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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친구와 나의 삼 년

by 장돌뱅이. 2019. 3. 2.






친구야,
이른 아침 전화를 받고 한달음에 달려갔을 때
너는 벌써 새로운 세상을 시작하는 첫울음을 던지고
신생아실 유리창 안쪽에서 차분하게 잠들어 있었지.

"안녕, 친구야!"
할머니와 나는 손을 흔들며 목소리를 낮춰 인사를 전했어.
그때 느껴지던 어떤 신비로움과 봄바람 같은 청량한 기운이 여전히 생생하다.

그동안 너는 울고 웃고 젖 먹고 트림하고 똥 싸고 잠 자고 다시 밥 먹고 간식 먹고
뒤집고 기고 한발짝 걷고 두 발짝 걷다간 달리고 구르고 미끄러지고 뛰어내리고
열나고 내리고 (기억하니? 할아버지 환갑을 너와 병원에서 보낸 걸^^) 아프고 낫고
허리를 꺽고 떼를 쓰기도 하
자랐고 쑥쑥 자랐고.

우리는 함께 노래 부르고 춤추고 (너의 격렬한 춤사위라니!) 기타 치고 실로폰 두드리고 
"호랑이와 곳감"과 "토기의 재판"과 "팥죽할머니"와 "콩쥐팥쥐" 를 읽고
뽀로로와 타요와 구급차 앨리스와 소방차 프랭크와 굴착기 포코와 견인차 토토를 사귀고

기차놀이와 낚시놀이와 수리수리마하수리 변신놀이와 마트놀이와 부엌놀이와 김밥놀이와
숨바꼭질을 하며
놀았
고 너도 나도 지치도록 놀았고 .

그렇게 너는 드디어 세 살을 지나 네 살의 '형아'가 되었구나.
그리고 우리는 자타가 공인하는 철친이 되었구나.
더할 나위 없는 이 흡족한 자부심이 너에게서 비롯된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겠다.

감사와 축하를 전한다.


란이와 나는
산에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이 좋았다
밤나무
소나무
참나무

느티나무
다문다문 선 사이사이로 바다는 하늘보다 푸르렀다

란이와 나는
작은 짐승처럼 앉아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이 좋았다
짐승같이 말없이 앉아서
바다같이 말없이 앉아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은 기쁜 일이었다

란이와 내가
푸른 바다를 향하고 구름이 자꾸만 놓아가는
붉은 산호와 흰 대리석의 층층계를 거닐며
물오리처럼 떠다니는 청자기빛 섬을 어루만질 때
떨리는 심장같이 자지러지게 흩날리는 느티나무 잎새가
란이의 머리칼에 매달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란이와 나는
역시 느티나무 아래서 말없이 앉아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순하디순한 작은 짐승이었다
                        - 신석정의 시, 「작은 짐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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