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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비가 그치다

by 장돌뱅이. 2020. 5. 27.


차츰 서쪽 하늘 환해지더니 
뭇 새들 하늘에 날아오르네.
젖은 구름 아직도 안개를 내리고 
나뭇잎은 우수수 소리를 내네. 
기운 국화 이제야 바로 서려 하고 
비 맞은 석류 윤기가 반(半)은 덜하네. 
어느 새 석양이 뉘엿뉘엿 지고 
먼 길에선 장사꾼 외치는 소리
(漸漸西天豁 飛飛衆鳥生 濕雲猶細霧 風葉忽群鈴 
讹菊初思整 洗榴半減明 於焉已
夕日 遠道商人聲)

- 유금,비가 그치다(雨歇)」-


어제 오후부터 듣기 시작한 비가 밤에도 가끔씩 뿌리더니 
날이 새자 씻은 듯이 물러가고 하늘이 온통 파랗다.
물오른 나무에 초록의 바람이 흔들리고 햇살이 부서진다.
나들이 하기 좋은 날이다.

아내는 혹시나 손자에게 코로나를 옮기지 않을까 하는 염려로 
외출과 사람 만나는 것을 최소한도로 줄이고 있다.
식품을 사기 위해 마트에 가고 나와 강변을 걷는 것이 외출의 전부이다.

먼 곳으로 떠나 낯선 바람을 쐬고 싶지만 갈 수 없는 상태.
옛날 사람들은 이런 것을  '육침(陸沈)'이라고 했다던가?
육침은 '물 없는 땅 위에 침몰한다' 즉, '땅에 있으면서 물 속에 잠겨 있는 것 같은 상태'를 의미한다.
서로를 위해서 견딜 수밖에 없지만 '자발적 격리'의 답답한 시간이 흐르고 있다.
사람과 사람이 대면하지 않아도 되는 첨단 디지털 시대의 도래가 희망이라기 보다는 암울하게 느껴진다.

문을 나서 멀리 가고자 하나 
멀리 어디를 간단 말인가 
배회하다 도로 문을 닫노라  
(出門欲遠行 遠行無所適 彷徨戶還扄)
-유금, 「가을밤(秋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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