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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돌아온 H.O.T(에쵸티)

by 장돌뱅이. 2018. 3. 6.


↑2018년 텔레비젼 방송 촬영

↑2001년 2월 잠실운동장 공연


'에쵸티'의 열성팬이었던 딸아이 덕분에(?) 전성기 시절의 H.O.T(에쵸티) 콘서트를 두 번 볼 수 있었다.
첫 번째는 부산 사직체육관에서 두 번째는 잠실운동장에서.

특히 진눈깨비가 내리던 날 밤의 잠실운동장 공연은 어른인 나로서도 기억에 남는다.
그날 잠실운동장은 H.O.T 팬들이 입은 하얀 비옷과 손에 든 하얀 풍선으로 거대한 하얀 색 바다였다.
비와 눈이 섞여내리는 악천후 속에서도 뒷좌석의 사람을 위해 우산도 쓰지 않고 한 치의 흔들림이 없이
자리를 지키던 어린
에쵸티 팬들의 모습은 자못 감동적이었다.
운동장 입구에 걸려있던 현수막의 글귀도 인상적이었다.
"H.O.T가 밥 먹여 준다!"


우리 가족은 그때 울산에 살고 있었다.
딸아이는 같이 비행기를 타고 가자는 나의 제안을 단번에 거절하고 팬클럽에서 마련한 버스를 타고 갔다.
서울까지 5-6시간 걸리는 버스 안에서의 팬들만의 축제 분위기를 오롯이 즐기겠다는 의도였다.
회사 일을 끝내자마자 나는 급하게 항공편으로 서울에 갔다.
공연이 끝난 뒤 딸아이를 서울의 외가집으로 데려가기 위해서였다.

잠실운동장에서는 딸아이의 거리낌 없는 '신명 발산'을 위해 서로 보이지 않을 만큼의 먼 거리를 두었다.
어린 팬들 사이에 앉아 있기도 겸연쩍은 노릇이어서 나는 출입구 옆에 서있었다.
가끔씩 아이들이 다가와 물었다.
"아저씨 장실이 어디에요? "
나를 공연장의 안전(안내) 요원쯤으로 생각하는 듯 했다. 
뒤이어 물어오는 아이들에게 봉사나 하자는 심정으로 가까운 화장실 두세 곳의 위치를 직접 체크해 두었다.

공연 전 '이 공연을 마지막으로 H.O.T가 해체된다'는 소문이 있다고 딸아이는 걱정을 했다.
"이런저런 소문이 있는데 저희는 아무 말 안 했습니다."
공연 끝 무렵 문희준의 발언에 어린 팬들의 환호성이 하늘을 찔렀다.
'헛소문입니다. 저희는 절대 해체하지 않습니다'라는 명확하고 단호한 말이 아니어서 아쉬웠다.

결국 H.O.T는 해체를 했고 토니·우혁·제원은 JTL이라는 이름으로 별도의 음반까지 냈다.
한동안 "H.O.T FOREVER!"라며 발을 동동 구르던 딸아이는 대학을 입학하면서 그런 감정이
점차 희미해져 가는 듯 했다.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면서는 가끔씩 그 시절을 겸연쩍은(혹은 어른스런)
표정으로 회상해 볼 뿐이었다.

"그땐 뭐 그랬지. 큭큭."
 

이번 설날 전에 17년만에 H.O.T의 공연이 있었다.
딸아이는 에쵸티의 옛 기억을 공유한 친구와 공연장 참석을 논의했지만 

모두 결혼한 주부로서  명절 전날의 '시월드'란 현실의 벽을 넘을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일주일 뒤엔가 텔레비젼에서 녹화 편집된 공연 실황을 보여주었다.

아내와 나는 "우리가 이걸 왜 보고 있지?" 하면서도 끝까지 보게  되었다.
나는 17년 전의 잠실 공연 현장에서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몰입해서 방송을 보았다.
아내는 뭔가 모르게 가슴이 찡하다고 했다. 텔레비젼 화면을 찍어 카톡을 보내자
딸아이는 이미
눈물을 흘리며 보고 있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흐른다면서.

돌아온 에쵸티가 잠시나마 되돌려준 오래 전의 메마르고 퇴색한 그 시절의 기억엔 어느 새 
우리 모두가 예상치 않았던 아련함이나 애틋함 같은 새로운 감성이 덧칠해져 있었다.
아내와 나에겐 에초티보다 에초티를 통해 그 시절 딸아이의 모습이 더 크게 다가왔지만.

추억은 미래보다 새롭다. 미래는 현실 속의 나에겐 아직 고정화된 관념이고 어느 정도 읽혀진 정보
그 자체이다.
그러나 추억의 이미지란 고정된 풍경이 아니라, 그것을 담는 자의 마음의 모양에 따라
수시로 변화되는 액체성의 풍경이다.
그리고 현재를 다양한 모습으로 비춰볼 수 있는 살아 있는 거울이다.
그 살아 있는 거울에 의해 현실은 늘 새롭게 반추된다.
그러니까 추억한다는 건 마음에 새겨진 삶의 무늬를
어루만지는 일이기도 하지만, 현재를 흘러가는 자신의 마음을 계속해서
새롭게 읽어내는 일이기도 하다.
                                                                                                  - 유하의 글 중에서-


(관련 글 : http://jangdolbange.tistory.com/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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