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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발밤발밤29 - 양양성당과 진전사터 그리고 바다

by 장돌뱅이. 2018. 3. 18.

새로 난 고속도로 덕분에 서울-양양이 두 시간 남짓이니 충분했다.
첫 기착지인 양양성당은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있었다.
양양성당은 이제껏 다닌 성당 중에 가장 정갈한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지저분한 성당이 있을 리 없겠지만
특히 성경 책이 가지런이 줄 지어 놓여 있는
양양성당의 내부는 유난히 청정한 느낌이어서 숨쉬기도 편안한 것 같았다.

 

당 옆에  "전대사 성당"이라고 새겨진 비석이 있었다.
"전대사"가 뭐지?
아내와 얼굴을 마주보다 검색을 해 보았다.
전대사는 "죄과에 대한 벌- 잠벌(暫罰)까지를 모두 면제받는 것"이라고 한다.
다시 '잠벌'을 찾아보니 "이 세상이나 연옥에서 잠시 받는 벌"이라고 한다.
전대사란 죄에 대한 신의 용서라는 의미인가보다,
고해성사나 속죄 기도만으론 안 된다는 뜻인가?

전대사 성당과 아닌 성당은 어떻게 구분되는 것인가?
모르겠다. '무늬만 신자'인 나의 한계다.


천주교인에게 죄란 결국 "나를 따르라"는 예수의 부름에 따르지 않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믿음은 신과의 인격적 결합이며 신의 명령에 따라 사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알고 있듯 예수 가르침의 핵심은 이웃에 대한 실천적 사랑이다.
그 '이웃'의 의미는 '나에 대한 이웃의 요구'로 치환될 수 있을 것이다.
 
용서에 대해 생각하면 "저 같은 죄인도 하느님이 다 용서해주셨다"는 살인자의 편안한 얼굴 앞에서 
절망스럽게 일그러지던 
영화 『밀양』 속의 신애(전도연)의 얼굴이 떠오른다.
죄의 용서가 자기 변명을 위한 포장이거나 관념 속에서 이루어지는 신의 값싼
은혜일 수 없다.
신의 진리는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관계하는 진리 아닌가?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 마태오 복음서 5장23절 - 24절 -
                       








오래 전 울산의 단골횟집에서 매일 잡던 참가재미 그물에 난데없는 대구가 잔뜩 들었다고 배가 들어오자 마자
대구 한 마리를 세심히 손질하여 싸주었다. 어떻게 조리해 먹는지도 모른다고 손사래를 쳤더니 주인은 그냥
맹물에
무와 배추, 대파 등속을 넣고 푹 삶아서 간만 맞추면 된다고 했다.
서울로 가져와 그대로 끓였더니 인생 최고의 대구 맑은 탕이 되었다. 
역시 맛난 음식의 기본은 솜씨 이전에 신선한 재료였다.  

"속초생대구"에서 먹은 대구탕이 솔직히 그 정도는 아니었다.
물론 기억 속의 맛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종종 실제 보다 과장되어 남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속초생대구"도 그 기억 속의 맛에 거의 견줄 만했다.




속초에서 7번 국도를 따라 다시 양양 쪽으로 내려오다 325번 군도로로 바꿔타고 제법 한참을 들어가면
강현면 둔전리에 진전사터가 있다. 찾는 이가 별로 없이 늘 덤덤하고 고즈넉한 곳이다.
바람소리와 계곡의 물소리도 한가롭게 들린다. 이럴 땐 눈길을 휘어잡는 볼거리가 없다는 것이 장점이 된다.
강원도 산골로는 뜻밖에 널찍한 밭 가운데
탑이 한 기가 서 있을 뿐이다. 통일신라 시대의 기본적인 형태인
삼층 석탑인데 특이하게 검은 빛을 띠고 있고 
기단과 1층 몸돌에 여러 형태의 조각이 돋을새김 되어 있다.
(이번엔 탑 주변이 발굴조사로 파헤쳐져 있어 분위기가 조금 산만했다.)

진전사는 831년 도의선사가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창건하였다.
도의선사는 교종불교가 대세였던 신라에 선종을 소개한 인물이다.
교종은 경전을 중시하는데 비해 선종은 자신의 마음을 아는 것을 중요시 했다.
경전을 읽고 염불을 외우는 것보다는(不立文字) 본연의 품성을 보고 부처가 된다고(見性成佛) 했다.
중생 누구나 부처라는 평등 사상은 당시 신라 왕권 불교에 대한 위험한 도전으로 기존 세력들에게 받아졌다.
'마귀의 소리'라고 배척 받은 도의선사가 이 강원도의 깊은 산골로 은신한 것이다.

사회 진보의 지평을 넓힐 새로운 인물이나 사상에 대한 기득권의  '텃세'나 '몽니'는 인간 역사의 도처에
흔하고 현실도 그렇다. 예수도 그런 세력들에 몰려 결국 죽임까지 당하지 않았던가.
진전사가 언제 무엇 때문에 폐사가 되었는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조선시대의 폐불정책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고 한다. 





바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그냥 좋은 곳.
비유나 상징을 붙여보기엔 내 능력으론 너무 큰 곳. 
내겐 바다가 그렇다. 또 육십 넘게 살아온 세상도 그렇다.


 바다에 와서 바다를 읽어봤다, 바다의, 망망함을 물빛을 물비늘을 깊이를 수평선을
파도를 해일을·····, 물의 변신 물의 언어를, 물에 쓰이는 상형문자를, 해독할 수 없는
태초의 말씀을, 방대한 바이블을

 태초의 언어로 된 태초의 경전
 창조신의 말씀책을
 알아 못 듣는 목소리로 갈매기가 읽고 가도
 알아 못 듣는 목청으로 바람이 읽고 가도
 나의 문맹(문맹)은
 어느 구절에다 붉은 줄을 그어야 할지
 어느 페이지를 접어두고
 어느 대목을 괄호쳐둘지 몰라

 바다에 와서 바다는 못 읽어도, 내가 알아낸 건, 바다야말로 하늘이라고, 하늘이기 때문에
읽어내지 못한다고, 밤이 되자 바다는 달과 별무리 찬란한 하늘이었으니, 아무리 올라가도
하늘밑일 뿐이던 그 높이가, 눈 아래 두 발 아래 내려와 펼쳤다니, 가장 낮은 데가 가장 높은
곳이라는, 어렴풋한 짐작 하나 겨우 얻은 것 같다.
                                                - 유안진의 시, 「바다에서 바다를 못 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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