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에 관심이 생겨 부엌을 들락거리기 시작한 지 6년이 되어간다.
본격적으로 하루 세 끼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딸아이가 시집을 간 뒤부터이니 3년이 좀 넘었다.
처음엔 재미로 시작한 이 일이 시간이 지나다 보니 시나브로 타성에 젖게 되고 나의 주특기인 게으름이 더해지면서 변화 없는 몇 가지의 식단을 주기적으로 반복하게 되었다. 아내는 그런 나의 무성의를 알면서도 따뜻한 말과 함께 늘 즐겁게 식탁에 앉아주었다.
"당신이 은퇴한 것이 아니라 내가 은퇴한 거 같은데 뭘. 고마워."
이청준의 소설 「눈길」에 나오는 어머니는 객지에서 몰락한 고향집을 찾아온 어린 아들에게 마지막으로 하룻밤의 따뜻한 잠자리와 밥 한 그릇을 마련해 준다.
소설 속에서 만난 가장 따뜻한 밥이고 내가 생각하는 '따뜻한 밥'의 원형에 가장 가깝다.
"팔린 집이나마 거기서 하룻밤 저 아그를 재워 보내고 싶어 싫은 골목 드나들며 마당도 쓸며 걸레질도 훔치며 기다려 온 에미였는데, 더운밥 해 먹이고 하룻밤을 재우고 나니 그만만 해도 한 소원은 우선 풀린 것 같더라."
우리가 '따뜻한 밥 한 끼'라고 할 때 그것은 허기를 채우는 한 그릇의 밥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의사 소통을 위한 단순 단어 이상의 의미가 될 수 있듯이.
투박한 밥상이라도 우선은 그 따뜻함으로 채워야겠지만 이젠 부엌에 선 시간도 제법 되었으니 내년엔 좀 더 다른 상차림으로 아내와 마주해야겠다. 손자저하를 위한 메뉴도 공부하면서.
↓2017년 올해 아내와 나눈 집밥 사진 몇 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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