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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일본

오키나와2 - 태풍이 불어도

by 장돌뱅이. 2018. 11. 24.

항공과 숙소를 예약 확정하고 나서 느긋해진 마음으로 오키나와에서 할 일을 알아 보다가
'혹시 이 늦가을에 태풍이 지나가는 건 아니겠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왜 안 좋은 예감은 잘 들어맞는 것일까?
검색을 해보니 10월 하순임에도 제26호 태풍 위투가 이삼 일 전에 발생되어 북서진을 하고 있었다.
아직 태풍의 진로는 유동적이라고 했다. 필리핀 북부를 지날 것으로 예측되지만 그쪽에 발달된
고기압 세력을 뚫지 못하고 튕길 경우 한반도 쪽으로 향할 수도 있다고. 
일본 본토 보다도 훨씬 남쪽에 있는 오키나와는 태풍 영향권에 들 확률이 더 높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태풍 관련 뉴스에는 늘 '오키나와 동남쪽 해상 몇몇 km'라는 멘트가 따라붙지 않던가.

항공과 숙소의 변경은 고려할 수 없었다. 페널티가 겁나서가 아니라 가까스로 짬을 낸 여행이어서 일자 변경은
곧 여행 포기와 같은 의미였기 때문이다. 여차하면 숙소에서 태풍이 지나가는 것을 내다보며 지내자고,

그런 것도 특별한 여행 아니겠냐고 아내와 임전무퇴(?)의 결의를 다지며 짐을 꾸렸다. TV 드라마에서 보았던
맑고 푸른, 이른바 '오키나와 블루'라는 바닷물과의 만남은 아무래도 이번 여행에선 기대를 접어야 할 것 같았다.

섬으로 가는 배편이나 렌트카 사전 예약도 날씨를 가늠할 수 없다보니 오키나와 도착 후로 미루어야 했다.

결론적으로 여행 중 태풍은 오키나와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았다.
남쪽 멀리에서 서진을 하며 사이판을 휩쓸고 필리핀으로 향했다.
그래도 차 렌트와 배를 타고 가야하는 섬 일정은 포기를 해야 했다. 오락가락 하는 날씨 때문이었다.  
멀리 떨어졌다 해도 태풍의 영향을 받는 것인지 아니면  원래 오키나와의 날씨가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맑은 듯 하다가 비가 오고 바람도 불어서 종을 잡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뭐 여행에 돌발 변수야 늘 있는 법이니 거기에 맞춰 일정을 꾸려가는 것도 여행의 한 즐거움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어쨌거나 지난 몇 달 동안 지속되어온 유난스런 일들을 잠시 접어둔 채 오래간만에 멀리 떠나온 여행이었다.
게다가 여행 첫날은 결혼기념일이었다. 즐거워야 하는 건 당연이자 의무였다.

두 시간 반의 비행으로 오키나와의 나하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 뒷쪽 하늘로 노을이 번지는 저녁 무렵이었다.
나하공항역에서 모노레일을 타고 나하 시내 숙소로 가는 동안 어둠이 짙어졌다.

숙소에 짐을 풀고 나와 특별한 목적지 없이 국제거리(고쿠사이도리 り)를 돌아다니는 것으로 첫 일정을 시작했다. 
국제거리는 오고가는 행인들과 그들을 부르는 상점과 식당의 호객소리가 엉켜 나하시 최고의 번화가답게 북적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군의 폭격으로 잿더미가 되어버린 나하 시내에서 가장 먼저 복구된 길이라고 한다.
여행 첫날 낯선 곳에서는 만나는 어떤 예사로운 풍경도 특별하게 다가온다. 
떠나왔음을 실감하면서 새로운 시간을 시작한다는 설렘이 더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어디에서 저녁을 먹건 오키나와의 전통 음식인 우미부도(와 고야 찬푸르(ゴーヤちゃんぷる)를 먹을 작정이었다.
때마침 국제거리에 있는 식당 슈리텐로(首里天의 메뉴에 사진 함께 그 음식이 올려 있어 들어가기로 했다.

3층에서는 식사와 함께 오키나와 전통춤 공연도 볼 수 있다고 입구의 안내자가 알려주었다. 
별도의 입장료가 있다고 해서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더니
대뜸 가격을 절반으로 깎아주겠다고 한다.
국제거리가 관광객들의 거리임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겠다.
상대 반응에 에 따라 가격을 오르내리는 상술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배가 고파 또 다른 곳을 찾기도 뭐해서 고개를 끄덕이고 3층으로 향했다.

1층과 2층은 입장료가 없는 일반 식당이라고 한다.



3층은 다다미가 깔린 식당이 있고 홀 한 쪽에 작은 무대가 있는 형태였다.
전통 복장의 무희들이 한두 명씩 번갈아 나오며 짧은 춤을 보여주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춤사위여서 특별히 주목하며
오래 보지는 않았지만 가끔씩 건너다보는 것만으로 여행 첫날의 느긋한 분위기에 흡족하게 젖어들 수 있었다.




우미부도는 우리나라에서는 나지 않는 해초이다. 작고 길죽한 포도송이처럼 생겼다. 
입에 넣으니 작은
우미부도와 고야찬부르를 안주로 오키나와에서 생산하는 오리온ORION 맥주를 마셨다.
34번째 결혼기념일 - 아내와 함께 한 긴 시간이 녹아 흐르는 저녁이 아늑했다.
앞으로도 같이, 오래, 이렇게 다닐 수 있기를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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