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무렵 아내와 집 근처 공원을 천천히 산책했다.
흰 벚꽃이 '튀밥'처럼 만개해 있었다.
어두워가는 저녁 어스름 속에서도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잠시 세상 그만두고' 그 '딴 세상' 속에 머물렀다.
펑! 튀밥 튀기듯 벚나무들,
공중 가득 흰 꽃팝 튀겨놓은 날
잠시 세상 그만두고
그 아래로 휴가갈 일이다
눈감으면;
꽃잎 대신
잉잉대는 벌들이 달린,
금방 날아갈 것 같은 소리―나무 한 그루
이 지상에 유감없이 출현한다
눈뜨면, 만발한 벚꽃 아래로
유모차를 몰고 들어오는 젊은 일가족;
흰 블라우스에 그 꽃그늘 받으며 지나갈 때
팝콘 같은, 이 세상 한때의 웃음
그들은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內藏寺 가는 벚꽃길; 어쩌다 한순간
나타나는, 딴 세상 보이는 날은
우리, 여기서 쬐끔만 더 머물다 가자
이어서 뒷날엔 북촌을 걸었다.
50+의 사진 강좌 수강생들과 함께였다.
날씨는 잔뜩 흐린 채로 비를 머금고 있었지만 시선을 두는 곳마다 봄은 흐드러져 있었다.
머물다 가라고 좀 더 머물다 가라고 옷깃을 잡는 몽환적인 풍경에 홀려 자꾸 일행을 놓치기도 했다.
'일상과 단상 > 내가 읽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가 읽은 쉬운 시 98 - 고정희의 「그대가 두 손으로 국수사발을 들어올릴 때」 (0) | 2019.04.13 |
---|---|
내가 읽은 쉬운 시 97 - 신해욱의「그때에도」 (0) | 2019.04.12 |
내가 읽은 쉬운 시 95 - 이상국의「국수가 먹고 싶다」 (3) | 2019.04.06 |
내가 읽은 쉬운 시 94 - 김승희의「향연, 잔치국수」중 (0) | 2019.03.31 |
내가 읽은 쉬운 시 93 - 신경림의「정릉동 동방주택에서 길음시장까지」 (0) | 2019.03.3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