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비 브라이언트의 "유니폼 등번호 영구결번 행사"(사진 출처 LA TIMES)
8년 가까운 미국 생활을 하는 동안 아내와 이런저런 스포츠 관람을 즐겼다.
1. MLS (Major League Soccer)
축구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지만 미국에서 보기는 힘들었다.
94년 월드컵 대회가 미국에서 열리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국민은 미국인 뿐이라는 말도 있었잖은가.
게다가 내가 살던 샌디에고에는 MLS의 지역 연고 팀이 없었다. 여행 중에 관람 기회를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축구의 경기 특성상 야구처럼 매일 열리지 않기 때문에 쉽지 않았다.
또 미국의 MLS가 프리미어리그나 라리가처럼 쟁쟁한 선수들이 뛰는 최고의 리그도 아니고
우리나라 선수가 뛰고 있지도 않아서 악착같이 가서 보고 싶은 마음이 일지 않은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이영표선수가 있었지만 캐나다쪽 팀 소속이라 일정을 맞추기가 더욱 어려웠다.
해서 미국에서 축구경기를 직접 본 것은 두 번뿐이다. LA갤럭시 홈구장에서 있었던 맨체스터시티의
방문 경기와 샌디에고의 퀄컴 Qualcomm 구장에서 본 멕시코와 아르헨티나의 친선경기였다.
친선 경기라지만 멕시코 팬들이 경기 내내 보여준 상상초월의 열광적인 응원이 인상적이었다.
마치 멕시코의 홈구장인 듯한 분위기 속에서 과시라도 하듯 뛰어난 기량을 보여준 아르헨티나의
LIONEL MESSI도 기억에 남아있다.
2. MLB (Major League Baseball)
미국에 사는 동안 서부, 중부, 동부에 걸쳐 도합 10곳의 MLB구장을 방문했다.
(내가 살던 샌디에고의 펫코파크, LA엔젤스 스타디움, LA다져스 스타디움, 시애틀의 SAFECO FIELD,
콜로라도의 COORS FIELD, 마이애미의 MARLINS PARK, 시카고 커브스의 WRIGLEY FIELD,
보스턴의 FENWAY APRK, 뉴욕의 YANKEE STADIUM, 워싱턴의 NATIONALS PARK.)
류현진 경기가 있는 날이면 내가 살던 샌디에고에서 LA DODGERS의 경기장까지
왕복 대략 5∼6시간의 운전을 즐겁게 했다.
추신수의 경기도 몇 차례인가 보러 갔고 샌디에고 파드레즈 소속이었던 백차승의 경기도 보았다.
백선수의 경기는 가까운 곳이라 자주 가보고 싶었으나 단 한번의 등판 이후로 그의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샌디에고 파드레즈가 콜로라도와 벌인 2008년(?)의 경기도 기억에 남는다.
미국 야구는 무승부가 없기 때문에 두 팀은 6시간이 넘는 혈투를 벌인 끝에 22회에 가서야 결말이 났다.
그날 퇴근을 해서 연장전에 돌입하길래 승부가 나면 피트니스에 가려고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중계를
보았다. 그런데 눈치 없는(?) 선수들이 자꾸 헛스윙을 하거나 호수비를 하는 통에 시간이 늘어졌다.
깜박 잠이 들었가 뭔가 시끄러워서 눈을 떠보니 시계는 새벽 2시에 가까웠고 홈팀인 파드레즈는 패배해 있었다.
콜로라도 팀은 그날 중부로 이동해 경기를 해야 한다고 했다.
양팀은 이 날 다음 경기의 선발 투수를 미리 당겨서 써버리기까지 했다. 그때까지 남아 있는 관중들도 대단해 보였다.
6시간이 넘게 걸린 이 날의 경기가 MLB의 최장 시간 경기 TOP10에도 들지 못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인간이 야구에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이 100년이 넘는 MLB의 역사에서는 실제로 일어났다는 말이
사실인 것 같았다.
MLB의 경기는 아니었지만 LA엔젤스 경기장과 샌디에고 펫코파크에서 WBC 경기를 보며 응원의
목소리를 높인 적도 있다.
3. NFL (National Football League)
미식축구를 하는 NFL에는 32개 팀이 팀당 16경기를 치른다.
9월부터 시작해 다음해 2월 첫째 주 일요일에 열리는 슈퍼보울로 마감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슈퍼보울의 중계시 텔레비젼 초당 광고료는 세계최고라고 한다.
미식축구가 오직 미국에서만 인기가 높으면서도 그걸로 충분한(?) 이유가 되겠다.
샌디에고에는 "차져스 CHARGERS"라는 팀이 있다.
차져스의 경기가 있는 날은 특별히 염두에 두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된다.
경기 며칠 전부터 차져스 깃발을 달고 다니는 차량과 차져스의 '유니폼'(미국 흔히 JERSEY라고 한다)을
입은 행인들이 급증하기 때문이다. 은행 직원들이 모두 차저스 유니폼을 입고 앉아 있을 때도 있다.
MLB의 결승전인 월드시리즈의 시청율이 미식축구의 시청율보다 뒤질 정도로 미식축구는 인기가 높다.
어떤 이들은 미국을 상징하는 전통적인 장면으로 텔레비젼에서 자주 보여지는, 아빠와 어린 아들이
야구공으로 캣치볼을 하는 모습은 이제 미식축구공을 던지고 받는 모습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NFL경기를 한번도 이른바 '직관'을 하지 못한 것은 아내와 내게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관람료가 좀 비싸고 표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하지만 방법이 없었던 것은 아닌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게획만 세우다 못 가보고 말았다.
그래도 텔레비젼 중계는, 특히 슈퍼보울은 거의 빼놓지 않고 시청했다.
"애니기븐썬데이"라는 알파치노 주연의 영화를 미식축구 관련 영화라는 이유만으로 보기도 했다.
문제는 미식축구 룰에 대한 이해였다.
주위사람들에게 묻거나 인터넷에서 규정을 프린트 해놓고 아내와 함께 공부를 해야 했다.
룰에 대한 이해는 어느 정도 했지만 작전에 대한 이해와 해석의 수준에는 결국 이르지 못 했다.
미식 축구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스포츠 중에서 가장 다양한 작전을 지닌 스포츠라고 한다.
거친 태클과 돌파의 단순함의 이면에 고도의 치밀한 계산이 있는데 그걸 읽고 논할 수 있는 수준은
못된다는 말이다.
4. NBA (National Basketball Association)
어릴 적 남자 농구의 신동파 유희영, 여자 농구의 박신자와 김추자, 좀 자라선 나와 같거나
비슷한 연배의 박수교, 신선우, 이충희, 김현준 등, 그 뒤로 '허동택'(허재, 강동희, 김유택) 세대,
그보다 뒷세대로는 이상민, 문경은, 현주업, 김병철 등을 기억하는 걸 보면 농구에 무심했던 건 아닌데,
이제까지 한국에서 농구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특히 '농구대잔치' 이후 프로농구가 생긴 뒤로는 왜 그런지 테레비젼으로도 농구 경기를 보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미국에서 LA레이커스 경기를 보기 위해 스테이플스센터를 간 적이 있다.
NBA의 힘과 높이, 탄력과 기술이 잠자고 있던 옛 관심을 깨운 탓이다.
야구가 끝나는 10월부터 시작하여 이듬해 봄까지 이어지는 NBA 농구 경기는 짜릿함 그 자체였다.
박빙의 차이로 승부를 결정 짓는 많은 경기들이 '각본 없는 드라마'라는 상투적인 표현을 실감나게 만들어 주었다.
4쿼터 마지막 5분은 종종 30분이 넘게 걸린다. 리드하고 있는 팀은 스토어링 플레이를 하며 결정적 추가 한 방을
노리고, 한두 점 뒤지고 있는 팀의 작전상 파울과 작전 타임의 반복을 반복하며 기회를 엿보기 때문이다.
엎치락뒤치락 끝에 이윽고 경기가 끝나는 버저가 울림과 동시에 링을 향해 날아가는 공
- 짧은 순간 심장도 함께 날아가는 듯한 이른바 버저 비터 BUZZER BEATER!
특별한 응원팀이 없어도 NBA는 그렇게 아내와 나를 빠져들게 했다.
우리는 곧 LA레이커즈의 팬이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LA레이커즈의 선수 코비 브라이언트 KOBE BRYANT의 팬이 되었다.
그는 우리가 미국에서 살던 2009년과 2010년의 참피언결정전에서 최고의 수훈을 세웠다.
함께 뛰었던 스페인 출신의 가솔(PAU GASOL)과 피셔(DEREK FISHER), 오덤(LAMAR ODOM) 등도 생각난다.
대학교수 같은 풍모의 감독 필잭슨(PHIL JACKSON)도 기억에 남는다.
내 블로그에 당시의 글이 몇 개가 남아 있다.
- http://jangdolbange.tistory.com/723
- http://jangdolbange.tistory.com/780
LA레이커즈는 잭슨 감독 지도 아래 코비, 샤킬오닐 SHAQUILLE O'NEAL 등과 더불어
2000, 2001, 2002년에도 우승을 했다. 코비의 등번호는 그때 8번이었다고 한다.
아내와 내가 응원을 할 때는 24번이었다.
한국시간으로 12월19일 LA의 스테이플스센터에서는 코비 브라이언트의 "유니폼 등번호 영구결번 행사"가
(JERSEY RETIREMENT CEREMONY) 있었다. 작년에 공식 경기에서 은퇴하였을 때 코비는 여러 기록으로
이미 전설이 되었지만 이번 8번과 24번 2개의 등번호 영구 결번은 그가 전설임을 또 한번 각인 시켜준 행사였다.
5. "Out of Sight, Out of Mind"
미국에서 돌아온지 3년이 지났다. 산다는 게 그렇듯 한국에서 또 중요한 여러가지 일이 있었다.
딸아이는 결혼을 하고 손자 친구가 생기고 나는 백수가 되었다.
"Out of Sight, Out of Mind"라고 했던가.
미국 생활에 대한 기억과 감정이 희미해져 간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NBA를 생중계로 즐길 수 있지만 옛날만큼 자주 보게 되지 않는다.
클리블랜드에서 뛰는 르브론 제임스 Lebron James 정도만 간간히 스포츠 뉴스를 통해 소식을 들을 뿐이다.
코비도 완전히 떠난 자리 르브론 제임스는 그 이상의 전설을 만들고 있다지만 정서적인 몰입이 생겨나지는 않는다.
야구도 MLB보다는 KBO리그에 더 관심이 있어졌다.
미국에 있는 동안은 사실 한국 프로야구에 대한 관심이 그다지 크지 않았다.
올 KIA의 우승은 메이저리그 어느 팀의 우승보다 흥미진진한 일이었다.
미국에서 푸대접인(?) Soccer도 늘 생활 속에 접하며 지낸다.
내년 월드컵 본선도 흥미진진하고 손흥민의 활약도 실감나게 느껴진다.
'In of Sight, In of Mind'도 성립되는 말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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