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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내가 읽은 쉬운 시 98 - 고정희의 「그대가 두 손으로 국수사발을 들어올릴 때」

by 장돌뱅이. 2019. 4. 13.


*먹기에 바빠서 마구 흔들린 사진


어린 시절 비가 오는 여름 날이면 어머니는 종종 점심으로 수제비를 만드셨다.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사이로 언듯언듯 풍겨오던 육수의  끓는 냄새가 아늑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소반에 받쳐 내온 김이 나는 하얀 수제비 속에는 노란 감자 그리고 산뜻한 연두색 호박 조각이 들어있었다.
수제비 대신에 칼국수 해달라고 이유없이 떼를 쓰던 철부지 나의 모습도 생각난다.
꼭 칼국수가 먹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나 보다.
"수제비 다 먹으면 꿀옥수수 쪄 줄께." 하는 어머니의 말에 한 그릇을 다 먹고도 더 달라고 한 적도 있었으니.
조리 선생님이 다음 주에는 수제비를 한다고 예고했을 때 떠오른 생각들이다.
"모든 음식은 기억으로 먹는 것"이라고 하던가.

같은 밀가루 음식이지만 칼국수나 잔치국수보다 수제비를 선호하는 아내는
오이소박이까지 담근다고 하니 더욱 좋아했다. 
블로그를 뒤져보니 내가 수제비를 만든 적이 있다.
친구의 텃밭에서 수확해 온 감자가 많아 싱싱할 때 감자를 이용한 요리를 만들어
소진하려 했던 이태 전 여름이었
다.

- https://jangdolbange.tistory.com/1536

그때 수제비를 만들며 해둔 메모를 보니 초보인 나로서는 적절한 점도의 반죽 만들기가 제일 어려웠던 것 같다.
지난 주 칼국수를 만들 때도 제일 어려운 것이 역시 반죽이었다. 너무 질어서 썰기에 애를 먹었다.
이번에도 반죽에 신경이 쓰였다. 학교에서는 그런대로 잘 만들어져서 자신을 가졌는데
집에서는 당근을 넣은 반죽이 너무 질어졌다. '앞으로 나아지겠지' 하는 다짐과 기대를 해본다.

오이소박이는 말 그대로 오이에 소를 박은 김치다.
혹시나 하여 사전을 찾아보니 '오이소배기'나 '오이소백이'는 모두 잘못된 말이었다.
오이소박이는 소금으로 조선오이를 문질러 닦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소금 물에 절이게 된다.
이때 정제된 소금이 아니라 반드시 천일염을 사용해야 한다.
천일염 속에는 80%의 염화나트륨과 불순물(무기질)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무기질이 오이나 배추 등의 재료 조직을 오래도록 단단하게 유지해준다는 것이다.
시중에 판매되는 대기업 제조의 김치는 미관상 천일염을 안 쓰고 정제 소금을 써서 쉽게 물러진다고 한다.
'불순물'들이 때로는 우리에게 유용한 의미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이번 강좌에서 알게된 가장 중요한 지식이자 교훈이다.

시금치를 갈아 그 물로 밀가루 반죽을 초록으로 물들이고
당근으로는 노란 반죽을 만드는 것은 신기하고 재미있는 과정이었다.

내가 손에 김치를 들고 귀가한 적이 있을까?
노노스쿨에서 직접 담근 오이소박이를 작은 통에 담아 들고가자 아내가 "살림꾼 다 되었네"라며 웃었다.
오이소박이를 한 개 꺼내 맛을 본 아내가 맛있다고 했다.
내친 김에 아예 수제비를 만들어 오이소박이를 곁들여 먹기로 했다.

집에 있는 재료에 새로 사 온 재료 몇가지를 더했다. 새우는 빠트리고 사오지 않았고
쭈꾸미는 한 팩을 사왔더니 남아서 뒷날 메뉴는 자연스레 쭈꾸미볶음으로 정해졌다.
집에서쫓기지 않고  느긋하게 음식을 만들 수 있어 좋다.
예상 시간보다 늦어진 두 그릇의 수제비를 식탁 위에 내려놓으니 뿌듯함 이상의 기운도 있어 보인다.
모든 식사가 거룩하고 신성한 당위를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내와 마주 앉아 수제비에 새로운 기억을 더하며 먹었다. 남은 국물에 밥도 한 술 말아 먹었다.
아내는 오이소박이가 아직 한끼 더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남았다는 사실에 부자가 된 듯 흐믓해했다.


하루 일 끝마치고
황혼 속에 마주앉은 일일노동자
그대 앞에 막 나온 국수 한 사발
그 김 모락모락 말아올릴 때

남도 해지는 마을
저녁연기 하늘에 드높이 올리 듯
두 손으로 국수사발 들어올릴 때

무량하여라
청빈한 밥그릇의 고요함이여
단순한 순명의 너그러움이여
탁배기 한잔에 어스름이 살을 풀고
목메인 달빛이 문 앞에 드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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