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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태국

지난 여행기 - 2000방콕&푸켓7

by 장돌뱅이. 2017. 8. 27.

38. 피피섬
눈을 뜨니 피피섬이 코 앞에 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버스로 선착장에 가서 배로 갈아타고 다시 두시간쯤 달린 것이다.
간밤에 마신 술 덕분에 그 모든 과정이 일순간에 지나간 것 같이 시간의 실제 길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돌아보니 아내도 딸아이도 잠이 한창이다. 파인애플 조각을 한 두개 먹고 커피 한잔을 마시니 정신이 좀 드는 것 같았다.
나는 기지개를 켜고 갑판으로 나가 피피돈 섬의 TONSAI BAY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았다.


섬에 내린 우리는 바로 피피 카바나 호텔로 향했다. 스노클링과 점심이 포함되어 있는 일정이었지만
롱비치를 뒤로 하고 비몽사몽의 우리 가족은 체크인을 서둘렀다. 우선 드러누워 쉬고 싶었다.
LODALAM BAY가 내려다 보이는 3층의 방은 아담하고 깨끗했다.
그러나 '피피섬에서 호텔의 질을 푸켓과 비교해서 기대해서는 안될 것 같다.'는 인터넷 동호회 회원의 의견은 옳았다.

피피 카바나는 같은 가격대의 푸켓의 호텔에 비해서 제반 시설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여름철이면 우리나라 해변가의 민박집 가격이 도심의 일류 호텔 가격에 근접할 정도로 치솟는 것과 같은 이치로 보면 된다.
장소와 환경이 틀려지면 적용 기준이 틀려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결국 여행은 수많은 조건 중에서 자신에게 알맞은 어떤 것을 부단히 선택하는 과정인 것이다.

방 배정을 받고 나서 커튼을 열고 LODALAM BAY를 내려다보자 방에서 쉬고 싶다는 생각은 씻은 듯이 사라져버렸다.
조금 피곤하긴 하지만 방에 틀어박혀 낮잠을 자러 피피섬에 온 것은 아니지 않는가.

우리는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수영장으로 나갔다.

피피카바나의 수영장에 대해선 한마디 하고 넘어가야겠다.
'피피돈섬의 부두가 있는 톤싸이 베이에서 가까운 숙소 중에는 유일하게 수영장을 갖고 있는 곳이' 피피 카바나이다.
기왕에 타 숙소에 비해 수영장을 장점으로 내세우려면 좀 더 관리에도 신경을 써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한마디로 수영장의 물이 너무 탁해 꼭 우유 속에서 수영을 하는 것 같았다.
일미터 앞을 볼 수 없이 희뿌연 수영장 물은 아무리 물이 귀한 피피라 하더라도 불만일 수 밖에 없었다.

더구나 성수기엔 가격도 인상되어 있으니 그 가격에 부응하는 시설을 제공하면 좋겠다.
우리 가족은 피피 카바나의 수영장을 푸켓판타씨의 시간배치와 더불어 이번 여행의 가장 유감스런 점으로 꼽았다.


그러나 수영장에 대한 실망은 LODALAM BAY의 바다를 보는 기쁨에 비하면 작은 것이 될 수 밖에 없다.
TONSAI BAY와 더불어 섬의 잘록한 허리를 만들며 피피돈을 빼어난 미인으로 만드는 LODALAM은
바다에서 들어오는 입구보다 안쪽이 넓은 안온한 분위기를 지닌 해변이다.

다른 계절에는 잘 모르겠지만 12월과 1월에는 낮동안 물이 멀리까지 빠져나가는 썰물 시간이어서
수영에 적합한 수심에 도달하려면 한참을 걸어나가야 했다. 오후4시 이후가 되어야 만조가 되는 것 같았다.

그 때까지는 패러슈트나 바나나보트등 바다에서 즐길 수 있는 놀이도 할 수 없지만 해변에 드러누워 바다를
바라보기에는 이 때가 그만이었다. 양팔로 감싸 안 듯 좌우에서 동그랗게 뻗어나간 초록의 산자락에 담긴
피피의 투명한 바닷물은 흰모래와 어울려 환상적인 푸른 빛을 만들어내며 로달럼 베이를 신비로운 낙원으로 만들었다.


수영을 마친 우리는 해변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전망대로 올라갔다.
로달람 베이와 톤사이 베이의 잘룩한 모습과 초록색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후텁지근한 날씨에 긴 계단을 오르느라 '육수' 좀 흘려야했지만 내려다보이는 섬의 풍경에 흘린 땀이 아깝지 않았다.
섬에 그림자를 드리운 짙은 구름장이 없었다면 훨씬 더 빼어난 피피섬의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저녁 무렵엔 구름이 온하늘을 덮으면서 빗방울이 긋기 시작했다.
원래 바이킹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졍글바에서 밤하늘의 별을 보며 한잔하려던 계획이었으나 접어야했다.
날씨도 날씨지만 아내와 딸아이가 호텔로 돌아오자마자 잠자리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제 저녁에 무리를 한데다 낮동안 수영과 전망대까지 올랐으니 피곤한 것도 당연했다.
아내와 딸아이의 잠은 아침까지 이어질 기세였다.
나는 식구들을 깨우고 우리가 여행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룸서비스를 통해 식사를 주문하였다.

식사를 하자마자 아내와 딸아이는 또다시 잠자리에 들고 별안간 할 일이 없어진 나는
혼자서 가늘어진 빗줄기 사이를 걸어 바람난 사내처럼 피피의 밤거리를 쏘다녔다.
내일 아침에는 날씨가 맑아지기를 마음 속으로 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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