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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음식 이야기

by 장돌뱅이. 2017. 1. 24.

새해엔 잘 먹는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프면 입맛부터 잃게 되는 법이니 잘 먹는다 것은 우선 육체적으로 건강하다는 뜻이겠다.
걱정이 많아도 화가 나도 밥맛이 없어진다. 따라서 잘 먹는다는 배경에는 정신적 편안함도 있겠다.
또 지독히
싫은 사람에 대해서 우리는 흔히 '밥맛 없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럴 경우 잘 먹는다는 것은 주변에 '밥맛 없게 만드는' 사람들이 없다는,
주위 사람들과 관계가 건강하다는 
미도 되겠다.
아무튼 잘 먹는 일이야 말로 행복의 근원이자 증거이다.
구태의연한(?) "복많이 받으시라"보다 "잘 먹고 잘 살자!"로 새해 덕담을 바꿔보는 것도 좋겠다.


사람이 먹는 음식 중에 내가 못 먹는 음식이 있을까 생각해 봤다. 아직까진 없는 것 같다. 
''걸구'형(形)의 내 입맛은 장돌뱅이로 보낸 직장 생활 33년 동안 나름 힘이 되어 주었다. 
중국과 동남아, 인도와 중동, 아프리카와 북중미를 싸돌아 다니면서 특별히 고개를
외면하게 되는 음식은 없었다. 실제로 중국 개방 초기에 장기 출장 동안의 음식 문제가 주는 
스트레스로 회사에 사표를 내는 사람들도 있던 시절이었다.
(우리나라 여행 자유화가 1986년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되는 일이다.
국민 전체가 외국문화에 초보자였던 시절이었다.) 

물론 내게도 입에 착착 달라붙지 않거나  더 나아가 외면하고픈 음식이나 식재료도 있었다.
그중의 한가지가 고수(팍치, 샹차이, 실란트로, 코리앤더)이다.
첫 중국 출장에서 다분히 나를 골려주기 위해 내온 모든 엽기적인 음식을 거침없이 먹었지만
샹차이(香菜)가 뎦혀 나온 연두부엔 고개를 저으며 항복하고 말았다.
물론 지금은 매운탕에 들어가는 방아잎이나 산초가루처럼 음식엔 고수가 들어가야
제맛이 난다고 주장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못 먹던 음식이 한 가지 더 있었다. 치즈다.
내가 처음 치즈를 눈으로 확인한 것은 늦은 나이에 입대한 군대에서였다.
그때까지 치즈는 학교 실과시간에 배운 유제품 정도로만 알고 있었지 실체를 본 적은 없었다.
내가 촌놈인 이유도 있겠지만 당시에 치즈를 직접 본 사람은 아마 별로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직 졸병이었던 시절, 점호가 끝나고 잠자리에 누웠는데 옆자리에 누워있던
동기 녀석이 낮은 귓속말을 전해왔다.
"잠깐 밖으로 나와 봐."
내무반 뒷쪽에 나가자 녀석은 무슨 큰 인심이라도 쓰듯 힘 주어 뭔가를 반으로 잘라 내게 건넸다.
녀석은 그날 휴가에서 막 돌아온 참이었다. 녀석은 나중에 유명 연예인이 되었는데, 당시로서는
귀한 치즈를 가져온 걸 보면 아마 집 사정이 괜찮았던 모양이다.
"이게 뭔데?"
"묻지 말고 그냥 빨리 먹어봐."
나는 녀석의 말을 믿고 '빠다'처럼 생긴 노란 사각형의 덩어리를 덥썩 한 입 깨물었는데,
갑자기 역한 냄새가 입안에 가득해 왔다. 한마디로 시궁창 냄새였다.
"야! 뭐야 이거? 상한 거 아니야?"
나는 아직 입안에 '그 망할 놈의 먹을거리'를 머금은 채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 그가 가소롭다는 듯이 말했다.
"아이구, 이런 촌놈. 그게 치즈란 거야 임마. 몸에 좋으니까 그냥 눈 감고 삼켜."
나는 치즈란 말에 눈을 감고 버적버적 씹어 삼켰다.
물론 치즈도 지금이야 없어 못 먹는다.
딸아이 어렸을 적엔 딸아이의 몫을 아내 몰래 빼앗아 먹기도 했다.

아내와 함께 산 지도 33년이 되었다.
세월은 우리 부부의 음식 취향을 비슷하게 만들어 놓았다.
나는 아내의 취향을 따라 싫어하던 냉면을 좋아하게 되었고
아내는 외면하던 곱창과 회를 나를 따라 좋아하게 되었다.

아직 '합의'에 이르지 못한 음식도 있다.
나야 앞서 말한 대로 '걸구 입'이라 아내가 먹는 모든 음식을 좋아하지만
아내는 아직 내가 좋아하는 음식 중 몇 가지를 그리 탐탁해 하지 않는다.
멕시코 음식 따꼬(TACO)와 월남국수, 그리고 순대국밥이 그것이다.
(희한하게 현지에서 먹는 태국국수나 월남국수는 좋아한다.)

우리나라에서 만드는 따꼬와 월남국수는 나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멕시코의 따꼬와 베트남의 국수 맛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현지'인 순대를 아내와 함께 나누지 못하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해서 아내와 함께 하지 않는 식사자리를 나는 종종 순대국밥집에서 해결하곤 한다.
아내와 함께 할 수 없는 음식이기에 간단한 점심이면 은근히 상대를 순대국밥집으로 유인할 때도 있다.

'한국식 소시지'라 불리기도 하는 순대는 우리의 빈농과 서민층이 즐겨 먹던 전통 먹을거리다.
충청도에는 병천순대가 있고 경기도에는 백암순대가 있다. 또 함경도에는 아바이순대가 있다.
순대속의 내용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모양이다. 강원도의 오징어순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서울에서 내가 좋아하는 순대국밥집은 선릉역 부근의 박서방 순대국밥,
을지로 4가의 산수갑산, 건대입구역 근처의 고흥순대국밥집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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