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뒤 이틀 동안 안산자락길과 북한산 둘레길(도봉옛길과 방학동길)을 걸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산 정상을 향해 걷는 산행도 좋지만 산자락을 완만하게 휘감는 편안한 둘레길은
또 다른 즐거움과 매력이 있다.
오래간만에 걸어보는 숲길이었다. 게다가 날씨도 더 없이 좋았다. 맑은 공기는 먼곳까지 시야를 틔워주었다.
매 계절 이렇게 미세먼지 없는 날을 만들려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아래 인용한 시인의 글처럼 거창한 의미를 새기며 걸은 것은 아니지만
걷고 난 뒤에 읽어보는 '걷기 예찬'엔 고개가 끄덕여진다.
10월에 시간이 나서 걷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내서 걸어보기로 아내와 다짐을 해보았다.
걷기는 외부 동력을 이용하지 않는 여행이고, 존재의 약동이며, 존재의 광합성 운동이다.
걷는 동안 마음에 어지럽게 널려 있던 생각들이 정리되고, 잡다한 생각의 조각들은 융합되며 새로운 생각을 낳는다.
(중략) 걷기는 하늘과 태양과 바람을 가슴으로 품는 일이고, 빛으로 가득 찬 누리 속에서 자유와 고요함 속에서 몸을
끌고 나아가는 활동이다. 전진의 리듬에 존재를 내맡기는 이 무보상적 행위를 통해 얻는 것은 전적으로 무해한 기쁨이다.
날마다 하루의 일부를 쪼개 걷기에 나서는 것은 그것이 내면을 기쁨으로 채우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이 활기찬 활동은
귀한 시간을 쪼개서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걷기는 존재의 충만한 경험이고, 자기 성찰의 계기적 시간이며,
살아있는 기쁨을 오롯한 기쁨으로 만끽하는 기회인 까닭이다. 걷고 나면 무겁던 몸의 감각은 살아나고, 둔중하던
기분은 훨씬 가벼워지며, 마음은 환희로 가득 찬다.
-장석주의 글, 「걷기 예찬」 중에서-
1. 안산자락길
지하철3호선 4번 출구로 나오면 서대문 독립공원이 나온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끼고 언덕을 오르면
나무 데크로 된 안산자락길이 보인다. 자락길 총 길이는 7KM라고 한다.
사람들이 북적였지만 번잡스러움 보다는 추석 뒤의 연휴가 주는 여유로움이 크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식재한 꽃무릇이 길 주변 곳곳에 보였다. 언젠가 고창 선운사를 여행하면서 보았던 꽃무릇 군락을 보고
감탄했던 이래 처음 만나는 터라 뜻밖에 옛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메타세콰이어 숲 사이를 지날 때는 상쾌하기 그지없었다.
안산자락길 걷기를 마치고 출출한 배를 잡고 내려오다가 눈에 띈 영천시장 초입에서 떡복기와 순대를 먹었다.
허리가 굽은 할머니와 무뚝뚝한 할아버지가 운영을 하는 가게(식당?)였다.
텔레비젼에도 나왔다는 사진과 걸개가 붙어 있었다.
2. 북한산 둘레길과 김수영 문학관
안산자락길을 다녀온 뒷날 아내에게 또 걸을 수 있겠냐고 넌즈시 물었더니 뜻밖에 그러자고 나선다.
아내의 체력으로는 조금 무리가 아닐까 추측했는데 대견하다.
북한산 둘레길18구간(도봉옛길) 일부와 무수골을 지나는 19구간(방학동길)을 걸었다.
길의 오르내림이야 안산길보다 더했지만 크게 힘들지 않았고 무엇보다 부드러운 흙을 밟을 수 있어 좋았다.
방학동길의 끝, 세종대왕의 둘째 딸 정의공주 묘 근처에 김수영문학관이 있다.
작고 아담하지만 세련된 분위기의 문학관이었다.
그는 1968년 47세의 젋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작고 전 2, 3년 동안 치열한 창작 활동이 있어기에 안타까움이 더했다.
문학관 안에는 그의 육필 원고와 원고를 쓰던 탁자 등이 전시 되어 있었다.
그리고 아내와 내가 학창 시절부터 익숙한 그의 시와 산문 구절들이 벽에 붙어 있었다.
1970∼80년대에 대학을 나온 사람 치고 김수영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풀」, 「폭포」, 「거대한 뿌리」,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푸른 하늘을」, 「하······ 그림자가 없다」,
「우선은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 등등의 그의 시는 시대 상황과 맞물리면서 곳곳에서 애송되었다.
우리들은 언제나 싸우고 있다
아침에도 낮에도 밤에도 밥을 먹을 때에도
거리를 걸을 때도 환담을 할 때도
장사를 할 때도 토목공사를 할 때도
여행을 할 때도 울 때도 웃을 때도
풋나물을 먹을 때도
시장에 가서 비린 생선냄새를 맡을 때도
배가 부를 때도 목이 마를 때도
연애를 할 때도 졸음이 올 때도 꿈 속에서도
깨어나서도 또 깨어나서도 또 깨어나서도···
수업을 할 때도 퇴근시에도
사일렌소리에 시계를 맞출 때도 구두를 닦을 때도······
우리들의 싸움은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차 있다
민주주의 싸움이니까 싸우는 방법도 민주주의식으로 싸워야 한다
하늘에 그림자가 없듯이 민주주의의 싸움에도 그림자가 없다
-「하······ 그림자가 없다」 중에서 -
"민주주의 싸움이니까 싸우는 방법도 민주주의식으로 싸워야 한다"
재작년 겨울에서 작년 봄까지 이어졌던 촛불집회의 행동강령이자 목표이기도 했다.
그러나 솔직히 문학적 소양을 갖추지 못한 내게 몇몇 시를 뺀 김수영의 시 대부분은 난해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의 산문을 좀 더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산문을 읽을 때면 무엇인가 명쾌한 진실과 당당한 위엄을 보는 듯했고
그래서 늘 엄한 선생 앞에 서 있는 양 서늘했다.
사랑은 호흡입니다.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사랑이 순결하면 순결할수록 더 그렇습니다.
기도가 눈에 보이지 않듯이 사랑도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사랑을 갖지 않은 사람들의
자유가 사랑을 가진 사람들의 자유를 방종이라고 탓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에는 자유가 없습니다.
-산문 「요즈음 느끼는 일」 중에서-
모든 살아 있는 문화는 본질적으로 불온한 것이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문화의 본질이 꿈을 추구하는
것이고 불가능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산문 「실헙적인 문학과 정치적 자유」 중에서-
그리고 아내와 내가 "시"란 단어를 ‘마음대로 삶’ 혹은 ‘사랑’으로 치환해서 읽었기도 했던,
김수영의 시만큼 유명한 아래 글.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그림자를 의식하지 않는다.
그림자에조차도 의지하지 않는다. 시는 문화를 염두에 두지 않고, 인류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문화와 민족과 인류에 공헌하고 평화에 공한한다.
-산문 「시여 침을 뱉어라」 중에서
*위 사진 : 젊은 시절의 한 때가 담겨 있는 책꽂이 속 김수영의 책 몇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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