 위에 꿈틀거리는 용의 모습처럼 수천 개의 섬들이 떠있는 것이다.
어떤 이는 그 아름다움을 칭송하고 어떤 이는 기대치보다 못함을 서운해 하지만
아내와 내게는 배에 몸을 싣고 그림처럼 떠있는 섬 사이를 지나는 유유자적함이 좋았던 곳으로 기억될 것이다.

세상의 어느 곳이든 가 볼만한 가치가 없는 곳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배에서 일박을 하는 투어를 선택하여 섬 사이로 뜨고 지는 해를 바라보고 싶었다.
운이 좋다면 깊은 밤 검은 하늘의 무수한 별들도 볼 수 있으리라.

하롱베이를 끝으로 모든 여정이 끝이 났다.
하노이로 돌아와 우리는 호텔 직원이 소개해준 차를 타고 귀국을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
(직원은 호텔 차 대신에 자신의 친구의 차를 이용해달라고 제안을 했다.) 

시내를 빠져 나오는 동안 젊은 운전기사는 연신 경음기를 눌러댔다.
재미삼아 횟수를 세어보니 채 3분이 지나지 않아 2백 번을 넘어섰다.
아예 경음기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는 표현이 정확할 지도 모르겠다.

경음기에 대해 나는 한 가지 기억을 갖고 있다.
80년대 중반 싱가폴에서 온 회사손님과 도심의 길을 걷고 있을 때 문득 그가 내게 물었다.
“한국사람들은 운전을 하며 왜 이렇게 경음기를 많이 누르는 거지?”
그의 물음 한 마디로 그때까지 조용하게만 느껴지던 거리가 갑자기 시끄러운 소음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놀라운 경험이며 충격이었다.
세상에 내가 이렇게 시끄러운 속에서 여지껏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살고 있었다니!

우리도 ‘하노이 오케스트라’와 같은 시절을 불과 얼마 전에 지나왔던 것이다.
공항이 가까워오면서 직선으로 뻗은 도로가 나오자 운전기사가
경음기를 누르는 횟수는 현격히 줄어들었다.
그렇듯 문제는 사람의 후진성이 아니라 환경의 후진성일 뿐이다.

1972년 8월 하노이를 방문한 미국의 영화배우 제인폰다는 미국의 침략을 비난하는 연설을 했다.
전쟁이 끝난 지 오래 되었고 상황은 많이 변했지만 그 때 미국의 한
배우가 보았던 베트남인들의
강인한 정신력과 저력은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믿어도
될 것이다.

   내가 의심할 수 없는 자명한 진리로서 이 나라에서 깨닫게 된 하나의 사실은
   닉슨은 결코 이 땅의 사람들의 정신을 파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닉슨은
   북베트남이든, 남베트남이든, 폭격과 침략, 어떠한 방식의 공략으로도 이 땅을
   미국의 식민지로 만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 (......) 이들은 4천년 동안이나
   자연과 외국인침략자들과 줄기차게 싸워왔습니다. 프랑스와 식민투쟁에서도
   이겼습니다. 베트남의 사람들은 타협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독립과
   자유를 스스로 쟁취해나갈 것입니다. 나는 리차드 닉슨이 베트남의 역사와
   베트남의 시, 특히 호치민의 시를 배워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행 중에 만났던 ‘하노이 오케스트라’의 연주자들과 분주한 거리, 강물과 바다와
산과 구름과 햇살,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함께 헤치고 지나온 그들의 역사에 애정과 부러움을 함께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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