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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원수를 사랑하라?

by 장돌뱅이. 2017. 2. 26.

17번째 토요일 저녁 반납.
이 '가당치 않은 일'과 뉘우침 없는 인간들의 존재.

신은 왜 저들을 노아의 홍수처럼 단숨에 쓸어버리지 않고 남겨두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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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필귀정 · 권선징악은 신(神)의 존재를 증명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은혜로운 약속이 되어야 하는 거 아니던가?
선이나 정의는 역사에서는 번번이 유보되는 소망이며 복음은 사실 기만의 다른 이름일 뿐인가?

투덜거려보지만 결론은 다시 광화문이다.
끝날 때까지 토요일 저녁 광화문 광장의 빈자리는 누군가가 채우지 않은 의무일 것이다.
기껏 머릿수 하나 보탤 수밖에 없다는 '자괴감'은 혹 이 작은 실천의 끝에
소망하는
결과가 있을 거라는 다짐과 희망으로 눌러보면서.

오늘은 나와 아내에게
천주교 교리를 가르쳐주신 스승님과 함께 했다.
수녀님이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가난한 나라로 소임을 받아 떠나기 전
바쁘신 와중에 짬을 내어 광화문에 오신 것이다.
처음 뵈었을 때처럼 여전히 쾌활하시고 씩씩하시다.
가장 황폐한 곳은 푸른 기와 지붕 밑에 사는 '닭'의 정신 세계인 것 같으니
거기부터 정화시켜달라는 나의 짖궂은 위악도 웃어넘기시면서.

광장에서 만나는 수도자들의 모습에서 아내와 나는 저들의 부패와 거짓과 오만에 대한 
한층 더 깊은 분노를 깨닫게 되고 
더불어 따뜻한 위로를 받는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죄인에 대한 정당한 처벌을 금지하는 말씀으로,
   혹은 누군가의 죄와 악행을 모른 척 하라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설픈 관용으로 처벌을 주저하거나 죄를 묵과하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사랑의 원칙에 어긋나는
   행동일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양심의 소리에 무디어져 더이상 자신의 의지로 하느님의 법을
   따르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적합한 처벌에 따르는 고통과 손해를 겪으며 정신을 다시 차리는 것만이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생명의 길로 다시 나아가는 유일한 방법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주님은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동시에 "동족의 잘못을 서슴없이
   꾸짖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진실은 인양되어야 하고, 
거짓은 밝혀져야 하고, 죄를 지은 이들은
   응분의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죄인의 처벌을 바라는 
우리의 마음이 분노와 복수심만으로
   가득 차 우리 스스로가 하느님의 사랑의 법에서 멀어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히려 그 처벌을 통해 죄인들이 진심으로 회개하고 다시 하느님과 화해하여 참된 생명을 얻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최규하다니엘 신부님의 글(2017년 2월19일자 성당주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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