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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I CAN'T BREATHE!"

by 장돌뱅이. 2020. 6. 6.

*사진 출처 : ABC NEWS

"I CAN'T BREATHE!"
찰의 무릎 아래 깔린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남긴 마지막 말이다.
한 개인의 절규를 넘어 차별적 구조와 문화에 내몰린 흑인 전체의 아픈 신음으로 느껴진다.
더불어 백주의 대로변에서 자행되는 공권력이라는 이름의 당당하고 거침없는 폭력이 섬뜩하다.
그 비극의 여파로 미국 전역이 사회 개혁과 정의를 외치는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보다 완벽한 연합을 형성하고, 정의를 확립하고, 국내의 평안을 보장하고, 공동방위를 도모하고, 국민복지를 증진하고 그리고 후손들에게 자유의 축복을 확보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는 미국의 헌법에 흑인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했을 리 없으니 법과 제도 자체가 아니라 그것의 운영과 해석, 관행과 당연에 대한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겠다.눈에 보이는 불법보다 합법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불법스러움'은 인지하기도 바뀌기도 더 힘든 법이다.

미국의 사태를 보면서 다문화 다인종 사회에 진입한 우리 사회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백인의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을 비판하면서 우리는 검은 피부의 사람들을 '깜둥이'로 비하하고 있지는 않는지. 재일동포가 받는 차별에는 분노하면서 우리 사회에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부당한 대우는 당연시하고 있지는 않는지.

내 기억에 딱 한 번 흑인이 한국의 온갖 매체에서 우상으로 조명을 받던 때가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한국인 어머니와 흑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하인즈 워드라는 스포츠 스타였다. 그는 피츠버그 스틸러스라는 팀에서 뛰던 미식 축구선수로 2006년 슈퍼보울 경기에서 MVP 상을 받았다. 2012년 은퇴를 하였고 그의 등번호 86번는 피츠버그 스틸러스에서 영구 결번 되었다. 미국에서 미식축구의 인기는 메이저리그 야구를 능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승전인 슈퍼보울의 입장료와 광고료는 상상을 초월한다. 슈퍼보울 경기가 열리는 시간엔 많은 가게들이 아예 문을 닫을 정도이다.

한국의 언론은 스포츠 스타로 성공한 그를 띄우기 시작했다.
하인즈워드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교육 방식도 남달랐다는 찬사까지 이어졌다. 어느 기사에서건 하인즈워드가 '특별히 자랑스럽게도' 한국계라는 사실이 빼먹지 않고 강조되었다. 산전수전을 겪으면서 이국 땅에서 살아온 여성답게 하인즈워드의 어머니는 현명했다. 한 언론 인터뷰에서 그녀는 다소 냉소적인 표현으로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한국 사람 안 쳐다보고, 생각 안 하고 살아온 30년이었어. 내가 워드 데리고 한국 왔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그 놈 거지밖에 안 됐겠지? 여기선 누가 파출부라도 시켜줬을까?… 이제 와서 우리 워드가 유명해지니 관심을 참 많이 가져준다. 좀 그래. 부담스럽지 뭐. 세상 사는 게 다 그런거 아니겠어?"

태국인 친구에게 타이거우즈를 두고 태국에서도 골프 천재 이상의 다른 의미로 열광하는지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 하인즈워드처럼 우즈도 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기 때문이었다.
그의 대답은, 아니 물음은 간단했다.

"왜?"
"우즈의 어머니가 태국인이잖아······"
"???······ 그게 무슨 상관?······"
골프 경기 이외의 목적으로 우즈가 태국을 찾은 일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주노동자는 우리 사회의 '하인즈워드'이고 '조지 플로이드'이다.
시대착오적인 단일민족이란 관념으로 그들을 '숨 못 쉬게(CAN'T BREATHE)' 만드는 법과 제도, 관행과 당연은 없는지 돌아볼 일이다. '일꾼의 품삯에 대하여 억울하게 하고 나그네를 억압하는 자들'은 하느님도 심판하신다고 성경에 나와있지 않던가.(말라기 3장5절) 이미 오래 전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CERD)는 “한국이 단일민족을 강조하는 것은 한국 땅에 사는 다양한 인종들 간의 이해와 관용, 우호 증진에 장애가 될 수 있음”을 우려했고, ‘순혈’과 ‘혼혈’ 같은 용어도 인종적 우월주의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우리 아니면 그들'로 가르는 대신에 '더불어와 함께'를 받아들일 때 우리 모두는 비로소 '편안한 숨'을 쉴 수 있을 것이다.

1970년대의 시 한 편을 읽어본다.
반세기 전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고 할 수 있을까?
과거는 때때로 현재이자 미래가 된다.

내가 국어를 가르쳤던 그 아이 혼혈아인
엄마를 닮아 얼굴만 희었던
그 아이는 지금 대전 어디서
다방 레지를 하고 있는지 몰라 연애를 하고
퇴학을 맞아 고아원을 뛰쳐 나가더니
지금도 기억할까 그 때 교내 웅변 대회에서
우리 모두를 함께 울게 하던 그 한마디 말
하늘 아래 나를 버린 엄마보다는
나는 돈 많은 나라 아메리카로 가야 된대요

일곱 살 때 원장의 姓을 받아 비로소 李가든가 金가든가
朴가면 어떻고 브라운이면 또 어떻고 그 말이
아직도 늦은 밤 내 귀가 길을 때린다
기교도 없이 새소리도 없이 가라고
내 詩를 때린다 우리 모두 태어나 욕된 세상을

이 强辯의 세상 헛된 강변만이
오로지 진실이고 너의 진실은
우리들이 매길 수도 없는 어느 채점표 밖에서
얼마만큼의 거짓으로나 매겨지는지
몸을 던져 세상 끝끝까지 웅크리고 가며
외롭기야 우리 모두 마찬가지고
그래서 더욱 괴로운 너의 모습 너의 말

그래 너는 아메리카로 갔어야 했다
국어로는 아름다운 나라 미국 네 모습이 주눅들 리 없는 合衆國이고
우리들은 제 상처에도 아플 줄 모르는 단일 민족
이 피가름 억센 단군의 한 핏줄 바보같이
가시같이 어째서 너는 남아 우리들의 상처를
함부로 쑤시느냐 몸을 팔면서
침을 뱉느냐 더러운 그리움으로
배고픔 많다던 동두천 그런 둘레나 아직도 맴도느냐
혼혈아야 내가 국어를 가르쳤던 아이야

-김명인, 「동두천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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